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부모로서 해줄 단 세가지

하은맘 조회수 : 2,874
작성일 : 2012-01-04 14:30:52

최근 10대 아이들의 폭력과 잇단 자살 소식을 지켜보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피해 학생들에게는 "너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니" 다그치고,

죄의식조차 못 느끼는 가해 학생들에게는 그저 경멸의 시선들이 쏟아지네요.

가해 학생들은 처벌하고, 피해 학생들은 정신과 치료받는다고 

이 뿌리 깊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요즘 이 시를 더욱 자주 들여다보게 되네요. 

-----------------------------------------------------------------------------------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애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IP : 211.174.xxx.149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nature1214
    '12.1.4 2:59 PM (211.108.xxx.107)

    너무나 좋고 감동이 밀려오는 글입니다
    자녀가 이미 성장한 맘이지만 다시 깊이 새기고 싶은 내용이네요
    초등생을 두고있는 자식들에게 이 글을 권해야겠어요

  • 2. 저도
    '12.1.4 3:23 PM (211.246.xxx.6)

    좋은시네요.저도40일된아기가진엄마로써 잘새길게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04637 쑥떡해서 냉동실에 두고 오래먹으려면 어떤 떡을??(콩고물은 싫은.. 2 시골여인 2012/05/01 1,709
104636 이력서에 희망연봉 작성시... 1 ㅇㄱ 2012/05/01 1,120
104635 뚱뚱한데 밝은 색 옷을 입고싶어요. 14 ㅠㅠ 2012/05/01 5,372
104634 햇빛 쨍쨍한 날이 너무 좋네요. 3 쨍쨍 2012/05/01 866
104633 16살 먹은 강아지가 물을 안 먹어요 ㅠ 11 까꽁 2012/05/01 3,353
104632 빈정대는 댓글들.. 6 익명이요 2012/05/01 1,626
104631 어디 가세요? 어린이날 2012/05/01 623
104630 살이 안빠져요!! 17 dd 2012/05/01 3,375
104629 바디로션의 지존은 어떤 제품일까요? 2 추천부탁해요.. 2012/05/01 2,140
104628 19) 잠자리가 안맞는 사람 64 난관 2012/05/01 28,978
104627 "경찰 나간지 1분만에" 살인사건 피해자 오빠.. 참맛 2012/05/01 2,142
104626 코스트코 레녹스그릇 싼가요 마이마이 2012/05/01 1,662
104625 컴화면 글씨체 어디서 바꾸나요? 1 컴화면 2012/05/01 797
104624 그게 뭐였는지 알려주세요 5 ㄹㄹ 2012/05/01 1,701
104623 자동차매연이 담배연기보다 훨씬 안좋다는게 진짜에요? 5 dd 2012/05/01 1,377
104622 피부과 vs 피부관리원 2 피부관리 2012/05/01 1,125
104621 발톱이 살을 찌르면 어디로 가야하나요? 8 걷고싶어서 2012/05/01 1,922
104620 32개월 짜리 아들이 저보고 oh my god 이라네요. ㅋㅋㅋ.. 6 기가막혀 2012/05/01 1,911
104619 일상생활 한몸 지탱하기도 이렇게 힘든 사람 계신가요? 1 한몸건사 2012/05/01 1,680
104618 아웃도어 좋아하는 남편 3 옷잘입고파 2012/05/01 1,268
104617 미국산 원산지 속인 쇠고기 4년간 400톤 5 트윗 2012/05/01 1,277
104616 임신중 세팅 펌 괜찮을까요? 4 궁금합니다 2012/05/01 2,005
104615 스테인레스냄비 자석 붙나요? 7 궁금.. 2012/05/01 14,120
104614 이상적인 사회와 학교는 존재하지 않아요 힘의논리 2012/05/01 741
104613 시댁은 단식원...ㅜ.ㅜ 97 하우스777.. 2012/05/01 17,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