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싸움은 개표이다 - 6.2선거 서초구 개표참관기
나는 작년 6.2 지방선거에서 곽노현측 서초구 개표 참관인으로 양재동 a/T 센터에서 개표 과정을 참관했었다. 주지하듯 당시 지방선거는 교육감을 비롯해 서울시장과 구청장, 지방의회 선거까지 일제히 치러졌다.
그리고 교육감 선거는 곽노현이 당선했지만, 한명숙 후보는 23,000여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였다.
그날 개표는 모든 선거가 한 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는 개표소 이곳저곳을 다 오가며 개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소위 ‘강남3구’라고 하는 강남, 서초, 송파의 3개구 개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지금도 지우지 못한다.
먼저 개표 과정을 살펴보자. 개표는 3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단계는 매우 길다란 탁자 위에 개표함을 열어 투표용지를 한꺼번에 쏟아놓고 이것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단순 작업으로, 이 첫 단계는 서초구의 경우 서울교대 학생들이 담당했다.
두 번째 단계는 분류 단계로, 첫 단계에서 정리된 투표용지를 마치 은행에서 돈을 세는 기계와 같은 검표기에 넣어 각 후보별로 득표된 자리로 분류된다. 이것은 센서가 달린 자동인식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며 그 상황이 모니터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 단계는 30~40대 초.중.고 교사들이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센서가 읽지 못하는 표, 가령 기표가 희미하게 되었다든지, 기표란 라인에 물렸다든지 엉뚱한 곳에 기표되었다든지, 두 개 난 이상에 기표되었다든지, 다른 필기구로 기표된 표 등을 에러로 분류하여 한쪽으로 튕겨내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두 번째 단계에서 넘어온 에러 표를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최종적으로 표 집계를 마감하는 곳으로, 여기는 50~60대초의 노년에 가까운 교사들이 담당한다.
우선 에러 표는 선관의 지침에 따라 명확히 특정 후보의 득표가 맞는 것과 논란이 있는 표로 가려진다. 이 논란이 있는 표는 양쪽 후보 참관인(당시 교육감 선거의 경우는 곽노현과 이원희 측 참관인)이 확인하여 양 측이 인정하면 통과되고 어느 한쪽이라도 인정하지 못하면 따로 분류해 둔다.
이렇게 합의되지 못한 표는 개표를 총괄하는 중앙의 본부로 한꺼번에 가져가서 심사를 받는데, 여기서도 합의되지 못한 표는 무효표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상없이 넘어온 표는 이 세 번째 마지막 단계에서 100장씩 묶음으로 각 후보별 득표가 완료되고 확정된다. 이 확정은 거의 교장이나 교감급 60대 교사가 맡는다.
첫 번째는 단순 작업이므로 거의 문제가 없다. 두 번째 단계도 자동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부정투표 시비의 문제는 없다. 여기서 문제는 검표기가 아주 예민해서 고장이 잘 난다는 것이다. 복사기로 말하자면 용지가 걸리는 소위 잼 현상인데, 이럴 때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검표기 회사 직원밖에 이것을 처리할 수 없어서 여기저기서 기사를 부르는 바람에 수리가 지체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말하려는 서초, 강남, 송파의 3개구에서 유독(!) 개표가 늦어지는가에 대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가장 문제는 세 번째 단계이다.
우선 에러 표를 수작업으로 분류할 때, 각 후보의 표를 탁자위에 한 장씩 올려놓는데, 만일 고의로 혹은 실수로, A라는 후보자의 득표용지 10매 위에 B 후보 득표 용지 한 장을 올리면 그 10매는 순식간에 B 후보의 것이 되고 만다. 이 과정을 뒤에서 참관인 보지 않으면 그야말로 수십 장의 표의 주인이 한 순간에 뒤바뀌는 것이다.
나는 당시 실제로 이런 일을 발각해 내었다. 분류된 표 뭉치 중 이상한 것을 지적하여 다시 확인해 달라고 했는데, 이원희 표 뭉치에서 곽노현 표가 11장 나온 것이다. 나를 비롯해 모두는 매우 놀랐으며 나는 당시 검표자들에게 따졌는데, 워낙 작업이 밀려 있어서 본부에서도 그들에게 주의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세 번째 단계의 참관 문제는, 최종 단계에 있다.
각 단계에서 묶여 넘어온 뭉치는 묶는 고무줄의 색이 다르다. 마지막 단계 고무줄은 붉은 색으로, 앞서 말한 나이든 교사(!)가 담당하는데, 만일 참관인이 부재한 사이 A 후보자 100매 표 맨 위에 B 후보자의 표를 한 장 얹으면 그것으로 그 표는 모두 B 후보자의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은 적발할 방법도 없다.
참관인은 당시 각 후보측 2명인데, 워낙 긴 시간동안 엄청난 표와 과정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단계를 보는 시간은 극히 일부이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나이든 교사는 한 투표구별로 얼마든지 수 백표의 표를 조작할 수 있다. 이건 너무 쉬운 일이다. 서초구만 약 100개의 투표구가 있고, 강남구와 송파구를 합치며 수백개의 투표구가 있음을 상기하자. 그리고 A 후보의 표 100표가 B 후보에게 부정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득표 차이로는 200표가 된다는 것을 상기하자.
당시 6.2 지방선거와, 그 이전의 주경복 대 공정택의 교육감 선거에 왜 하필 강남 3구의 개표가 가장 늦었고, 그리고 왜 그 선거구에서 상대방에게 몰표가 나와 역전되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는다.
6.2 선거에서 나는 곽노현이 당선 확정되는 것을 보고 한명숙은 근소하게 앞선 것을 확인하고 새벽 5시 반경에 집으로 왔다. 그리고 한숨 눈을 붙이고 12시 넘어 깨어보니 한명숙은 낙선하였는데, 강남 3구에서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너무 이상하고 수상하다.
서초구 개표소에는 민주당 참관인도 여러명 있었는데, 내가 나올 때는 모두 집에 가거나 한두잔 마신 맥주 탓에 한 귀퉁이 참관인 석에서 잠들어 있었다. 단언하건대, 깨어있는 야당 측 참관인은 그야말로 극소수였다.
앞서 부정이 생길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신경쓰는 참관인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최종 집계하는 나이든 교사 한명 말고는 나도 너도 며느리도 귀신도 모른다.
그런데 또, 왜 하필 강남 3구의 개표가 제일, 그것도 상당한 시간 차이로 늦는가? 나중에 언론 보도를 보니 검표기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실제로 검표 과정에서 검표기가 자주 고장났기 때문에 두 번째 단계에서 많이 더뎠다.
하지만 나중 언론 보도를 보니 초기의 검표기 고장은 강남 3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검표기를 다루는데 익숙해진 교사들이 조작을 잘 해서 개표에 엄청난 속도가 났다. 다시 말해 서초구에서는 더 이상 검표기는 고장 나지 않았고 도리어 탄력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도 이상하게 중앙에서 전체 방송으로 “30분 쉬었다 합시다” “간식 시간 1시간입니다” 등을 내보내어 개표가 자꾸 늦어졌다.
심지어는 어떤 라인에서 작업을 계속하자 “천천히 하라”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교대 학생들은 왜 자신들의 단계는 끝났는데 집에 보내주지 않는가 불평하거나 탁자 위에 엎어져 자고, 교사들은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데 중앙에서 왜 자꾸 쉬었다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다.
그래서 결국 내내 서서 돌아다녀야 하는 참관인은 다 지쳐 잠들거나 집에 가버리고, 내가 집에 온 새벽 5시 경엔 참관인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역전.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은 굵직한 경험만을 밝힌 것이다. 그날 개표 과정에서 겪은 수상한 사연은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이것 말고도 무지 많다. 제목에 쓴 것처럼, 내가 보기에 싸움은 개표이다. 여기서 지면 아무리 공 들여 선거운동하고 소중한 한표한표 모아도 말짱 도루묵이다. 그리고 낙선이다. 오늘 밤 검표 과정을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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