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아점을 먹고 나니 하이웨이스트 스커트가 너무 꽉 조이네요.
지퍼를 내리고 편하게 앉아있는데 이건 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아니고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났어요
고등학교때 난방을 해도 교실은 추우니 의례 체육복 바지 위에 교복 스커트 입고 지냈죠.
그 위에다 코트를 입긴 입었는데 필기하기가 불편하니까 단추는 잠근채로 상의만 벗은
그러니까 팔만 내놓고 코트는 허리에 감고 수업을 들었어요.
1교시 끝나고 도시락 까먹고 나니 스커트 후크가 안 잠겨서 지퍼도 다 내리고 2교시 벌써 졸면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발표를 시키셔서 아.. 네 네.. 하고 부랴부랴 지퍼 올리고 후크는 안 잠기고 애들은 깔깔대고
교실엔 그런 일이 수시로 벌어졌죠, 선생님이 뭐 시키시면 다들 주섬주섬 옷 챙기고,
행여 칠판앞에 나와서 문제라도 풀라고 하면
코트 벗고 치마 올리고 후크 잠그고 ㅋㅋㅋ.
지우개라도 떨어트려서 앞에 앉은친구한테 주워달라고 하면.
'아 지금 나 보시다시피 고개 돌리기도 힘든상황인데...' 하고 살짝 째려보고는
끙끙대면서 지우개 주워주고 ㅋㅋㅋ
중학교땐 가출하고 학교 안나오는 애도 몇명 있었는데
고등학교 올라오니 애들이 어쩜 그렇게 순진하고 예쁜지
선생님이 조금만 농담해도 자지러지게 웃고 무슨 방청객처럼 반응하고.
7교시 끝나고 자율학습 들어가기 전에 애들이랑 비누랑 수건 들고 수돗가가서 세수하다
좋아하는 총각선생님 지나가면 막 긴장하면서 표정관리하던...
정작 자율학습시간엔 한 두세 문제 풀다가 빡쳐서 책상붙여서 코트 덮고 자고 ㅋㅋㅋ
그때 생각하면 정말 재밌었는데 유행가 가사말마따라 젊은날엔 젊음을 모른다더니.
그땐 당장 졸업해서 머리 볶고 남자친구 사귈 생각만 하고 살았네요.
제가 운이 좋았는지 왕따도 없고 체벌도 없는
가끔 엉뚱하게 웃기는 애들이 섞여있는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해도 분위기 화기 애애한 학교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