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30년에 궐내 불당 설치를 놓고 여러 신하들이 절대 불가라고 반대하니까, 세종이 그럼 궐밖 가까이에 둔다고 합니다.그러니 또 당연히 안된다고 하죠... 세종은 궐내 안된대서 궐밖에 둔다는데 왜 난리냐... 고 하는데 이때 내용이 재밌어요 ㅎㅎ
세종 121권, 30년(1448 무진 / 명 정통(正統) 13년) 7월 19일(계묘) 1번째기사
<하연·정인지 등이 불당 설치 불가를 또 간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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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고, 정인지(鄭麟趾)는 말하기를,
“전하가 무릇 국사에 있어 모두 대신에게 의논한 연후에 시행하는데, 홀로 불사(佛事)에 있어서는 매양 상감의 독단에서 내시고 중론을 취하지 않으니, 비록 흥망에 관계되고 이해가 지극히 절실한 일이라도 오히려 여러 사람의 의논을 널리 취하는데, 불법이 무슨 가장 긴한 일이기에 강행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이 처음에 궁내(宮內)는 불가하다 하기에, 내가 이미 그 말을 따라서 성밖에 세우도록 허락하였는데, 지금 또 성밖을 불가하다고 하니, 정히 세 살 먹은 작은 아이를 달래는 것과 같다. 경들이 비록 《육전》을 의거하여 말하지마는, 《육전》의 법은 아랫사람을 위하여 말한 것이고 위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무릇 지금의 일이 위에서는 할 수 있어도 아래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만일 낱낱이 들어서 말한다면 많지 않은가.”
하였다. 연(演) 등이 또 아뢰기를,
“신 등이 처음에 궁내를 불가하다고 한 것은 궁성 밖을 가하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궁성 안은 더욱 불가하기 때문에 그 심한 것을 들어서 말한 것뿐입니다. 신 등이 처음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성명(聖明)한 임금이 어찌 이 같은 일이 있으랴 하였었는데, 오늘의 일은 정히 신 등이 생각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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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또 인지에게 묻기를,
“경이 나더러 여러 사람의 의논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니, 장차 나를, 스스로 가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일일이 신하에게 의논을 취하게 하려는 것인가.”
하니, 인지가 대답하기를,
“근자에 혹은 절을 창건하는 것으로, 혹은 불사로 간하는 자가 많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신이 감히 이 말을 한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이 불도를 나쁘다고 하여 말을 합하여 간하니, 내가 심히 아름답게 여긴다. 만일 어진 임금이라면 반드시 경들의 말을 따르겠지만, 나는 부덕(否德)하니까 따를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독단하고 아래에 의논하지 않는 것은, 지금의 간하는 자가 대개는 중심에서 나오지 않았으므로, 혹은 조정에서 의논하고 물러가 말하기를, 이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하고, 혹은 임금더러는 불가하다 하면서 자기는 하고, 혹은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처자에게 끌려서 금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 그 말과 행동이 이와 같기 때문에 내가 일찍이 의논하지 않은 것이다. 전날에 《치평요람(治平要覽)》을 만들 때에 정인지(鄭麟趾)가 불사(佛事)로 상서하니, 김문(金汶)이 옆에서 웃었다. 내가 지금까지 잊지 않았는데, 이 뜻을 인지는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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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보니 성격 나와요....
이거 외에도 '어진 왕이라면 능히 경들 뜻을 따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못하여 따를 수가 없다'는 멘트 다른 기사에서도 정말 많이 나오네요....
진짜 한 성격 하신듯.... 아예 세종실록 처음부터 읽고있는데 흥미진진합니다 :)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정말 오랜 시간 노력 많이 들여서 해낸 프로젝트이니 관심있는분들 가서 뒤적여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