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유행하는 넌센스 퀴즈 한 가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반통일 세력은?”
정답은 ‘통일 전문가’(통일되면 일자리가 없어지니까!)
최근 일부 소위 북한전문가들의 김정은 체제 향후 전망에 대한 진단을 들어보면, 위의 넌센스 퀴즈가 단순히 농담만은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북한은 특수한 체제이며 따라서 북한 내부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을 듣고 있자면 왠지 과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밥그릇 논리(“북한 문제는 우리만 아는 것인데, 왜 비전문가들이 끼어들어?” 혹은 “북한이 붕괴되면 뭐 먹고 살지?”)와 전 세계적 시야를 상실한 좁은 반도적 시야에 근거한 이들의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들이 북한의 붕괴를 전망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60여년의 짧은 북한 역사만 들여다 볼 경우 정권 붕괴의 사례와 경험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反 통일세력으로 전락한 ‘통일전문가’들
과거 자칭 통일운동가들은 ‘반국적(半國的) 시야’를 벗어나 ‘전국적(全國的) 관점’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한국정치를 남한 내부의 정치 역학관계 속에서만 보면 안 되며 북한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놓고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달리 말해 북한이 한국 정치의 실질적 당사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에 통일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입에서 통일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통일비용이란 단어가 입에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통일 운동가를 자처하던 이들이 이렇게 反통일 세력으로 전락됐으며 그렇게도 ‘전국적 관점’을 주장하던 이들이 북한 문제를 거론하면 “그것은 북한 내부의 문제”라고 꼬리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자들에게 ‘전 세계적 관점’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이맘 때(2010년 12월) 중동지역 전문가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의 주된 화제 중 하나가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향방이었다.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주된 관심은 무바라크가 아들에게 정권을 세습해 줄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으며 그 가능성을 가지고 의견이 반반으로 갈라졌다. 카다피 정권의 붕괴? 만약 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김정일 사망 발표 직후 많은 외국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부분 과거 함께 일한 외신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질문했다. “한국인들은 통일을 원하느냐?”고 “원한다”고 대답하자, “네 생각 말고, 보통 한국인들의 견해를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한국인들, 특히 젊은 층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던데…”라는 거듭된 질문에, “아마도”라고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숲을 보기 위해서는 숲을 벗어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쏟아지는 북한 소식, 그러나 팩트는 적고, 희망사항과 추측만 가득 찬 정보의 홍수 속을 벗어나 마이클 메이어의 <세계를 변화시킨 해>를 읽었다. 이 책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및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를 현장에서 취재했던 뉴스위크지 특파원 메이어가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이해 2009년에 쓴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제1장의 내용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국 리버럴의 어설픈 역사 강론 냄새가 느껴졌다. 책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제2장부터 상황은 달랐다. 역사 강론이 아니라 생생한 현장 취재기였던 것이다.
1989년 11월 9일 샤보우스키라는 동독 정치국원이 국내외 기자들에게 뉴스 브리핑을 했다. 당시 크렌츠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동독 시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여행자유화법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즉각적 여행 자유화 혹은 베를린 장벽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앞으로 여행을 보다 자유롭게 허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휴가를 다녀오는 바람에 전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샤보우스키가 여행자유화 조치를 발표한 것이었다. “언제부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황한 샤보우스키는 “즉시”라고 대답해 버리고 퇴근해 버렸다. 이 오보에 환호한 동베를린 시민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고, 서독으로의 통로를 개방할 것을 요구했다. 지침을 받지 못한 경비병들은 상부와 연락을 시도해 보았으나 적절한 대답을 듣는 데 실패했다. 마침 이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동독 간부들은 극장이나 애인 집에 가 있는 바람에 연락도 되지 않았다. 결국 경비 초소 지휘관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역사의 우연적 요소에 담긴 필연
이에 앞서 1989년 여름 헝가리로 휴가 나온 많은 동독인들이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넘어갔다. 이러한 ‘대탈주’는 네메스 헝가리 총리와 콜 서독 총리가 비밀리에 합의한 내용에 의한 것이었다. 네메스 총리는 비밀리에 콜 총리를 만났으며 헝가리를 동독인들의 대탈주 통로로 만드는 것에 합의했다. 이 ‘대탈주’는 순수히 자발적이지만은 않았다. 국경이 개방됐음에도 동독인들은 머뭇거렸다. 그런데 헝가리 당국에서는 고의적으로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에서 동독일들을 대거 초청한 페스티발을 개최한 뒤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는 방법이 표시된 지도까지 배포하면서 탈주를 알선(?)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 국경 쪽에는 서독에서 보낸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의 당시 콜 총리의 보좌관이었던 호른스트 텔칙의 맹활약상이 그려지고 있다.
이 밖에도 폴란드의 자유노조의 집권 과정, 체코의 ‘시민포럼’과 하벨 대통령 이야기, 그리고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처형 과정 등의 생생한 이야기 등은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만들었다.
저자의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역사적 필연’보다는 ‘우연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으며 미국의 역할에 대해 낮게 평가하고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보면 사족(蛇足)이란 느낌마저 들었다. 1989년의 사례를 과도하게 일반화시키면 안 된다는 저자의 충고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베를린 장벽 붕괴에 대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또 오히려 저자의 의도 달리 저자의 생생한 리포트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다.
1989년 사회주의권의 변화는 필연이었다. 문제는 이 변화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주체였다. 집권층이 변화를 주도 혹은 통제할 수 있었다면 중국처럼 체제를 유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독, 폴란드, 헝가리 등은 그리하지 못했다. 호네커가 병중이었다는 조건이 독일 통일의 유리한 조건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호네커가 건강했다고 동독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호네커가 중국의 천안문 사태와 같은 진압을 꾀했다고 해서, 동독 체제를 유지시킬 수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북한의 변화는 필연이다. 과거의 체제가 유지되기엔 너무도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그 변화를 김정은이 주도할 수 있느냐이다. 이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변화를 시도한다면, 앞선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부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김정은은 조금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김일성·김정일의 혈통이라는 점 이외에, 김정은이 가진 정치적 자산이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조금이라고 부정한다면 이는 김정은 자신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체제의 종심이 너무 짧다. 사실 동독은 사회주의권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안정된 국가였다. 그런데도 서독의 구심력에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북한이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을 할 수 있을까? 매우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1989년 봄만 하더라도 독일 통일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89년 5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내 생애에서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테랑 뿐만 아니었다. 당사자인 독일인들도 통일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아니 1980년대 대다수의 서독 대학생들은 동독인들을 같은 동족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보고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에 무너졌으며 독일은 이듬해인 1990년 10월에 통일됐다.
역사의 부름에 대답한 콜 총리와 텔칙 보좌관
저자 메이어의 주장대로 독일 통일은 수많은 우연들이 결합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우연들 속에 독일 통일을 필연으로 믿고 이를 위해 헌신한 헬무트 콜 총리와 그의 보좌관 호른스트 텔칙이 있었다는 점을 저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네메스에게 ‘헝가리를 통한 대탈출로’를 제안하고, 또 이에 대한 대가로 경제원조 약속을 아끼지 않았던 콜 총리의 노력이 독일을 통일시킨 핵심적 우연이었다는 점이 이 책의 본문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분명 역사는 특정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 ‘역사의 필연’은 ‘우연’으로만 비춰진다는 점이다. ‘역사의 부름’(History's call)에 콜과 텔칙은 대답했다. 아니 텔칙은 역사가 부르기 전에 역사를 창조해 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텔칙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네메스 헝가리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인적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역사로부터의 초대장’이 날라 왔다. 문제는 이 초대를 받아들일 주체가 준비됐느냐이다. 역사는 때로 은밀히 그리고 급작스럽게 다가온다. ‘등불’을 켜고 졸지 않고 있던 처녀들만이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