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할퀴지 않고 곱게 지나가 주는 것이 세상에 있을까요.
많은 나이도 아닌데. 돌아보니, 지금까지 비틀거리며 걸어온 길 위에 제가 잃어버려 온 것들이 점점이 놓여 있네요.
깨지고 바랜 것들.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들. 잡고 싶었지만 멀어져 간 것들...
다시 만져 볼 수도 없게 멀리 흩어져 있는 파편들을 바라보니
가슴이...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저미어 옵니다.
그 중에서도 저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사람'이에요.
변화가 꼭 나쁜 것은 아닐 텐데. 조금씩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 보면,
어제보다는 내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같이 뒹구는 천진한 어린 동물처럼, 서로에게는 발톱을 세우지 않으리라, 서로에게 결코 상처를 내지 않으리라
믿고 지내 왔던 사람들이... 서로 이유도 모른 채 멀어져 가거나, 멀어져 가다가 서로 다시 조우하면
어쩐지 어색해져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어지거나,
공감할 수 없는 가치관을 신주단지처럼 받들고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거나...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말을 내뱉는 것을 목도하게 되거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길로 가 버리는 뒷모습을, 이름 불러 보지도 못하고 바라보게 되거나...
그렇네요. 세월이 흐르다 보니.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며 씩씩하게, 자갈 많은 인생길이어도 어깨 부축하며
그렇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해가, 오해였다고,
아니면, 그 때 그 말은 왜 그랬느냐고,
쉽게 묻지도 못할 거리로 멀어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왜 그랬는지 알 수도 없이.
세상 끝에 가 있어도 나는 춥지 않다, 고 느꼈던 때가 있었어요.
내 장례식에 와서 애간장 녹도록 울어 줄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죽지 말고 살아야지, 했던 때도 있었고요.
능력을 키워서 돈 많이 벌어야지, 그러면 이 사람에게는 이걸 해 주고 저 친구에게는 저걸 해 주고...
좋아하겠지, 그럼 나도 행복해,
생각만 해도 힘이 나서 씩씩하게 한 발 더 내딛게 되던 때도.
그러나 세월은 가고.
우리의 아름다움도, 아름답던 관계도,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던 이해도,
언제 그런 것이 존재하기나 했었냐는 듯이 흩어져 가고 마네요.
사람은 모두 섬이다. 그러나 그 섬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바웃 어 보이에서 휴 그랜트가 마지막에 했던 나래이션이었지요.
주변 사람들과 저마다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서로 또 아끼는 관계를 중요시했던 제게
그래, 그거야,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었어요.
그러나 요즘은, 그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 하나가 된 기분이 들어요.
마음이 약해졌는지, 어제 오늘은 눈물이 많이 나네요.
저는 잘 울지 않아요...
가엾은 동물을 보고, 다른 사람의 가슴 아픈 상황을 보고는 울지만 제 일로는 울지 않아요.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밀려드는 기억에 떠내려갈 것 같은 심정으로 눈물이 흐르네요.
모든 것이 바래고 낡고 사라져 가네요. 그토록 절실하게 사랑했던 것들도.
다시 한 번만 그 눈을 보고, 다시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면.
* 맨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두 시간이 넘게 지났어요.
그만... 자야겠습니다. 밤이라서 더 감상적이 된 것이겠지요.
세월, 시간, 사람, 삶... 정답이 뭔지 몰라서 가슴 아픈 것은 아니니 너무 아픈 댓글은 말아 주세요...
이런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할 것도 아니라는 그 정답을 알아서
그냥 여기에 털어놓았어요. 나중에 정 부끄러워지면 지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용서하시고...
안녕히들 주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