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가 아프다]“아이팟을 함께 묻어주세요” 14살 다훈이의 마지막
경향신문|글 류인하·박효재·이혜인·이재덕·권기정 | 사진 정지윤 기자|
입력 2011.12.14 22:17|수정 2011.12.15 00:11
중학교 2년생 다훈이(14·가명)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고 부모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성적이 오르면 엄마 얼굴은 밝아졌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차가워졌다. 다훈이는 자기 만족보다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부모는 다훈이가 외고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중1 때부터 성적이 좋아야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훈이의 희망과 학교생활, 친구 관계에는 무관심했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워버렸다.
부모의 뜻을 거스를 생각도, 용기도 없었다. 외고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영어학원을 다녔다. 엄마가 사준 영어원서도 열심히 읽었다. 중1 땐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엄마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전교 1등도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다훈이의 7평(23.14㎡) 공부방 한쪽 면은 영어와 제2 외국어 대비용 독일어 참고서로 가득 찼다.
중2 1학기 성적이 반에서 하위 30%로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시험 2~3주 전부터는 새벽까지 공부했다. EBS 교육프로그램을 시청하고, 학원에 열심히 다녔다.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과외도 했지만 한번 떨어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수학·영어 이동식 수업 중급반 수업을 들었던 다훈이는 2학기엔 하급반으로 내려갔다.
다훈이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케이블TV의 < 현장추적 사이렌 > 을 보면서 경찰을 동경하게 됐다. 형사가 사흘 밤낮을 고생해 잡은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는 장면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장난감 수갑을 구입해 친구 손에 채우는 놀이를 좋아했다. '미란다 원칙'을 읊을 때면 진짜 경찰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성적이 떨어지면서 '경찰놀이'는 끝났다. 좋아하던 리모컨 자동차 조립놀이도 그만뒀다. 엄마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순위가 떨어진 성적표를 가져간 날 엄마는 다훈이에게 처음으로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아침밥을 먹을 때조차 잔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엄마는 친척들이 모인 명절날 "애가 점점 공부를 못한다. 왜 저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타박했다. 부끄러웠지만 화도 났다. 아빠는 "2학기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오르면 네가 원하는 스마트폰을 사줄 테니 좀 더 열심히 해봐라"고만 했다. 엄마가 다훈이를 욕해도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는 엄마와 말리지 않는 가족·친척들의 태도는 견디기 어려웠다. 다훈이는 엄마도, 아빠도, 친척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만 신경썼다. 학교에 오래 남아 있기 싫어 방과후 수업인 '또래학습'에 불참하겠다고 했지만 관심을 갖는 선생님은 없었다. 한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애를 굳이 따로 가르친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문 앞에 걸린 '△△과학고 XXX 합격' '△△외고 XXX 합격 축하'라는 플래카드와, '지금 눈 감으면 미래의 눈도 감긴다'며 공부를 다그치는 듯한 급훈은 매일 다훈이를 괴롭혔다.
의지할 것은 곰돌이 인형과 아이팟밖에 없었다. 곰돌이 인형을 껴안고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상처를 잊을 수 있었다. 아이팟과 곰인형은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지도 않았고, 곁을 떠나지도 않았다. 가족보다 친구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어느날 다훈이는 수업 도중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라고 말했다. 친구는 웃으며 "그래 떨어져봐"라고 했다. "나 한국을 떠나고 싶어. 미국 가서 살고 싶어. 스티브 잡스를 만나고 싶어"라고도 말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세상을 향한 분노도 쏟아냈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른들이 자녀에게 공부를 첫번째로 강요해서야. 다른 것 말고 공부만 강요하니 학생들은 시달릴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인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훈이의 '구조 신호'는 누구에게도 접수되지 않았다.
다훈이는 지난 10월 20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아이의 방 책상에는 A4용지 두 장짜리 유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정말 죽어라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도 좋은 성적을 얻고 싶었는데 엄마는 친척들이 있는 데서 나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내 자존심은 망가졌습니다. 교육만 강조하는 한국의 사회 구조는 잘못됐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무조건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이 싫습니다.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사회를 떠나고 싶어요. 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스티브 잡스를 만나러 먼저 갈게요. 엄마 아빠, 동생만큼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제 무덤에 아이팟과 곰인형을 함께 묻어주세요."
경향신문|글 류인하·박효재·이혜인·이재덕·권기정 | 사진 정지윤 기자|
입력 2011.12.14 22:17|수정 2011.12.15 00:11
중학교 2년생 다훈이(14·가명)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고 부모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성적이 오르면 엄마 얼굴은 밝아졌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차가워졌다. 다훈이는 자기 만족보다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부모는 다훈이가 외고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중1 때부터 성적이 좋아야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훈이의 희망과 학교생활, 친구 관계에는 무관심했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워버렸다.
부모의 뜻을 거스를 생각도, 용기도 없었다. 외고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영어학원을 다녔다. 엄마가 사준 영어원서도 열심히 읽었다. 중1 땐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엄마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전교 1등도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다훈이의 7평(23.14㎡) 공부방 한쪽 면은 영어와 제2 외국어 대비용 독일어 참고서로 가득 찼다.
중2 1학기 성적이 반에서 하위 30%로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시험 2~3주 전부터는 새벽까지 공부했다. EBS 교육프로그램을 시청하고, 학원에 열심히 다녔다.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과외도 했지만 한번 떨어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수학·영어 이동식 수업 중급반 수업을 들었던 다훈이는 2학기엔 하급반으로 내려갔다.
다훈이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케이블TV의 < 현장추적 사이렌 > 을 보면서 경찰을 동경하게 됐다. 형사가 사흘 밤낮을 고생해 잡은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는 장면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장난감 수갑을 구입해 친구 손에 채우는 놀이를 좋아했다. '미란다 원칙'을 읊을 때면 진짜 경찰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성적이 떨어지면서 '경찰놀이'는 끝났다. 좋아하던 리모컨 자동차 조립놀이도 그만뒀다. 엄마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순위가 떨어진 성적표를 가져간 날 엄마는 다훈이에게 처음으로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아침밥을 먹을 때조차 잔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엄마는 친척들이 모인 명절날 "애가 점점 공부를 못한다. 왜 저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타박했다. 부끄러웠지만 화도 났다. 아빠는 "2학기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오르면 네가 원하는 스마트폰을 사줄 테니 좀 더 열심히 해봐라"고만 했다. 엄마가 다훈이를 욕해도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는 엄마와 말리지 않는 가족·친척들의 태도는 견디기 어려웠다. 다훈이는 엄마도, 아빠도, 친척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만 신경썼다. 학교에 오래 남아 있기 싫어 방과후 수업인 '또래학습'에 불참하겠다고 했지만 관심을 갖는 선생님은 없었다. 한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애를 굳이 따로 가르친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문 앞에 걸린 '△△과학고 XXX 합격' '△△외고 XXX 합격 축하'라는 플래카드와, '지금 눈 감으면 미래의 눈도 감긴다'며 공부를 다그치는 듯한 급훈은 매일 다훈이를 괴롭혔다.
의지할 것은 곰돌이 인형과 아이팟밖에 없었다. 곰돌이 인형을 껴안고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상처를 잊을 수 있었다. 아이팟과 곰인형은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지도 않았고, 곁을 떠나지도 않았다. 가족보다 친구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어느날 다훈이는 수업 도중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라고 말했다. 친구는 웃으며 "그래 떨어져봐"라고 했다. "나 한국을 떠나고 싶어. 미국 가서 살고 싶어. 스티브 잡스를 만나고 싶어"라고도 말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세상을 향한 분노도 쏟아냈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른들이 자녀에게 공부를 첫번째로 강요해서야. 다른 것 말고 공부만 강요하니 학생들은 시달릴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인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훈이의 '구조 신호'는 누구에게도 접수되지 않았다.
다훈이는 지난 10월 20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아이의 방 책상에는 A4용지 두 장짜리 유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정말 죽어라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도 좋은 성적을 얻고 싶었는데 엄마는 친척들이 있는 데서 나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내 자존심은 망가졌습니다. 교육만 강조하는 한국의 사회 구조는 잘못됐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무조건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이 싫습니다.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사회를 떠나고 싶어요. 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스티브 잡스를 만나러 먼저 갈게요. 엄마 아빠, 동생만큼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제 무덤에 아이팟과 곰인형을 함께 묻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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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팍에서 긁어왔습니다.
경쟁만 해야하는 사회가 안타깝기도 하고,
또 다훈(가명)이네 같은 가정이 드문 것 같지도 않아서 올려봅니다.
82에도 하루에 몇번씩 토로가 올라오는 거 같아요.
아이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 때 한번씩 생각해봅시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인격과 자존심 지켜주기.
나와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하기.
지나친 욕심과 걱정 버리기.
밝고 건강한 생각을 가진 아이로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는 것이 큰 공헌이라는 것을 요즘들어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