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부모로서 해줄 단 세가지

하은맘 조회수 : 2,877
작성일 : 2012-01-04 14:30:52

최근 10대 아이들의 폭력과 잇단 자살 소식을 지켜보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피해 학생들에게는 "너는 그동안 말하지 않았니" 다그치고,

죄의식조차 못 느끼는 가해 학생들에게는 그저 경멸의 시선들이 쏟아지네요.

가해 학생들은 처벌하고, 피해 학생들은 정신과 치료받는다고 

이 뿌리 깊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요즘 이 시를 더욱 자주 들여다보게 되네요. 

-----------------------------------------------------------------------------------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애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수록 詩

IP : 211.174.xxx.149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nature1214
    '12.1.4 2:59 PM (211.108.xxx.107)

    너무나 좋고 감동이 밀려오는 글입니다
    자녀가 이미 성장한 맘이지만 다시 깊이 새기고 싶은 내용이네요
    초등생을 두고있는 자식들에게 이 글을 권해야겠어요

  • 2. 저도
    '12.1.4 3:23 PM (211.246.xxx.6)

    좋은시네요.저도40일된아기가진엄마로써 잘새길게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06052 거봐요 이근안 전두환이 맞자나요 4 ㅋㅋ 2012/05/05 1,503
106051 생리 증후군 분노 폭발 7 증후군 2012/05/05 2,906
106050 분노 푸는 방법 2 화나 2012/05/05 1,825
106049 고등학교 내신 나빠도 12 dd 2012/05/05 3,330
106048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나요... 이별... 2 harry_.. 2012/05/05 2,127
106047 딸아이의 강제전학 53 억울합니다... 2012/05/05 15,956
106046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 중계 중이네요. 25 똘이맘 2012/05/05 2,603
106045 매사가 느린아이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5 데이지 2012/05/05 2,998
106044 연애때는 한 시도 떨어져있기 싫었는데 결혼때는 안그런가봐요 3 2012/05/05 2,260
106043 6살 남자아이.. 자꾸 말을 지어내요ㅠ 왜 그럴까요? 5 ? 2012/05/05 1,550
106042 진짜 백화점물건이 믿을만한건가요? 12 해라쥬 2012/05/05 3,024
106041 집진드기와의 싸움으로 집에 연막탄 터뜨리려는데, 괜찮을까요? 6 permet.. 2012/05/05 8,801
106040 개념없는 팀원...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까요 4 이그저 2012/05/05 2,612
106039 천주교인과 개신교인의 결혼... 29 봄이다 2012/05/05 13,624
106038 남편이 딸아를 때렸습니다. 120 딱 죽고싶다.. 2012/05/05 19,412
106037 뱃살만 안빠짐 15 뱃살 2012/05/05 4,881
106036 교보문고 나뻐..ㅠㅠ ㅜㅜ 2012/05/05 1,089
106035 사랑을 많이받고 자란사람 55 ........ 2012/05/05 19,674
106034 요즘엔 웬만한 일엔 화가 안 나요 2 ... 2012/05/05 1,465
106033 미드나 dvd 볼때 자막 보여줘도 되나요? 5 딸이랑 내기.. 2012/05/05 1,132
106032 식기세척기 설치 땜시요.....알려주세요.. 채주맘 2012/05/05 2,047
106031 감색 3 일본말 2012/05/05 1,542
106030 아이 성장에 일반 매트리스가 좋을까요 메모리폼이 좋을까요 4 시몬스냐 템.. 2012/05/05 2,665
106029 요즘 34평 아파트에 식기세처기 빌트인 되어 있을까요? 4 하루 2012/05/05 1,427
106028 가계약 파기 할때 복비 이중으로 주는게 맞나요?? 7 Chloe 2012/05/05 9,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