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부모로서 해줄 단 세가지

하은맘 조회수 : 2,869
작성일 : 2012-01-04 14:30:52

최근 10대 아이들의 폭력과 잇단 자살 소식을 지켜보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피해 학생들에게는 "너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니" 다그치고,

죄의식조차 못 느끼는 가해 학생들에게는 그저 경멸의 시선들이 쏟아지네요.

가해 학생들은 처벌하고, 피해 학생들은 정신과 치료받는다고 

이 뿌리 깊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요즘 이 시를 더욱 자주 들여다보게 되네요. 

-----------------------------------------------------------------------------------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애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IP : 211.174.xxx.149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nature1214
    '12.1.4 2:59 PM (211.108.xxx.107)

    너무나 좋고 감동이 밀려오는 글입니다
    자녀가 이미 성장한 맘이지만 다시 깊이 새기고 싶은 내용이네요
    초등생을 두고있는 자식들에게 이 글을 권해야겠어요

  • 2. 저도
    '12.1.4 3:23 PM (211.246.xxx.6)

    좋은시네요.저도40일된아기가진엄마로써 잘새길게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03219 4월 27일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서울신문 만평 1 세우실 2012/04/27 805
103218 운동장 김여사 남편의 사고이;후 막장행동 2 .... 2012/04/27 2,350
103217 제 동생이 운전학원 강사예요. 12 ..... 2012/04/27 6,836
103216 다문화 찬양하는 바보같은 사람들 5 ... 2012/04/27 871
103215 문신한 동네엄마... 제가 너무 고리타분한거죠? 7 ... 2012/04/27 3,993
103214 도마, 추천해 주세요. 2 도마 2012/04/27 864
103213 노처녀시누이 진정 나중에 제가 책임져야 하나요?(길어요 죄송) 24 답답 2012/04/27 12,452
103212 임신중인데... 윗집 코고는 소리땜에 잠을 잘 수가 없네요. 11 층간소음 2012/04/27 5,713
103211 바느질이나 퀼트 배울 곳 없나요?(반포근처) 2 손바느질 2012/04/27 1,041
103210 언론의 야한 보도사진, 야한 광고사진, 도를 넘었다! 1 참맛 2012/04/27 906
103209 사랑하는 엄마와의 갈등폭발... 14 속상한밤 2012/04/27 3,062
103208 자가 치아 미백 끝까지 해보신분 계세요? 4 잠이 안와요.. 2012/04/27 2,337
103207 아들 있으면 집도 고치고 문제있으면 해결하고 하나요? 14 ... 2012/04/27 2,559
103206 [BGM] 박원순 서울시장, 공무원에 나가라! 호통.JPG 4 참맛 2012/04/27 1,970
103205 남편 지갑속 여직원편지 59 하루살이 2012/04/27 18,861
103204 알레르기에 감기가 겹쳐서 죽겠어요...ㅠㅠ 1 안 자고 뭐.. 2012/04/27 927
103203 제가 이상한게 아닙니다 1 world 2012/04/27 870
103202 김종훈 "건강권 침해? 광우병 젖소 한마리인데..." 3 ... 2012/04/27 1,451
103201 백만원 가까이 되는 밥솥은 뭐가 다를까요? 4 궁금 2012/04/27 1,990
103200 스마트 폰 약정 남았는데 또 신상으로 바꾸라고 전화가 오는데 흔.. 4 새폰 2012/04/27 1,420
103199 비정규직입니다. 3 00 2012/04/27 1,238
103198 몽산포 여행 하신분 조언 부탁드려요~ 3 여행기대 2012/04/27 1,290
103197 유럽, 미국은 주식이 빵인가요..? 20 ... 2012/04/27 12,255
103196 정부, 만화로도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약속했건만... 샬랄라 2012/04/27 994
103195 미국에 사시는 분한테 김선물 괜찮나요? 4 2012/04/27 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