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쩌면 큰 일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거라 너무 무서워서 잠이 안 오네요.
오늘 오후에, 첫째아이 어린이집 마치고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우리 동 뒷문에 거의 다다르려는데 어떤 아줌마가 오시면서
아이가 예쁘네 어쩌네 하시더니 수첩을 꺼내 보여주며 말씀하시더라구요.
헌 옷, 헌 구두, 폐휴대폰, 악세사리 가진 것 있으면 아이 책이랑 교환해준다구요.
(수첩엔 별 내용 안 적혀있었는데 왜 보여준건지 이해가 잘 안 가네요.)
5개월 된 둘째가 한참 자고 있는 중이어서 그런 것들 챙기며 부산스럽게 굴 상황이 아닌지라
그냥 됐다고 했는데 아기가 얼마나 더 자고 일어날 것 같냐기에 한두시간 더 잘 것 같다면서
또 언제 오시냐 했더니 일 년에 한 번 뿐이라고 했나..암튼 그런 비슷한 답변이었던 것 같아요.
마침 아이 새 책을 사주고 싶었던 터라 아쉬웠는데 둘째 깰 때쯤 맞춰서 오시겠다고 하더군요.
별 생각없이 그러시라 하고선 집으로 들어와 첫째랑 있는데 아줌마가 오셨어요.
역시 별 생각없이 의심없이 들어오게 했구요.
아줌마는 화장실에서 볼 일 보시고 나와서는 현관문에서 가까운 거실 끝자락에 앉아계셨고,
저는 둘째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들어와서 장농을 한참 뒤적거리며 안 입는 옷들을 꺼냈어요.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아서 잠깐 문틈으로 힐끔 아줌마를 보니 첫째아이 노는 거 보시면서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냥 가만히 앉아계시대요...
옷을 잔뜩 챙겨 갖고 거실에 나와서 신발도 챙기고, 폐휴대폰도 챙겼는데 악세사린 없냐하시더군요.
진주목걸이 몇 개랑 악세사리함을 들고 나왔더니 그런 거 말고 14k 같은 거 없냐고...
제가 몇 년 전 경제사정이 넘 안 좋아 폐물이랑 돈 되는 악세사리는 모조리 갖다 팔았거든요.
애 낳고 키우다보니 악세사리 할 일도 없고 악세사리를 좋아하는 스탈도 아니어서
금 비스무리한 실반지 하나 없어요. 이러쿵저러쿵 아무튼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가방에서 창작동화, 수학동화, 과학동화 전집 사진 브로마이드를 꺼내더라구요.
제 아이에게는 이것도 좋겠다, 저것도 좋겠다 하시며 14k 정도는 있어야 전집이랑 교환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아예 없다고 했는데 두어번 더 진짜 없냐는 식으로 물어오셨어요.
책은 단행본으로 8~9권 주겠다해서 10권 주십사 말씀드렸고, 웃으시며 알았다고 하시며
옷을 가져가기 좋게 봉투에 넣어달라고 하더군요. 자기가 이걸 다 가져갈 순 없기 때문에
이따가 6시 반쯤 누가 다시 와서 가져가면서 책 줄 거라고 합니다.
알았다고 하고 아줌마는 가셨고,
아줌마가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그제서야, 아차 싶은 것이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왜 낯선사람을 집으로 들이냐면서 사기꾼이 아니라 강도같다고 하네요.
그 말 들으니 갑자기 덜컥 겁이 나서 자려고 누웠는데도 잠이 안 옵니다.
오늘은 비록 건질 것도 없이 그냥 갔지만, 어린 애 둘 있는 집이라는 거 알았으니
아주 만만한 범행대상이 된 건 아닌가, 다음 기회를 노리고 다른 사람들과 작전(?)이라도 꾸미진 않을까,
책 갖다주러 왔다고 하면서 남자라도 뒤에 숨겨서 데리고 오거나, 택배기사를 가장하여 오지는 않을까...
겁이 나서 벼라별 상상을 다 하고 있어요.
여기로 이사온지 한 달 좀 지났는데 이게 대체 뭔 일인지요..
바보 멍청이 등신같이 헌 옷 헌 구두랑 아이 책 교환...이런 말을 믿었다니 ㅠ.ㅠ
내일 아침에 경찰에 신고하고, 경비실에도 말해두려고요.
근데 이게 경찰에 신고할만한 꺼리이긴 한건가요?
신종사기수법인가봐요.ㅠ.ㅠ 이런 경우 겪거나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다른 아파트들에도 이런 아줌마 돌아다니나요?
에휴...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미치겠네요. 저 별 일 없겠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