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서울이지만 좀 낡은 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동네에 조상대대로 물려받고 살아오거나, 최소한 30년 40년씩 살아서...
대학교 때 술을 마시고 동기나 선배가 바래다 준다 하면 저는 단칼에 No라고 해야 할정도로
동네바닥 사람들이 서로서로 너무 잘 알고 있는 그런 동네...
대통령 선거 때는 저희 집에 마을사람들 열명 정도 모여 함께 티비를 보며 응원하던 기억까지 있는..
어느날 갑자기 모 건설회사에서 재건축을 하겠다고 땅을 팔라 왔었지요.
정부가 승인한 개발프로젝트에..재벌그룹이 보증하고 있는 거였지만..
시세보다 5억 정도 싸게 팔고, 싸게 들어가는 식의 제안이라..
저는 왠지 느낌상 좋지 않아 반대했는데..
더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들이 재건축에 동의하고 너도 나도 도장을 찍어주더군요.
제 부모님도 너무 선뜻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비싸게 팔고 비싸게 들어가다간 못 돌아갈 것 같다구요.
다들 한동네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셨기에..
늘그막에 타지로 옮길 엄두도 내지 못하셨습니다.
저희집은 7억 시세를 2억 2천만 받고 추가분담금 없이 재입주를 약속하고 비워주었고...
그중 H연립 사람들은 7천만원만 받고 살던 터를 비워주었습니다.
다시 돌아올 집이기에..땅이기에..
그런데 정부참여 아닌 단순 조합형이란 참 그 주인들에게 너무 안좋은 제도였습니다.
작은 건설업체를 내세우긴 했지만 재벌그룹이 주도하는 것이었고
현수막도 그 그룹 이름으로 주도되는 것인 만큼
처음에 25평/32평으로 나누어 분양 계약을 했던 이 대기업이
25평형을 없애버리고 32평 38평 정도로 확장하여 주상복합으로 일을 벌였습니다.
당연히 파이가 커지니까 원래 지주들에게 추가분담금을 올려받았지요.
저희한테도 다시 1억 얼마를 받아갔습니다.
결국은 7억짜리 집을 1억에 넘긴 셈이지요.
H빌라는 워낙 7천만원만 받고 나온 사람들이라 더 낼 것이 없었구요.
근데 그사람들 앞으로 입금된 대금 명세는 이주비나 개발비가 아닌 '토지대금'이었습니다.
결국 헐값에 매입한 형식으로 서류가 되었겠지요.
그래도 그 대기업이 보증하는 도장은 찍혔으니 계약상으로는 다들 안심하고 있었지요.
근데 마지막까지 협상금을 더 올려받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어
사업비는 계속 올라가고, 대기업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먼저 집을 비워준 조합, 동네사람들에게 떠넘겼습니다.
추가분담금 1억으론 안되겠다, 더 올려라...결국 추가분담금을 6억 이상 불렀나 봅니다.
7억짜리 집을 1억에 팔고..또 추가분담금을 6억 이상 내야 하는 형국이 되었으니
동네사람들과 조합 측에선 말이 많았지요.
그 와중에 대기업이 또 여기저기 분양권을 팔며 외부조합을 끌여들였습니다.
순수한 동네주민들 외에 투기꾼들까지 끌어들였구요.
애초에 25평형으로 소박하게 노후만을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도 날벼락이었죠.
비싸게 팔고 비싸게 들어가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할 만큼 소심한 사람들의 집이었는데..
대기업 측은 시행사가 빚을 졌으니 갚으라는 식으로 나왔고
결국 그 시행사를 보증섰던 자신들이 인수해서 채권자로 둔갑했다 합니다.
그리고 조합 측엔 조합의 분양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구요.
그래서 조합이 분개해서 다른 대기업을 끌어들이려 하자
그 해당대기업에게 당장 내일까지 현금 얼마를 준비해와라..안그러면 인수 안한다...이런 식으로 통보했고
결국 그 자금을 준비 못한 라이벌 기업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조합 측이 또다른 건설사를 내세우려 했더니
대기업도 다른 건설사를 내세워서 조합을 해체시키려 했구요.
(5억상당의 분양권, 그동안 낸 추가분담금 다 돌려주지 않겠다는 식이었는데..
최근들어 항의가 거세지자, 분양권 금액은 돌려주지 않고
추가분담금만 받아가란 통지를 해왔다 합니다.
이리 되면 7천만원에 집을 내어준 H빌라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피해가 막심하지요.)
얼마 전에 어머니 대신 성동구청 민원실에 다녀왔습니다.
민원절차가 어떻게 된 건지, 이게 법적으로 대기업 쪽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하여
구청장도 만나주지 않고, 민원처리도 안된다네요.
조합측이 아예 구청 1층 안쪽에 터를 잡고 앉았더니
형사라는 사람들이 사칭인지 진짜인지, 이런 민원집회 자체가 불법이라고,
옥외집회도, 야외집회도 아닌데도 불법이라고 잡아가겠다고 협박하더군요.
조합사람들이..지난 일을 얘기하며 이러더군요.
차라리 끝까지 버티고 말 걸, 아니면 그냥 팔고 나올 걸...
괜히 재건축에 동의했다가 집만 한입에 털어주게 되었다구요.
수억원의 집을 7천만원만 받고 나온 사람들 7억 이상가는 집을 2억 정도 받고 나온 저희들..
혹은 중간에 분양권인지 딱지인지를 시공사에 5억을 주고 산 사람들...
추가분담금 6억까지 부르는 대기업 쪽에 응하든 불응하든 저들은 분양권을 인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분양권을 무효화하고 일반분양으로 돌리면
원래 땅주인의 땅과 분양권을 산 사람들의 돈을 한입에 털어먹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얻은 교훈은, 재건축에 동의하지 말고 그냥 팔고 나오든지,
재건축엔 도장을 찍어주지 말라는 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