MBC의 간판 뉴스프로그램 <뉴스데스크>가 파행 방송됐습니다. MBC 기자회가 공정보도와 보도책임자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에 돌입한 25일, 50분짜리 <뉴스데스크>는 15분, 90분짜리 <뉴스투데이>는 단 10분으로 축소 편성됐습니다. 저희MBC 기자들은 뉴스 파행을 보며 참담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과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정론직필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 발 더 뛰어야 하는 저희들의 책무를 내려놓은 것, 무거운 결정이라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의 언론 자유는 지속적으로 후퇴해 왔습니다. UN은“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급속하게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부분적 언론자유 국가’로 강등시켰습니다. 한국 언론자유가 1987년 민주항쟁 이전으로 후퇴한 것입니다. 그 언론자유 후퇴의 정점에 바로 MBC가 서있습니다.
현 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MBC 뉴스가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2009년<신영철 대법관 촛불재판 개입> 특종을 비롯해 정권에 불리하고 민감한 기사라 해도, 현장 기자들의 취재와 제작의 자율성 보장, 내부 토론과 같은 언론사 내부의 아주 기본적인 규칙은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둑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소수의 정치적 인물들이 요직을 장악하고 뉴스를 망가뜨린 결과, 지난 1년 사이MBC 뉴스는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논란, 김문수 경기도지사 119 전화 논란과 같이 권력에게 민감하고 불리한 기사들은 잇따라 축소, 누락됐습니다. 반값 등록금, 한미FTA, 10.26 재보궐선거 같은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균형을 현저하게 잃은 불공정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경쟁방송사인 KBS와 SBS가 다 보도한 사안조차 노골적으로 누락했습니다. 가장 공정하고 비판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MBC 뉴스가 불과 몇 년 사이 가장 불공정하고 순치된 언론으로 전락했습니다.
내부의 문제제기는 무시당했고, 취재 현장의 목소리는 묵살됐습니다. 평기자들의 공정보도 감시기구인 민주방송실천위원회가 수십 개의 보고서를 통해 불공정 보도를 지적했지만, 기자회가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우려와 경고를 전달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 잘하고 바른 말 잘한다는 기자들은 소리 없이 한직으로 밀려났습니다. 소통이 생명인 언론사 내부에서, 언로의 숨통은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지난 5일 MBC 기자회는 기자총회를 소집했습니다. 직접적 계기는 사장과 보도국 간부들이 내놓은 이른바 <뉴스개선안>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100여 명의 기자들은 <뉴스개선안>이 MBC가 신뢰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빠진 땜질식 처방이라고 판단하고,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사퇴를 요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두 보도 책임자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실시해 압도적으로 가결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경영진의 대응은 어이없었습니다. MBC 사측은 불과 반나절 만에 <뉴스투데이> 앵커를 맡고 있던 박성호 기자회장의 앵커 직을 박탈하고, 박성호 기자회장과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을 인사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간판 뉴스의 메인 앵커를 이런 식으로 경질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이는 시청자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이자 뉴스에 대해 눈곱만큼의 애정도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기자들은 총회 이후 20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MBC 경영진은 성의 있는 답변은 물론, 최소한의 대화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저희 MBC 기자들은 마지막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과 시청자들에게 신뢰받는 뉴스’가 아니라 ‘권력에게 신뢰받는 뉴스’라고 결론짓게 됐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희는 지금 펜과 마이크, 카메라를 내려놓습니다. 세상을 보는 창,눈과 귀와 입이 되라는 언론에 부여된 사명을, 그리고 저희의 밥그릇을 잠시 포기하겠습니다.
그러나 돌아오겠습니다. 정론직필, 공정한 뉴스, 국민의 알 권리와 인권존중, 보도의 자율과 독립이라는 상식을 회복시키겠습니다. ‘뉴스 하면 MBC’라는 과거의 명성을 반드시 되찾겠습니다. 권력과 정치권, 재벌과 광고주, 경영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앞뒤 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오로지 국민과 시청자가 부여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깊이 되새기는 소중한 계기로 삼겠습니다. 제대로 할 말 하지 못하고 침묵했던 과거를 처절하게 반성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공영방송 MBC는 국민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저희들은 특정 정파에 유리한 방송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불편부당, 언론의 기본과 정도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MBC를 권력의 품에서 되찾아오고자 하는 국민과 시청자들의 바람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신뢰의 MBC 뉴스로 돌아오겠습니다.
2012년 1월 26일
MBC 기자회 비상대책위원회
MBC 영상기자회 비상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