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와 남녀공학대학 논쟁 재미있게 읽었어요.
졸업생/재학생까지 가세해서...판이 커지는 것 같은데,처음의 취지인 '정보전달'관련해서 몇가지 제 경험 추가할게요.
지역 국립대학교 교수에요.학생들 취업지도 열심히 해야해요.
그러다보니 요즘 게시판 글보면서 학생과 부모님들이 사정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단과대학 수석으로 들어갔어요. 굉장히 좋은 성적이었지만 학부 졸업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40대 후반인 제 나이,학부 졸업하던 시절 여자 대학생이 공채로 응시할 수 있는 대기업은 거의 없었거든요. 대우가 대졸여성 공채 (왕회장-김우중씨 부인의 강력한 요구로 )최초로 하던 시절이라,서울대 나와도 자격증 나오는 학과 아니면, 여자 선배들은 사범대학 편입해서 공립학교 교사로 나갔어요. 그러다보니,전공 하나도 못살리는데,우리가 뭐하러 서울대 다녔는가 하는 얘기 많이 했습니다.
저는 대학원 진학하고 유학 떠나 계속 공부했어요.
지도교수님은 저를 차별없이 아끼고 추천해주시고 장학금 주선해주셨지만,학위받고 귀국해 번번히 취업에 고배를 마시자 점점 부담스러워하셨어요. 차라리 남자 후배에게 응시를 양보하라는 말씀까지 하시고...제가 학생들 취업을 맡는 입장이 되니 그 마음 이해할 것 같아요...서울대에서 쳐다보는 유명대학들은 경쟁자 많으니 여자인 저를 안 뽑더라구요. 고를 수 있는 입장이라서요.번번히 고배 마시다가 과감히 낮춰 지방국립대학 응시해서 합격하고 지금까지 (저를 뽑아준 이 곳에 감사하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솔직히 단대 수석으로 들어가 쭉 장학금으로 공부하면서 저나 제 친구들 제가 모교 교수되리라 믿어의심치 않았기에 처음은 쇼크였어요)
제가 졸업하면서 몇년동안 제 선후배 친구들,여대 갈 걸 그랬다는 얘기 많이 했어요.
요즘처럼 공채시스템이 아니었던 그 시절에는 '여성인력(고학력 필요하고 안정되지만 승진/승급 남자만큼 못해주는 자리)'이 필요한 회사들만 여대에 서류를 보내왔거든요. 예를 들면 대기업 회장 비서실,외국계은행/대사관에서 어문계전공자처럼요. 그러니 취업처로 오는 서류로 지원해서 성공율이 높았어요.
서울대 여자졸업생들은 학교본부의 취업처 통해서는 서류한번 못 내보고요.
서울대학에는 대기업 핵심인력 필요한 곳들이 서류를 주니까,교수님이 아무리 여학생들 추천을 해주셔도 그 곳 회사 면접에서 잘라버리는 겁니다.그러다보니 될 놈이나 밀어주자 싶어 점점 교수님들도 추천 자체를 꺼리시니 차별받는 것 같고 많이 억울 했지요.(80년대라는 걸 기억해주세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시절 대학진학할 때 '여자직업으로 좋다'는 부모님 추천전공(사범대/간호대/약대) 귓등으로도 안들었는데, 막상 졸업때 비서실이나 외국대사관 직원 같은 일자리에 취직했다고 만족했을런지는 모르겠어요.사회의 핵심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겠다는 각오가 대단했거든요. 그 시절 우리는 '사회진출투쟁'이란 것도 했습니다.ㅎㅎㅎ(지금은 뭐 꼭 그렇게 '남자랑 대등하게 경쟁'해서 '핵심인력'이 되겠다는 생각도 흐려졌지만요.만만한 자리 취직해서 그렁저렁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졸업 후 한 십년은 여대갈 걸 그랬다는 생각,많이 했습니다.
취직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실 때,
경쟁심한 직장 들어와 죽도록 일하면서 '애 키울 때'.
힘든 공부해 빡센 직장 들어와 월급을 많이 받아도 시댁에 해야하는 도리는 차이가 없고
아이 키우느라 몸도 마음도 정신도 만신창이인지라 직장내에서 자꾸 뒤쳐지는게 느껴질 때.
내 고통을 남자선배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
부모님들이 권하던 이른바 '여자에게 좋은 직장'갈 걸 그랬다는 생각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죽도록 힘든 시기 지나고 어느 정도 제 분야에서 성과가 쌓이니까 또 슬슬 마음이 바뀝니다.
예를 들면,제가 있는 지역에서 서울대 동창회를 열어요. 거기에 가면,지역의 중견기업 경영자,산업공단 대기업 책임자 분들이 심심해하며 나오시는데, 학생들 진로교육 같은 거 부탁드리면 쾌히 응낙해주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때 핵심부서에 있는 분들에게 귀중한 조언을 받을 수 있어요.
우리 다 알다시피 사회생활에서 네트워크(인맥)이란게, 안될 사람을 되게 해주거나 그냥 앉아만 있어도 자리에 넣어주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죽기살기로 버티면서 어느 정도 업계에서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에는 '핵심지위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선배의 조언'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를거에요.
그러니 남녀공학 재학생과 졸업생 여러분, 지금 30대의 위치에서 학교의 지원/선배의 인맥 없다고 포기해버리는 것은 너무 일러요.전문성을 가지려면 죽기살기로 살아남으세요.50대 되면 여성몫으로 윗 자리가 좀 배분되는데 그 때까지 살아남은 여자들이 많지않습니다.(개각때마다 황당한 여교수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거 보면,50대까지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직종이 교수밖에 없었나보다 미안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여대의 장점은 여성에게 리더쉽을 키워준다는 것으로 대학측은 어필하는데요.제가 보기에는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직종개발도 장점이에요.예를 들면 모두가 세계적 예술가를 지향해야하는 것처럼 밀어붙일 때에 '유리스믹스'같은 직종을 알려주거나,국제적 논문쓰라고 동물실험하는게 심리학의 최첨단이라고 배우고 있을 때,'놀이치료'같은 과정 만들어주거나 하는 거,저는 상당히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따님의 진학을 생각할 때,자존감이 강하고 경쟁 센 직종에서 최고가 될 때까지 버텨낼만한가,가정과의 양립을 중시하는가 진지하게 고려해보라는 겁니다.
국제적 연구내야한다고 압박받으면서 우울증과 싸우며 가족과 떨어져 지방대학/지방연구소에서 일하는 뛰어난 여성학자들이 많아요.(지방에 사는 건 억울하지않은데,도시가 작아서 남편이 함께 전공살린 직장을 구해서 살기가 쉽지않아요.저희 대학 여교수 10명중 남편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3명 밖에 안되요.ㅠㅜ)그럴 때,저렇게 개인연구소로 일할 수 있는 전공이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계속 주말부부로 살다보면 아이한테 미안하고 우리 부부도 힘들고)
여대와 공학대학의 대입커트라인/취업율로 비교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어요.
지금은 전공에 따라 취업의 형태도 제각각이고,입시전형이 너무 달라서 대입커트라인도 제각각이에요. 학과에서 입학성적으로 장학금 주려고 해도 어느 전형으로 들어왔는지에 따라 다 달라서 머리를 싸매야하거든요.
기업에서도 핵심기획부서냐 영업/인력관리부서냐 생산관리부서냐에 따라 대학들을 가려서 나눠뽑아요. 80~90년대처럼 재벌그룹단위의 공채로 학벌만 보고 뽑아서 본부에서 배분하는 방식이 아니거든요. 그러니,자신(혹은 자녀)의 성향에 따라서 어떤 라이프스타일이 적합한가 보면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벌은 그 후에나 쓸모가 있습니다.
끝없는 경쟁을 즐길 수 있는가,체력이 좋은가,대인관계가 좋은가,지적호기심이 무한한가.
자존감이 강한가( 조직생활 적응할 수 있는가)집에서 어디까지 뒷받침해줄 수 있는가.
문화생활 꼭 해야하는가.
자기 적성이 확실치 않다면
지나치게 전문화/세분화된 전공 선택하지 말고 시장이 좁은 나라이니 '주력업종'언저리에 있는게 좋습니다.
제 직장인 지역대학 관련해서 홍보하나 하자면요.
트렌드에 민감해야하는 광고나 패션업계를 지망한다면,인서울 대학 진학하는게 필요하겠지만 대기업 정규직에서 안정된 삶을 목표로 한다면 지방의 거점국립대학(공학) 진학도 나쁘지않은 선택입니다.
기업마다 공장은 지방에 있는데 공장 발령내면 사표내고 튀어버려서 지역거점국립대학에 추천해달라는 의뢰가 꽤 옵니다.급여도 좋고 안정적입니다. (지방국립대라면 어느 대학 어느 학과라면 꼴찌라도 취직된다는 말은 아니라는 거 덧붙이지않아도 되겠지요?)
좋은 성적으로 아깝다 소리들으며 지방국립대 온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아깝지않은 성적(커트라인 바로 위)으로 온 학생은 사실 대학내에서 수업 따라가는 것도 쉽지않아요.취직안된 아이 아무나 추천해서 결과 안좋으면 다음에는 다른학과로 티오가 가니까 아무나 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 꼭 커트라인 달랑달랑 하게 합격해야 잘 된거라고 생각하지말아주세요.
3년동안 과회장하면서 리더쉽 강하고 판단력 좋은 학생이 있었어요. 졸업 앞두고 10월에 대기업에 우선 취업되었습니다.야간근무도 있어서 쉽지는 않습니다만, 초봉이 수당 다 합쳐서 4천가까이 됩니다.
그러니 남녀공학 가느니 여대가 좋다는 논리라면,같은 성적으로 서울 중위권 대학가서 평범하게 지내느니 지방거점 국립대학 수석으로 오는 것도 한 번 생각해봐 주세요.(회사에서 지방대 출신자에 원하는 것은 "위 아래 잘 섬기는 성격좋은 애"들만 찾는 애로점은 있습니다만)
이 와중에 교수도 아이반찬은 해줘야하길래 저녁메뉴 찾으러왔다가,선생의 직업병(훈계질)이 나왔습니다...라면 끓여먹어야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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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출신 교수치고 논리없는 글이라 지적하시길래,애 밥주고와서 고쳐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