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살된 큰애한테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어요.
네, 동생 본지 9개월 되어가는 큰딸이에요.
동생 본 큰애들 스트레스 받는거 알아요.
마음 많이 읽어주고 작은애 챙기기 보다 큰애 먼저 돌봐주곤 했어요.
애가 고집이 세요. 저도 남편도 한 고집 하는 인물들이라 남탓도 못해요.
그래서 고집피우는 아이 성질도 이해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두 아이 오로지 제가 혼자 돌보면서 숱한 고민했어요.
올 봄에 어린이집 보내려고 해요. 그래도 엄마가 돌보는게 좋지 싶어 보낼 시기 놓치고
그냥 집에서 큰애 작은애 저, 이렇게 셋이 하루 종일 집에서 지지고 볶아요.
남편은 워낙 바쁘고 늦게 들어오고 아침엔 피곤한 사람이라 별 기대는 안해요.
화를 내도 소용이 없고 화를 내도 남는건 후회뿐이라 참고 참고 또 참아봤지만.
다섯번 울화가 치밀어도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한번씩 터지면 화산 폭발하듯 화가 나더라구요.
엘리베이터 버튼 남이 먼저 눌렀으면 애가 뒤집어져요. 바닥에 드러눕죠.
그러면 보통 엘리베이터가 도착해도 타지않고 문이 닫히면 다시 아이가 누르게 해 줬어요.
제 패딩 허리에 끈이 달려있는데 그거 붙잡고 기차놀이 하는거 좋아해요.
비싼 패딩이지만 애가 좋아하니 늘어지거나 말거나 애가 뒤에서 붙잡고 따라오면 그냥 놔뒀어요.
장갑이 두켤레인데 뜬금없이 집에 두고 온 장갑 내놓으라고 뒤집어지면 차근차근 알아듣게 설명도 해 주지요.
그런데 오늘은 이 경우가 한번에 일어난 날이었어요.
친정에 다녀오는데 집에 오려고 옷 입히려니 갑자기 다른 장갑 내놓으라고 떼를 썼어요.
나오는 길에는 엘리베이터 할아버지가 먼저 눌렀다고 뒤집어졌어요.
지하 주차장에 내려왔는데 차까지 거의 왔다가 엄마랑 기차놀이 해야된다고
허리 붙잡고 다시 지하주차장 출입구까지 돌아갔어요.
그래도 아이는 뭐가 못 마땅한지 계속 악악대고 울고 떼쓰고..
제가 애들 보느라 힘든거 엄마가 아셔서.. 엄마앞에서 저까지 같이 화내면
친정엄마가 더 속상해 하실거 같아서 아이 잘 달래서 할머니한테 인사시키고 차에 태웠어요.
친정아파트에서 빠져 나오는데 제 속에서 부글부글부글 끓어올랐죠.
참았어요. 참자 참자. 이제 막 네살된 애기야 애기, 화내봤자 나중에 또 후회할거야 참자참자..
그렇게 참고 잘 오다가 아이에게 나즈막히 말했어요.
엘리베이터 버튼 다른 사람이 먼저 오면 먼저 누를 수 있는거다,
아까처럼 엄마 허리 못 잡았다고 되돌아가고 하는거, 그러고 싶으면 좋게 말하면 되지 울면서 떼쓰지 마라..
나름대로 저는 잘 말한다고 말하는데, 아이가 제 말을 뚝 자르고, 노래 씨디 틀어달래요.
아이에게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 안 그럴거지? 라고 묻고 대답만 듣고 싶은데
아이가 또 말을 자르고, 노래 틀어달래요.
어이없이 그 상황에서 제가 폭발했어요.
엄마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
니가 잘못해 놓고 어른 말도 안듣고 뭐하는거야!
맨날 징징대고 짜증내고 울고 떼쓰고!
너는 우는거밖에 할 줄 몰라?
엄마도 사람인데 언제까지 참아야 돼?
그러면서.. 미친듯이 차 속에서 악을 악을, 악을 질러댔지요.
아이는 아마 놀랬을거에요.
하지만 울지는 않고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더군요.
마음아팠어요.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나도 힘들다는걸, 나도 위로받고 싶다는걸,
어이없게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나봐요. 그래요, 힘들었어요.
고집센 말 안듣는 네살 아이,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해서 여기 찍히고 저기 찍혀 앙앙 우는 9개월짜리 아이.
내 몸이 이렇게 힘든데 집에 돌아가봤자 애들 씻기고 재우는건 또 오롯이 나 혼자 해내야 했고..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저는 또 이렇게 후회를 하지요.
오늘이 마지막이야.
다음엔 그런 모습은 아이에게 보이지 말아야지.
늘 다짐을 해요. 그 마지막이라는 다짐도 벌써 몇번째 인지..
생각을 해 봤지요.
과연 나는 아이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것일까?
오늘만큼은 대답이 '아니다'였어요,
오직 정말 아이에게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그 아이에게 되풀었던 것이더라구요.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제발 내일은 너나 나나 좀 덜 힘든 하루가 되자..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 시기가 가장 어둡고 힘든 터널을 지나는 때라고 누가 그러시더라구요.
반면 아이들이 가장 예쁘고 귀엽고 제 품안에서 노는 유일한 시기이기도 하겠죠.
물론, 좋은 엄마, 온화한 엄마,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은 꿈은 늘 있어요.
그런데 매 순간순간 도닦듯,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순간들로 점철되는
어떤 시기가 되면 너무 힘드네요.
오늘만큼은 나도 힘들었다고, 그리고 슬펐다고 어디다 하소연하고 위로받고 싶은데..
그럴 곳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