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깔때기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 - 『달려라, 정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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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 2011-12-09 조회수 : 33,331
글 / 김수영, 사진 / 김장현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17대 전 국회의원,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위대한 정치인, 치명적인 매력에 소유자. 이제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거듭난 21세기 융합의 정치인” 정봉주 前의원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달려라 정봉주』를 낸 뒤로는 짧은 거리도 '달려'간다는 정봉주 의원은 정말 쉴 새 없이 달린다. <나꼼수> 멤버 세 명이 모두 미국에 간 사이에도 , <백지연의 끝장토론>에 출연해 활약해, 정봉주 이름 석 자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느 정치가가 이토록 잘난 척을 하면서 이토록 귀여움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추천사를 쓴 공지영의 말이다. 어느 정치인이 이런 유쾌함의 표상이 된 적이 있었던가. 정치인이라는 신분만으로도 부정적인 인상을 줄 법도 한데, 그 정치인이 입만 열면 늘어놓는 자기자랑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진정 우리는 21세기 신 융합 정치인을 보고 있는 것일까. 서울, 지방 불문하고 '미권스'를 규합하는 그 힘은 정녕 무엇인가. '18대 대통령 정봉주'라는 사인을 받아도 사람들이 어색해하지 않는 건, 정말 모두 그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버렸기 때문인가.
수많은 의문을 가지고, 지난주 홍대 한 카페에서 정봉주 의원을 만났다.
‘가카’는 나에게 하늘이 벼락같이 내려준 은총
그새 깔때기가 진화했단다. “깔때기가 나와야 할 시점에 안 나오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하죠. 그건 ‘퍼기(Foggy)깔때기’ 안갯속에 흩어지듯이 퍼지는 거죠. 깔때기 할 시점에 그냥 지나가 버려서, 깔때기를 대지 않았음에도 깔때기 효과를 내는 건 ‘은폐 깔때기’에요. ‘엄호 깔때기’도 있어. 상대방이 깔때기를 대려는 데 잘 못할 때, 엄호해주면서 같이 빛나는 거야. 김어준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깔때기의 진화를 못 쫓아 오겠대. 으하하하하.”
이어지는 깔때기. 이분이 정봉주 의원이라는 인증이 필요하다. 우선 듣자. “17대 때도 한나라당한테 토론을 붙자고 해도 사람들이 안 나왔어요. 토론은 학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촉으로 하는 거예요. 공부만 잘하고, 부잣집에서 편안하게 살아서, 아무리 촉이 있어도 전투력이 없어요. 전 이제 <정봉주의 PSI>와 <나는 꼼수다>에서 갈고 닦는 야전 파이터 기질이 있잖아요.
지난번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박원순 시장 딸이 미대에서 법대로 전과할 때, 조국이 힘을 썼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조국 교수님이 자기는 그때 미국에 있었다면서,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때 난 조국 교수님 얼굴도 한번 안 봤는데 트윗을 날렸잖아. 정치권 잡놈식 싸움은 내 전공이니까, 내가 같이 가서 싸워주겠다.
이걸 본 트위터 사용자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태권도 유단자 뒤에 스트리트 파이터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조국은 정석으로 싸울 것 같잖아. 나는 정석이 없고요. 이제 이런 투사가 필요한 때가 온 거예요. ‘가카’는 나에게 하늘이 벼락같이 내려준 은총 같아. ‘가카’없었으면, 대권 주자도 못될 뻔 했어. 쌩유, 가카.”
특유의 경박한 웃음 소리가 카페에 울려 퍼진다. 이 한결같음이 놀랍다. 우선, 하나씩 파헤쳐보자. 들이대도 밉지 않은 깔때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깔때기? 우선 나 자신을 비우고 깨야 한다
<나는 꼼수다>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인정하시나요?
“어제까지는 제가 이런 표현을 썼어요. 나에게 세 사람은 하늘이 가끔 주는 소중한 선물. 그 세 사람에게 나는 일생의 한번 찾아오는 벼락같은 축복. 그런데 오늘 말을 바꿨어. 그 셋은 나에게 동방박사 같은 존재예요. 그럼 난 자동으로 예수가 되는 거거든. 으하하하하.”
<나는 꼼수다> 이후에 달라진 점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내면적인 변화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이제껏 누르고 있던 제 본성을 발휘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합니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사회의 제도나 틀 때문에 점잖게 누르고 살았거든요. 21세기 미디어 시대에 맞는 인간이 20세기 아날로그 시대에 살았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
이제 진보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아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진보는 도덕성이 중요한 가치니까, 항상 근엄해야 하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해야 했는데 <나는 꼼수다>가 이걸 다 깨버렸죠. 복장만 해도, 그동안은 시쳇말로 좀 날라리같이 옷을 입고 싶어도 이제껏 그러지 못했어요. 집에 가면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아내 앞에서 패션쇼를 하는 거야.
나는 이런 옷을 입고 싶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 옷을 다 입어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하죠. 격이 깨진 거야. 이건 정치적으로 무척 중요한 의미입니다. 제한적이었고 권위적이었던 정치의 격을 깨버린 거예요. 진보 가치를 얘기하면서 왜 욕을 하면 안 되고, 좀 흐트러지면 안 되나요? 왜 꼭 근엄해야만 하나요. 웃으면서 하자는 거죠. 정치와 일반인들 사이에 있었던 담을 무너뜨리고, 정치의 외연을 넓힌 거죠.”
공지영 작가님도 서문에 쓰셨잖아요. 대체, 이토록 잘난 척을 하면서도 귀여움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웃음)
“여기엔 전제가 있어요. 타고난 천성이 가볍고, 품행이 방자하여, 나 자신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가벼운 척하고, 뒤에서는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가볍거든요. 엄청 가볍거든.(좌중 웃음) 정치인으로선 최대 단점 아녜요? 그런 걸 노출 시켰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그나마 있는 자기 자랑을 한다는데, 저거라도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고도의 심리 전술이 있는 거죠. 미워하면 미안할 거 같잖아요.
“우주는 나를 기준으로 돌아간다"라는 사고방식은 언제부터 정립된 것인가요?
“실존주의 철학의 기본이에요. 내가 죽는 순간 우주가 끝나는 거예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으로 일이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노출하지 않아요. 전문용어로 내숭 아닙니까. 그 내숭을 깨버리는 순간, 나도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해지는 거예요. 본질을 싸고 있는 불필요한 가식을 털어버리자고 하는 얘기죠.”
그렇다면, 정 의원님은 사회와 정치가 숨기게 하였던 사람들의 본능을 이끌어내는, 요정 같은 존재인 겁니까?
“전 요정은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고…… 동방박사를 거느린 존재라고나 할까.(으하하하) 여기에서는 전제가 정말 중요한 거예요. 당에 갔더니 당직자들이, 여기에선 깔때기 대지 말래요. 새로 들어온 말단 당직자들이 아무 데서나 깔때기 들이대는데 미워 죽겠다는 거야. 그런데 그들은 이 전제를 못 본 거죠. 우선 자기를 비우고, 욕심을 부숴야 돼요.
내년 4월 11날, 저는 국회의원이 안 될 수도 있어요. 별안간 재판이 떨어져서 감옥에 갈 수도 있죠. 매 순간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욕심이 들어오면 그걸 털고, 언제든지 내려놓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요. 자꾸 훈련하는 거지.
왜냐하면, 제 성격이 정말 집요하고 집착이 강하거든요. 나를 부숴버리면, 내 안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잡고 있을 게 없죠. 그 상태라면, 어떤 상황으로 돌아가든 뭐가 두렵겠어요. 없는 걸 없다고 얘기하니까, 다른 사람이 대신 채워주려고 하고, 그걸 귀엽게 봐주는 거죠.”
정 의원님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상대방에 입장에 가보면 다 이해가 돼요. 역지사지는, (내 입장과 남의 입장을) 50대 50으로 생각해 보는 게 아니에요. 49.9대 50.1이에요. 인생의 저울추는 0.1에서 기우는 거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싸워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준 줄 알아? 늘 자기가 잘한 것만 기억나죠. 평상시에도 내가 늘 상대방에게 6을 하고, 상대는 나에게 4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저 사람에게 49.9밖에 안 되는 존재고, 저 사람은 나에게 50.1의 존재라고 생각해보자는 거죠. 그 사람이 나한테 훨씬 소중한 존재가 돼요. 그 사람한테 섭섭한 게 없어요. 나한테 더 많이 해주니까. 상대방에게 섭섭한 게 없으면 싸움이 안 나요. 이건 정치하기 전부터 갖고 있던 좌우명이에요. 또 하나 얘기하라고 하면 해불양수(海不讓水)입니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역지사지, 해불양수. 기본적으로 자기를 비워놓는다는 생각이 일맥상통하네요.
“그런 생각으로 살면 별로 싸울 일이 없어요. 속상한 일도 없고. 평소에도 화가 나면 확 났다가 확 꺼져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화내고 돌아서면 5분 뒤에 후회했어요. 덜된 인간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성숙한 인간은 자기 탓으로 돌린다고 하잖아요. 화를 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의 탓을 한다는 거거든. 잘못을 부정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뭐가 좋다고 화를 오랫동안 갖고 있어요.”
“가만히 있는 자에게 자리가 오지 않는다.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살아왔다고 적으셨어요. 의원님이 이 책을 읽는 청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어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어떠한 성격을 갖고 살아가지만 모든 운명은 결국 본인이 만들어가는 거예요. 성격이 사주라는 말이 있죠. 성격은 어느 날 자기가 깨닫고, 바꾸려고 하면 바꿀 수 있어요. 성격은 습관과 행동이 반복되어 누적된 결과거든요. 인생은 행복의 체인이 연결된 게 아니라, 고통의 체인이 연결된 거예요. 이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일 거냐, 행복으로 받아들일 거냐는 각자의 마음속에 달렸단 얘기죠. 이건 성경에도 나오고, 불경에도 나오는 얘기에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그런 운명, 결정론을 불식하고 가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타고난 성격이 있어야겠지만, 그보다 고통스러운 훈련을 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운명을 맞이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하면, 똑같이 가는 거지. 고통스럽게 연마하라는 얘기는, 막 공부해라, 운동해라, 이런 얘기가 아니라,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상대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거예요. 모든 것은 하늘이 쓰임새가 있어서 보냈어요. 하늘이라는 오너가 우리를 채용했단 말이에요. 하늘이 보기에 예뻐야 승진을 시킬 거 아녜요? 그 사람이 인생의 말단 대리로 살 건지, 회장으로 살 건지는 각자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내 강점은 포기하지 않는 근성"
구체적으로 책 얘기를 해보자.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순위 등극. 지금까지 호전하고 있다. ‘정치적 식견과 더불어 삶의 통찰을 담은 21세기 잠언서’에는 정봉주 의원이 처음 정치에 입문하고 BBK 저격수로 활약한 이야기, 정치 세계에서 겪은 쓰디쓴 경험, 주요한 사안에 대한 견해 등이 담겨 있다.
벼락같이 준비했고, 비아냥 소리를 들으며 여의도에 입성했습니다. 스스로 '어리버리한 상태'라고 표현하셨는데,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요? 어떤 생각으로 정치에 임하셨습니까?
“저는 항상 정치를 광의의 개념으로 생각해요. 토론하는 것부터 무슨 커피를 마실까도 정치적 결단이라는 거죠. 정치는 사적 삶에서 공적 삶으로 전환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모드 전환이 잘 안 되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까? 부자가 되는 길이 있는가? 하다가 1년, 2년쯤 지나면 모드 전환이 되기 시작해요. 그렇게 사적인 삶에만 머물러 있으면 나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오거든. 공적인 삶으로 모드 전환이 되는데, 이건 촉의 문제죠. 기본적인 심성이 결정적인 것 같아요. 국회의원들 보면, 아직도 공적인 모드로 전환되지 않은 사람도 많죠.”
말씀하신 촉은 태생적으로 갖는다기보다, 경험적으로 만들어지는 거죠?
“그렇죠.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대게 정치를 잘 못해요. 단선적 경험만 갖고 살았잖아요. 고등학교 다니다가 잘려봤어요? 어디 뒷골목에서 싸움질해봤을까요? 어디서 남의 사과를 훔쳐봤을까요? 삶 자체가 입체적인 매트릭스에요. 변호사나 관료 출신들은, 일탈한 삶에 대한 포용력이 적을 수밖에 없어요.
물론 삶이라는 게 직접 경험하지 않고 책을 통해 경험할 수도 있지만, 사실 삶이라고 하는 건 본인의 의지적 노력이 무척 중요하거든요. 강남, 부유한 집 출신으로 특목고 나와서, 사법고시 합격해요. 판사가 됐어. 리어카랑 벤츠가 부딪쳤다고 쳐요. 이 친구는 어디다 손을 들어줄까? 어르신더러 그러겠죠. 벤츠가 가는데 왜 리어카를 끌고 나왔느냐? 이 사람이 먹고살아야 하는 절절한 삶을 이해하겠느냐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실질적으로 80, 90퍼센트가 그런 삶을 살아요. 싸울 때도 있고, 실패도 하고, 그렇잖아요. 이 책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별 볼 일 없는 루저의 삶이지만, 열심히 자기 인생을 달리다 보면, 의외의 결과가 보이더라.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만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과정, 거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어라. 그러니까 이게 잠언서라는 거지.(으하하하하)”
본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요. 물면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 안 놔요. 미국 해병대를 상징하는 것 중에 핏불테리어라는 개가 있어요. 영국의 투견인데, 하도 다른 개를 물어 죽여서 영국에서는 추방됐어요. 이 개는 물면 입이 으스러질 때까지 안 놔요. 싸울 때 좋다고, 꼬리까지 치며 싸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상징물입니다. 핏불처럼 살자.”
그렇다면, 정의원님이 가장 두려워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두려워하는 나 자신. 두려워하는 자신이 제일 두려운 거야.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하잖아요. 다른 두려운 건 없어요.”
감옥에 갈까 봐 베란다에서 독방 대비훈련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단무지 박영준 부국장님이 증언하시기에는, 다음날 침대 위에 계셨다고.(웃음) 그럼 두려움을 극복하고 들어오신 건가요?
“자다 보니까 엉겁결에 들어온 거지, 뭐. (으하하하하)”
책에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도 소개되어 있어요. <나는 꼼수다>에서 의원님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말씀하시던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원님께 어떤 분이신가요?
“외신기자 클럽에서도 이 얘길 했어요. 그 사람의 어느 시기 행적을 비판할 순 있지만, 어떤 사람을 본질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거든요. 임기 말 무렵에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은 잘못됐다고 비판했어요. 제가 죄송했던 건, 그때 인간 자체를 비판해 버린 거지. 옳은 자세가 아니었죠. 그런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이 있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용서될 수 없는 상황이죠.
노무현 대통령님은 인간 자체로 훌륭한 분입니다. 숭고한 삶을 살아온 분이고요. 보통 30대는 30퍼센트 거짓말하고, 40대는 40퍼센트 거짓말한다고. 나이와 거짓말하는 비율이 비슷하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거꾸로 가는 것 같아. 처음에 그분도 요트 타고, 행복한 삶을 꿈꿨는데, 정치인이 되고 점점 나이들 수록 자기 삶을 업그레이드 한 거죠.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더 타락하고, 더 때 묻고 물든다고 하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은 험한 일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공인으로 개조해 나갔어요. 제 표상이에요.”
“정말 멋진 경선, 한번 상상해보세요”
이번에는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대권 주자에게 물었다.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묻는다면요? 정치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정치하다 보니까 내 얘기에 힘을 얻는 사람이 생기는 걸 알았어요. 정치를 안 하면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하겠지만, 정치를 하면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확신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거라는데, 진짜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기 지갑만 채우고 자기 배만 불렸지.
정치 덕분에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누구든 각자 위치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삶을 함께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정치고요. 그렇게 하는 순간에 저 개인적으로도 큰 행복을 느낍니다. 저는 정치 부흥사예요. 지쳐 있다가도 많은 사람 앞에서 얘기하고 나면, 확 힘이 나거든요. 저 사람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그게 공감의 엔도르핀 때문이에요. 그걸 계속 느끼는 거지.”
“유혹할 수 없으면 구원할 수도 없다.” “욕망이 가치를 이긴다”라고 쓰셨어요. 이게 치명적인 매력의 주요한 요인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어떤 정치적 행보를 펼치실 건가요?
“당당해야 한다고 봐요. 지난번 시장 선거 때 나경원한테 제가 그랬어요. 나경원의 최대 단점은, 실패해보지 않은 삶이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자기를 비우는 법도 알겠죠. 노무현 대통령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했던 일이 나왔을 때, 기억이 안 난다고 했어요. 거짓말이거든요. 진짜 기억이 안 나면, 그 정도의 기억력으로는 서울시장 해서는 안 되고, 알고 있으면서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으면 거짓말쟁이니까 서울시장 하면 안 돼요.
저 같으면, 대변인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평생 내 마음의 고통이었다고 말했을 거예요. 아버지 학교 부탁했다는 의혹이 있을 때도, 정봉주 방에 갔지만, 부탁하지 않았다고 했죠. 차라리 당시 우리 학교는 비리사학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내 판단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공직자로서 적절치 못하게 처신한 점에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러면 제가 바보 됐을 거예요.
한겨레 <정봉주의 PSI>를 한마디 상의 없이 잘렸어요. 쫀쫀하다고 계속 씹었어요. 정치부 국장하고, 부장하고, 기자들이 사과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거야. 김어준도 방송에 나가서 유감의 뜻을 표하래요. 그러고 방송이 시작됐죠. 지난주에 왜 안 나왔냐고 묻길래 그랬어요. “그것은 제 졸렬함의 발로죠. 쫀쫀한 인간의 전형이죠." 속 좁아서 그런 거네? 하길래 “네. 국장님 죄송합니다. 사과합니다.” 그랬죠. 으하하하하(좌중웃음) 원하는 게 사과라는데. 사과하는 인간이 그렇게 쫀쫀해 보이나요? 하면 되는 거지.”
우리가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할까요?
“저는 무조건 도덕성이라고 봐요. 인간이 살다 보면 거짓말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그렇거든요. 정치하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도덕적으로 자신의 급수를 얼마나 올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 이전에 어떻다 하더라도, 정치인, 공인의 삶을 살기로 했으면 모드 전환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도덕성이 중요하고. 당당해야죠. 솔직하게 다 까는 거예요. 그 평가는 국민이 하는 거고요. 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놓쳐요. 정치는 공기와 같아서, 잡으려고 하면 다 빠져나가거든요.”
정리하는 의미에서, 2011년 돌아보면 어떤 해였나요?
“국민에게는 고통스러운 한 해였죠. 동시에 <나는 꼼수다>가 올해 최대 상품이잖아요. 절망 속에서도 꿈을 꿀 수 있는 대안이 있구나. 보여준 해였다고 봐요. 단순히 희망이 있다고 끝이 아니라, 대안이 될 수 있는 희망인 거죠. 실천적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희망. 이런 것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나는 꼼수다>의 출연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지만, 세상은 공평하다. 작용이 강하면, 반작용 또한 강하다.”
마지막 질문을 드립니다. 대권 주자로서, 가장 경계하고 계신 분은 누구인가요? (웃음)
“이제까지 대권 주자들 보면 서로 죽이려고만 했잖아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정말 멋진 경선 한 번 해보는 거예요. 나보다 지지율 낮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훌륭하다면 '저 사람 하는 게 맞다'라고 추켜세워주고, 서로 양보하는 경선을 상상해봐요. 본인들이 내려놓으면, 짜지 않아도 아름다운 경선이 되는 거죠. 시장 선거 때 안철수 교수가 그걸 보여준 거고요. 그런 세상이 온다니까요. 다 터놓고, 열어놓으면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설 자리가 생기는 거예요. 두고 보세요.”
『달려라 정봉주』를 낸 뒤로는 짧은 거리도 '달려'간다는 정봉주 의원은 정말 쉴 새 없이 달린다. <나꼼수> 멤버 세 명이 모두 미국에 간 사이에도 , <백지연의 끝장토론>에 출연해 활약해, 정봉주 이름 석 자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느 정치가가 이토록 잘난 척을 하면서 이토록 귀여움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추천사를 쓴 공지영의 말이다. 어느 정치인이 이런 유쾌함의 표상이 된 적이 있었던가. 정치인이라는 신분만으로도 부정적인 인상을 줄 법도 한데, 그 정치인이 입만 열면 늘어놓는 자기자랑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진정 우리는 21세기 신 융합 정치인을 보고 있는 것일까. 서울, 지방 불문하고 '미권스'를 규합하는 그 힘은 정녕 무엇인가. '18대 대통령 정봉주'라는 사인을 받아도 사람들이 어색해하지 않는 건, 정말 모두 그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버렸기 때문인가.
수많은 의문을 가지고, 지난주 홍대 한 카페에서 정봉주 의원을 만났다.
‘가카’는 나에게 하늘이 벼락같이 내려준 은총
그새 깔때기가 진화했단다. “깔때기가 나와야 할 시점에 안 나오면,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하죠. 그건 ‘퍼기(Foggy)깔때기’ 안갯속에 흩어지듯이 퍼지는 거죠. 깔때기 할 시점에 그냥 지나가 버려서, 깔때기를 대지 않았음에도 깔때기 효과를 내는 건 ‘은폐 깔때기’에요. ‘엄호 깔때기’도 있어. 상대방이 깔때기를 대려는 데 잘 못할 때, 엄호해주면서 같이 빛나는 거야. 김어준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깔때기의 진화를 못 쫓아 오겠대. 으하하하하.”
이어지는 깔때기. 이분이 정봉주 의원이라는 인증이 필요하다. 우선 듣자. “17대 때도 한나라당한테 토론을 붙자고 해도 사람들이 안 나왔어요. 토론은 학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촉으로 하는 거예요. 공부만 잘하고, 부잣집에서 편안하게 살아서, 아무리 촉이 있어도 전투력이 없어요. 전 이제 <정봉주의 PSI>와 <나는 꼼수다>에서 갈고 닦는 야전 파이터 기질이 있잖아요.
지난번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박원순 시장 딸이 미대에서 법대로 전과할 때, 조국이 힘을 썼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조국 교수님이 자기는 그때 미국에 있었다면서,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때 난 조국 교수님 얼굴도 한번 안 봤는데 트윗을 날렸잖아. 정치권 잡놈식 싸움은 내 전공이니까, 내가 같이 가서 싸워주겠다.
이걸 본 트위터 사용자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태권도 유단자 뒤에 스트리트 파이터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조국은 정석으로 싸울 것 같잖아. 나는 정석이 없고요. 이제 이런 투사가 필요한 때가 온 거예요. ‘가카’는 나에게 하늘이 벼락같이 내려준 은총 같아. ‘가카’없었으면, 대권 주자도 못될 뻔 했어. 쌩유, 가카.”
특유의 경박한 웃음 소리가 카페에 울려 퍼진다. 이 한결같음이 놀랍다. 우선, 하나씩 파헤쳐보자. 들이대도 밉지 않은 깔때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깔때기? 우선 나 자신을 비우고 깨야 한다
<나는 꼼수다>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인정하시나요?
“어제까지는 제가 이런 표현을 썼어요. 나에게 세 사람은 하늘이 가끔 주는 소중한 선물. 그 세 사람에게 나는 일생의 한번 찾아오는 벼락같은 축복. 그런데 오늘 말을 바꿨어. 그 셋은 나에게 동방박사 같은 존재예요. 그럼 난 자동으로 예수가 되는 거거든. 으하하하하.”
<나는 꼼수다> 이후에 달라진 점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 내면적인 변화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이제껏 누르고 있던 제 본성을 발휘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합니다.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사회의 제도나 틀 때문에 점잖게 누르고 살았거든요. 21세기 미디어 시대에 맞는 인간이 20세기 아날로그 시대에 살았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
이제 진보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아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진보는 도덕성이 중요한 가치니까, 항상 근엄해야 하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해야 했는데 <나는 꼼수다>가 이걸 다 깨버렸죠. 복장만 해도, 그동안은 시쳇말로 좀 날라리같이 옷을 입고 싶어도 이제껏 그러지 못했어요. 집에 가면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아내 앞에서 패션쇼를 하는 거야.
나는 이런 옷을 입고 싶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 옷을 다 입어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하죠. 격이 깨진 거야. 이건 정치적으로 무척 중요한 의미입니다. 제한적이었고 권위적이었던 정치의 격을 깨버린 거예요. 진보 가치를 얘기하면서 왜 욕을 하면 안 되고, 좀 흐트러지면 안 되나요? 왜 꼭 근엄해야만 하나요. 웃으면서 하자는 거죠. 정치와 일반인들 사이에 있었던 담을 무너뜨리고, 정치의 외연을 넓힌 거죠.”
공지영 작가님도 서문에 쓰셨잖아요. 대체, 이토록 잘난 척을 하면서도 귀여움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웃음)
“여기엔 전제가 있어요. 타고난 천성이 가볍고, 품행이 방자하여, 나 자신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가벼운 척하고, 뒤에서는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가볍거든요. 엄청 가볍거든.(좌중 웃음) 정치인으로선 최대 단점 아녜요? 그런 걸 노출 시켰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그나마 있는 자기 자랑을 한다는데, 저거라도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고도의 심리 전술이 있는 거죠. 미워하면 미안할 거 같잖아요.
“우주는 나를 기준으로 돌아간다"라는 사고방식은 언제부터 정립된 것인가요?
“실존주의 철학의 기본이에요. 내가 죽는 순간 우주가 끝나는 거예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으로 일이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노출하지 않아요. 전문용어로 내숭 아닙니까. 그 내숭을 깨버리는 순간, 나도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해지는 거예요. 본질을 싸고 있는 불필요한 가식을 털어버리자고 하는 얘기죠.”
그렇다면, 정 의원님은 사회와 정치가 숨기게 하였던 사람들의 본능을 이끌어내는, 요정 같은 존재인 겁니까?
“전 요정은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고…… 동방박사를 거느린 존재라고나 할까.(으하하하) 여기에서는 전제가 정말 중요한 거예요. 당에 갔더니 당직자들이, 여기에선 깔때기 대지 말래요. 새로 들어온 말단 당직자들이 아무 데서나 깔때기 들이대는데 미워 죽겠다는 거야. 그런데 그들은 이 전제를 못 본 거죠. 우선 자기를 비우고, 욕심을 부숴야 돼요.
내년 4월 11날, 저는 국회의원이 안 될 수도 있어요. 별안간 재판이 떨어져서 감옥에 갈 수도 있죠. 매 순간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욕심이 들어오면 그걸 털고, 언제든지 내려놓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요. 자꾸 훈련하는 거지.
왜냐하면, 제 성격이 정말 집요하고 집착이 강하거든요. 나를 부숴버리면, 내 안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잡고 있을 게 없죠. 그 상태라면, 어떤 상황으로 돌아가든 뭐가 두렵겠어요. 없는 걸 없다고 얘기하니까, 다른 사람이 대신 채워주려고 하고, 그걸 귀엽게 봐주는 거죠.”
정 의원님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상대방에 입장에 가보면 다 이해가 돼요. 역지사지는, (내 입장과 남의 입장을) 50대 50으로 생각해 보는 게 아니에요. 49.9대 50.1이에요. 인생의 저울추는 0.1에서 기우는 거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싸워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준 줄 알아? 늘 자기가 잘한 것만 기억나죠. 평상시에도 내가 늘 상대방에게 6을 하고, 상대는 나에게 4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저 사람에게 49.9밖에 안 되는 존재고, 저 사람은 나에게 50.1의 존재라고 생각해보자는 거죠. 그 사람이 나한테 훨씬 소중한 존재가 돼요. 그 사람한테 섭섭한 게 없어요. 나한테 더 많이 해주니까. 상대방에게 섭섭한 게 없으면 싸움이 안 나요. 이건 정치하기 전부터 갖고 있던 좌우명이에요. 또 하나 얘기하라고 하면 해불양수(海不讓水)입니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역지사지, 해불양수. 기본적으로 자기를 비워놓는다는 생각이 일맥상통하네요.
“그런 생각으로 살면 별로 싸울 일이 없어요. 속상한 일도 없고. 평소에도 화가 나면 확 났다가 확 꺼져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화내고 돌아서면 5분 뒤에 후회했어요. 덜된 인간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성숙한 인간은 자기 탓으로 돌린다고 하잖아요. 화를 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남의 탓을 한다는 거거든. 잘못을 부정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뭐가 좋다고 화를 오랫동안 갖고 있어요.”
“가만히 있는 자에게 자리가 오지 않는다.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살아왔다고 적으셨어요. 의원님이 이 책을 읽는 청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어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어떠한 성격을 갖고 살아가지만 모든 운명은 결국 본인이 만들어가는 거예요. 성격이 사주라는 말이 있죠. 성격은 어느 날 자기가 깨닫고, 바꾸려고 하면 바꿀 수 있어요. 성격은 습관과 행동이 반복되어 누적된 결과거든요. 인생은 행복의 체인이 연결된 게 아니라, 고통의 체인이 연결된 거예요. 이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일 거냐, 행복으로 받아들일 거냐는 각자의 마음속에 달렸단 얘기죠. 이건 성경에도 나오고, 불경에도 나오는 얘기에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그런 운명, 결정론을 불식하고 가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타고난 성격이 있어야겠지만, 그보다 고통스러운 훈련을 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운명을 맞이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하면, 똑같이 가는 거지. 고통스럽게 연마하라는 얘기는, 막 공부해라, 운동해라, 이런 얘기가 아니라, 성격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상대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거예요. 모든 것은 하늘이 쓰임새가 있어서 보냈어요. 하늘이라는 오너가 우리를 채용했단 말이에요. 하늘이 보기에 예뻐야 승진을 시킬 거 아녜요? 그 사람이 인생의 말단 대리로 살 건지, 회장으로 살 건지는 각자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내 강점은 포기하지 않는 근성"
구체적으로 책 얘기를 해보자.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순위 등극. 지금까지 호전하고 있다. ‘정치적 식견과 더불어 삶의 통찰을 담은 21세기 잠언서’에는 정봉주 의원이 처음 정치에 입문하고 BBK 저격수로 활약한 이야기, 정치 세계에서 겪은 쓰디쓴 경험, 주요한 사안에 대한 견해 등이 담겨 있다.
벼락같이 준비했고, 비아냥 소리를 들으며 여의도에 입성했습니다. 스스로 '어리버리한 상태'라고 표현하셨는데,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요? 어떤 생각으로 정치에 임하셨습니까?
“저는 항상 정치를 광의의 개념으로 생각해요. 토론하는 것부터 무슨 커피를 마실까도 정치적 결단이라는 거죠. 정치는 사적 삶에서 공적 삶으로 전환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모드 전환이 잘 안 되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까? 부자가 되는 길이 있는가? 하다가 1년, 2년쯤 지나면 모드 전환이 되기 시작해요. 그렇게 사적인 삶에만 머물러 있으면 나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오거든. 공적인 삶으로 모드 전환이 되는데, 이건 촉의 문제죠. 기본적인 심성이 결정적인 것 같아요. 국회의원들 보면, 아직도 공적인 모드로 전환되지 않은 사람도 많죠.”
말씀하신 촉은 태생적으로 갖는다기보다, 경험적으로 만들어지는 거죠?
“그렇죠.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대게 정치를 잘 못해요. 단선적 경험만 갖고 살았잖아요. 고등학교 다니다가 잘려봤어요? 어디 뒷골목에서 싸움질해봤을까요? 어디서 남의 사과를 훔쳐봤을까요? 삶 자체가 입체적인 매트릭스에요. 변호사나 관료 출신들은, 일탈한 삶에 대한 포용력이 적을 수밖에 없어요.
물론 삶이라는 게 직접 경험하지 않고 책을 통해 경험할 수도 있지만, 사실 삶이라고 하는 건 본인의 의지적 노력이 무척 중요하거든요. 강남, 부유한 집 출신으로 특목고 나와서, 사법고시 합격해요. 판사가 됐어. 리어카랑 벤츠가 부딪쳤다고 쳐요. 이 친구는 어디다 손을 들어줄까? 어르신더러 그러겠죠. 벤츠가 가는데 왜 리어카를 끌고 나왔느냐? 이 사람이 먹고살아야 하는 절절한 삶을 이해하겠느냐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실질적으로 80, 90퍼센트가 그런 삶을 살아요. 싸울 때도 있고, 실패도 하고, 그렇잖아요. 이 책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별 볼 일 없는 루저의 삶이지만, 열심히 자기 인생을 달리다 보면, 의외의 결과가 보이더라.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만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과정, 거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어라. 그러니까 이게 잠언서라는 거지.(으하하하하)”
본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요. 물면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 안 놔요. 미국 해병대를 상징하는 것 중에 핏불테리어라는 개가 있어요. 영국의 투견인데, 하도 다른 개를 물어 죽여서 영국에서는 추방됐어요. 이 개는 물면 입이 으스러질 때까지 안 놔요. 싸울 때 좋다고, 꼬리까지 치며 싸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상징물입니다. 핏불처럼 살자.”
그렇다면, 정의원님이 가장 두려워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두려워하는 나 자신. 두려워하는 자신이 제일 두려운 거야.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하잖아요. 다른 두려운 건 없어요.”
감옥에 갈까 봐 베란다에서 독방 대비훈련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단무지 박영준 부국장님이 증언하시기에는, 다음날 침대 위에 계셨다고.(웃음) 그럼 두려움을 극복하고 들어오신 건가요?
“자다 보니까 엉겁결에 들어온 거지, 뭐. (으하하하하)”
책에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도 소개되어 있어요. <나는 꼼수다>에서 의원님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말씀하시던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원님께 어떤 분이신가요?
“외신기자 클럽에서도 이 얘길 했어요. 그 사람의 어느 시기 행적을 비판할 순 있지만, 어떤 사람을 본질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거든요. 임기 말 무렵에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은 잘못됐다고 비판했어요. 제가 죄송했던 건, 그때 인간 자체를 비판해 버린 거지. 옳은 자세가 아니었죠. 그런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이 있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용서될 수 없는 상황이죠.
노무현 대통령님은 인간 자체로 훌륭한 분입니다. 숭고한 삶을 살아온 분이고요. 보통 30대는 30퍼센트 거짓말하고, 40대는 40퍼센트 거짓말한다고. 나이와 거짓말하는 비율이 비슷하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거꾸로 가는 것 같아. 처음에 그분도 요트 타고, 행복한 삶을 꿈꿨는데, 정치인이 되고 점점 나이들 수록 자기 삶을 업그레이드 한 거죠.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더 타락하고, 더 때 묻고 물든다고 하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은 험한 일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공인으로 개조해 나갔어요. 제 표상이에요.”
“정말 멋진 경선, 한번 상상해보세요”
이번에는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대권 주자에게 물었다.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묻는다면요? 정치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정치하다 보니까 내 얘기에 힘을 얻는 사람이 생기는 걸 알았어요. 정치를 안 하면 나와 내 가족만 행복하겠지만, 정치를 하면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확신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거라는데, 진짜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기 지갑만 채우고 자기 배만 불렸지.
정치 덕분에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누구든 각자 위치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삶을 함께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정치고요. 그렇게 하는 순간에 저 개인적으로도 큰 행복을 느낍니다. 저는 정치 부흥사예요. 지쳐 있다가도 많은 사람 앞에서 얘기하고 나면, 확 힘이 나거든요. 저 사람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그게 공감의 엔도르핀 때문이에요. 그걸 계속 느끼는 거지.”
“유혹할 수 없으면 구원할 수도 없다.” “욕망이 가치를 이긴다”라고 쓰셨어요. 이게 치명적인 매력의 주요한 요인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어떤 정치적 행보를 펼치실 건가요?
“당당해야 한다고 봐요. 지난번 시장 선거 때 나경원한테 제가 그랬어요. 나경원의 최대 단점은, 실패해보지 않은 삶이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자기를 비우는 법도 알겠죠. 노무현 대통령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했던 일이 나왔을 때, 기억이 안 난다고 했어요. 거짓말이거든요. 진짜 기억이 안 나면, 그 정도의 기억력으로는 서울시장 해서는 안 되고, 알고 있으면서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으면 거짓말쟁이니까 서울시장 하면 안 돼요.
저 같으면, 대변인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평생 내 마음의 고통이었다고 말했을 거예요. 아버지 학교 부탁했다는 의혹이 있을 때도, 정봉주 방에 갔지만, 부탁하지 않았다고 했죠. 차라리 당시 우리 학교는 비리사학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내 판단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공직자로서 적절치 못하게 처신한 점에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러면 제가 바보 됐을 거예요.
한겨레 <정봉주의 PSI>를 한마디 상의 없이 잘렸어요. 쫀쫀하다고 계속 씹었어요. 정치부 국장하고, 부장하고, 기자들이 사과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거야. 김어준도 방송에 나가서 유감의 뜻을 표하래요. 그러고 방송이 시작됐죠. 지난주에 왜 안 나왔냐고 묻길래 그랬어요. “그것은 제 졸렬함의 발로죠. 쫀쫀한 인간의 전형이죠." 속 좁아서 그런 거네? 하길래 “네. 국장님 죄송합니다. 사과합니다.” 그랬죠. 으하하하하(좌중웃음) 원하는 게 사과라는데. 사과하는 인간이 그렇게 쫀쫀해 보이나요? 하면 되는 거지.”
우리가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할까요?
“저는 무조건 도덕성이라고 봐요. 인간이 살다 보면 거짓말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그렇거든요. 정치하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도덕적으로 자신의 급수를 얼마나 올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 이전에 어떻다 하더라도, 정치인, 공인의 삶을 살기로 했으면 모드 전환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도덕성이 중요하고. 당당해야죠. 솔직하게 다 까는 거예요. 그 평가는 국민이 하는 거고요. 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꾸 놓쳐요. 정치는 공기와 같아서, 잡으려고 하면 다 빠져나가거든요.”
정리하는 의미에서, 2011년 돌아보면 어떤 해였나요?
“국민에게는 고통스러운 한 해였죠. 동시에 <나는 꼼수다>가 올해 최대 상품이잖아요. 절망 속에서도 꿈을 꿀 수 있는 대안이 있구나. 보여준 해였다고 봐요. 단순히 희망이 있다고 끝이 아니라, 대안이 될 수 있는 희망인 거죠. 실천적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희망. 이런 것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나는 꼼수다>의 출연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지만, 세상은 공평하다. 작용이 강하면, 반작용 또한 강하다.”
마지막 질문을 드립니다. 대권 주자로서, 가장 경계하고 계신 분은 누구인가요? (웃음)
“이제까지 대권 주자들 보면 서로 죽이려고만 했잖아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정말 멋진 경선 한 번 해보는 거예요. 나보다 지지율 낮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훌륭하다면 '저 사람 하는 게 맞다'라고 추켜세워주고, 서로 양보하는 경선을 상상해봐요. 본인들이 내려놓으면, 짜지 않아도 아름다운 경선이 되는 거죠. 시장 선거 때 안철수 교수가 그걸 보여준 거고요. 그런 세상이 온다니까요. 다 터놓고, 열어놓으면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설 자리가 생기는 거예요. 두고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