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부끄러운 고백

욕먹어도싸 조회수 : 2,062
작성일 : 2011-12-24 09:49:22

아침부터 또 아이를 되게 혼냈습니다.

 

7개월 둘째가 전에없이 새벽부터 혼자 깨어 낑낑대다 울다 하는 바람에

잠이 깬듯 안깬듯 비몽사몽 있다가 ..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고 7시쯤 됐을까요..

큰애가 작은애 옹알대는 소리에 깨서 쉬가 마렵답니다..

기저귀 뗀지 한참 됐고 혼자서 변기에도 잘 앉는 아이라서 제가 같이 일어나지 못하고

너 혼자 가서 싸라 .. 했지요. 다른 때는 잘 해요.

 

그런데 큰애도 이제 겨우 33개월인데 엄마랑 같이 하고 싶을 때도 있겠죠.

오늘 아침엔 엄마가 바지 내려주고 변기에 앉혀주고 그랬으면 싶었나 봅니다.

안방과 화장실 사이에서 장난치듯 왔다갔다 하길래.. 참지 말고 얼른 싸.. 하고

에휴.. 정신 차리고 일어나 닦아줘야지 .. 하면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 보니 혼자 쉬를 하긴 했는데

제가 일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못참았는지 바닥에 좀 흘려놨어요.

화장실 불 켜지 않고 들어갔던 저는 그 오줌을 밟고 순간적으로 불같이 화가 일어나더군요.

큰애 잡아다가 쉬 참지 말랬지 이게 뭐니 냄새난다 옷 벗고 씻자 하면서 내내 애를 혼내고 다그치고

씻기고 다시 팬티 바지 갈아입히면서도 이렇게 쉬 오래참고 장난치다가 바닥에 흘릴거면 아예 입지 말아라.. 했습니다.

 

압니다.

제가 좀 더 부지런히 정신 차리고 일어나 있었다면

막 잠에서 깬 아이에게 반갑게 아침인사를 건넬 수 있었을거에요.

쉬마렵다는 아이를 안아다 변기에 앉혀주고 씻겨줄 수 있었겠지요.

그 과정에서 제 품에 안긴 큰애는 엄마품이 좋아 깔깔 웃었을테구요.

 

문제는요,

제가 머리로는 잘 아는데 몸으로 옮기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주로 큰애가 혼날 때는 이럴 때에요. 아이가 뭔가 실수하고 잘못하긴 했지만

다시 되짚어보면 결국엔 제 잘못이었던 경우가 많은거죠.

알면서도 혼내놓고 제 눈치보는 아이에게 금세 활짝 웃어주지도 못하는 저는

참 못나고 부족하고 나쁜엄마입니다..

 

남편은 오후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일을 하니 새벽녘에야 잠이 들어서

아침 일찍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오로지 제 몫이어서.,

이제는 체념할 때도 됐지만 요즘처럼 아침이 좀 춥고 이불에서 나오기 싫고

잘 하다가도 참았던 것들에 지쳐서 임계치를 넘어갈 정도가 되면

여지없이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혼내게 됩니다.

얼마나 더 지나야 저는 저를 온전히 버리고 아이들을 위해 진심어린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첫애 키울 때는 나 혼자만의 시간도 가지고 싶었고 나를 위해 뭔가를 하고도 싶었지만

아이 키우면서보니 그런 시간이 제게 주어진다 해도 저는 온전히 저 혼자일 수 는 없다는걸 깨닫고

둘째 낳고 키우면서는 이게 바로 내 일이고 이 자리가 바로 내 자리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고 부족한 엄마라서 아직도 아직도 온전히 저를 다 내어주기엔 부족한 엄마지요.

 

예전에 어떤 엄마가 블로그에 아이를 혼냈던 날의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써 놓은걸 보고

뭐 엄마가 이래, 애를 너무 잡는거 아냐, 한번만 애 입장이 되면 안그럴텐데 - 그렇게 혼자 속으로 흉봤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딱 제가 그런 엄마가 됐더군요. 이제는 그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겠어요.

그 엄마도 매일 그렇게 애를 잡고 화를 내는 그런 엄마는 아니었을겁니다.

그런식으로 블로그에 글을 써 내려가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독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메모도 해 보고 블로그에 글도 써 보며 하루 하루 나아지려고 부단히 노력 중인데

한번씩 이렇게 제 몸을 제가 못 이기겠는 게으른 때가 오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듯 원점으로 돌아가네요.

 

아침에 그렇게 아이를 혼내놓고 베란다 창을 보니 밤새 눈이 내려 하얗더군요.

큰애가 눈이라면 그렇게 좋아하고 눈사람 눈사람 노래를 불렀었는데

바로 큰애를 데려다 눈 왔다~ 온통 하얀 세상이다~ 하면서 기분 전환 시키고 즐겁게 해 줬으면

참 좋을 엄마였을텐데.. 저는 방금 화냈다가 금세 웃으면서 밝아지는 엄마가 되는게 쑥스러워서 그냥 냅뒀어요.

웃기죠. 아이에게는 제가 온 세상이고 세상의 중심일텐데 저는 아직도 아이앞에서 체면을 차려요.

그게 우스워서 아주아주아주 쓴 커피를 한잔 내려 이렇게 남부끄러운 고백을 해 봅니다.

 

아아.. 화이트 크리스마슨데요..

저는 또 애들을 혼냈단 말이지요..

작은애가 선잠이 깨서 낑낑대는걸 사랑으로 토닥여주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할 야단을 쳤고

그저 엄마랑 손잡고 화장실 가고 싶어서 뱅글뱅글 돌았던 큰애 마음도 헤아려주지 못하고 혼을 냈어요.

아이들에게 참 부끄러운 아침입니다..

 

이제 좀 나아져야 할텐데요..

IP : 121.147.xxx.177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1.12.24 10:03 AM (1.225.xxx.104)

    반성하고 부끄러워하셨으니 나아지실겁니다.
    이제부터 안그러시면 되지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2485 왕따 당했을때 아이에게 어떻게 대처하라 가르쳐야하나요? 7 ........ 2011/12/26 2,540
52484 학교폭력을 위해 상담전문가 대거푼다는 무식한 정부 11 ----- 2011/12/25 1,716
52483 며칠전 위내시경검사를 했는데 4 심각 2011/12/25 2,510
52482 통풍환자가 아마씨를 먹어도 되나요? 5 걱정맘 2011/12/25 3,905
52481 (급질!!)아이스박스 스티로폼 재활용 맞죠? 내놓으면 가져갈까요.. 2 급해용 2011/12/25 4,022
52480 파리바게트 정말 짜증났어요. 6 .. 2011/12/25 5,762
52479 희한한게 나왔는데요, "대통령 측근비리 종합 현황도&q.. 참맛 2011/12/25 1,916
52478 보건소or 소아과? 3 예방 접종 2011/12/25 806
52477 자주 못보고 전화자주 안하고 사는 형님한테 명절날 뭐라고 인사해.. 2 ㅇㅇ 2011/12/25 1,225
52476 화요일에 태백 눈꽃 열차 예매해 놨는데요 8 난감 2011/12/25 2,090
52475 왕따에 관해서 궁금한.. 12 -- 2011/12/25 2,318
52474 1000년 명문가 우당 이회영 일가 10 명문가 2011/12/25 2,889
52473 요즘 장염이 유행이라던데, 증상이 어떤가요? 5 장염 2011/12/25 2,808
52472 일본산아닌거 없나요? 1 꽁치통조림 2011/12/25 1,146
52471 차이코프스키 - 제6번 <비창 교향곡> 1악장 2 바람처럼 2011/12/25 3,394
52470 출산 후엔 다들 그런건가요? 7 야옹엄마 2011/12/25 2,046
52469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했는데요 5 .... 2011/12/25 1,997
52468 정동영은 돌아온 탕자다.. 14 돌아온 탕자.. 2011/12/25 2,094
52467 아이 진로에 대해 여쭤요 (특목고,일반고) 9 엄마 2011/12/25 2,440
52466 난동증 여자가 읽을만한 책 추천 부탁드려요 3 난독증여자 2011/12/25 1,393
52465 유치원생 클스마스 선물 아이패드 많이 하나요! 5 프랑크 2011/12/25 1,590
52464 美 LA타임즈 "인기 팟캐스트 '나꼼수' 중지 위해 정.. 1 참맛 2011/12/25 2,093
52463 맛있는 만두의 비결... 4 초보엄마 2011/12/25 3,344
52462 전여옥 의원에게 있어 진보의 조건이란 24 세우실 2011/12/25 1,802
52461 KT직원들도 성과급 나오나요? 3 다이니 2011/12/25 3,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