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10대가 아프다]“아이팟을 함께 묻어주세요” 14살 다훈이의 마지막

.. 조회수 : 1,812
작성일 : 2011-12-14 23:31:11
중학교 2년생 다훈이(14·가명)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고 부모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성적이 오르면 엄마 얼굴은 밝아졌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차가워졌다. 다훈이는 자기 만족보다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부모는 다훈이가 외고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중1 때부터 성적이 좋아야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훈이의 희망과 학교생활, 친구 관계에는 무관심했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워버렸다.

부모의 뜻을 거스를 생각도, 용기도 없었다. 외고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영어학원을 다녔다. 엄마가 사준 영어원서도 열심히 읽었다. 중1 땐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엄마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전교 1등도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다훈이의 7평(23.14㎡) 공부방 한쪽 면은 영어와 제2 외국어 대비용 독일어 참고서로 가득 찼다.

중2 1학기 성적이 반에서 하위 30%로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시험 2~3주 전부터는 새벽까지 공부했다. EBS 교육프로그램을 시청하고, 학원에 열심히 다녔다.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과외도 했지만 한번 떨어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수학·영어 이동식 수업 중급반 수업을 들었던 다훈이는 2학기엔 하급반으로 내려갔다.

다훈이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케이블TV의 < 현장추적 사이렌 > 을 보면서 경찰을 동경하게 됐다. 형사가 사흘 밤낮을 고생해 잡은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는 장면을 보며 희열을 느꼈다. 장난감 수갑을 구입해 친구 손에 채우는 놀이를 좋아했다. '미란다 원칙'을 읊을 때면 진짜 경찰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성적이 떨어지면서 '경찰놀이'는 끝났다. 좋아하던 리모컨 자동차 조립놀이도 그만뒀다. 엄마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순위가 떨어진 성적표를 가져간 날 엄마는 다훈이에게 처음으로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아침밥을 먹을 때조차 잔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엄마는 친척들이 모인 명절날 "애가 점점 공부를 못한다. 왜 저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타박했다. 부끄러웠지만 화도 났다. 아빠는 "2학기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오르면 네가 원하는 스마트폰을 사줄 테니 좀 더 열심히 해봐라"고만 했다. 엄마가 다훈이를 욕해도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는 엄마와 말리지 않는 가족·친척들의 태도는 견디기 어려웠다. 다훈이는 엄마도, 아빠도, 친척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는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만 신경썼다. 학교에 오래 남아 있기 싫어 방과후 수업인 '또래학습'에 불참하겠다고 했지만 관심을 갖는 선생님은 없었다. 한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애를 굳이 따로 가르친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문 앞에 걸린 '△△과학고 XXX 합격' '△△외고 XXX 합격 축하'라는 플래카드와, '지금 눈 감으면 미래의 눈도 감긴다'며 공부를 다그치는 듯한 급훈은 매일 다훈이를 괴롭혔다.

의지할 것은 곰돌이 인형과 아이팟밖에 없었다. 곰돌이 인형을 껴안고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상처를 잊을 수 있었다. 아이팟과 곰인형은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지도 않았고, 곁을 떠나지도 않았다. 가족보다 친구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어느날 다훈이는 수업 도중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라고 말했다. 친구는 웃으며 "그래 떨어져봐"라고 했다. "나 한국을 떠나고 싶어. 미국 가서 살고 싶어. 스티브 잡스를 만나고 싶어"라고도 말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세상을 향한 분노도 쏟아냈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른들이 자녀에게 공부를 첫번째로 강요해서야. 다른 것 말고 공부만 강요하니 학생들은 시달릴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인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훈이의 '구조 신호'는 누구에게도 접수되지 않았다.

다훈이는 지난 10월 20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아이의 방 책상에는 A4용지 두 장짜리 유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정말 죽어라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도 좋은 성적을 얻고 싶었는데 엄마는 친척들이 있는 데서 나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내 자존심은 망가졌습니다. 교육만 강조하는 한국의 사회 구조는 잘못됐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무조건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이 싫습니다.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사회를 떠나고 싶어요. 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스티브 잡스를 만나러 먼저 갈게요. 엄마 아빠, 동생만큼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제 무덤에 아이팟과 곰인형을 함께 묻어주세요."

 

IP : 125.134.xxx.19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dd
    '11.12.14 11:34 PM (122.32.xxx.93)

    아 슬픕니다.
    다훈이의 명복을 빕니다. 행복한 세상에서 하고 싶은 거 맘껏 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빕니다.

    이 교육현실 어쩌면 좋아요.
    모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어서 되면 좋겠습니다.

  • 2. ...
    '11.12.14 11:39 PM (119.67.xxx.202)

    저는 이 나라의 교육에 치가 떨리는 사람인데도
    며칠 전 기말 망쳤다고 아이 혼내고
    오늘 느닷없이 본 한자시험은 100점이라고해서 무지 칭찬해주었는데....
    점수로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하는 엄마라고 아이가 느꼈을까요.
    반성되네요.
    이 나라에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아이가 행복해 할까요.....

  • 3. 지금
    '11.12.14 11:40 PM (211.194.xxx.186)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이네요.
    무한경쟁이라는 깔때기속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 4. 참맛
    '11.12.15 12:48 AM (121.151.xxx.203)

    어휴.....

    참 갑갑하네요.
    아이도 불쌍코, 어미도 불쌍코.....

  • 5. 우리친구아이가
    '11.12.15 1:14 AM (123.213.xxx.179)

    같은 학교 다녀요.
    엄마가 학교교사래요.
    집도 여유있고 그동네가 잘 사는 동네라 아마 스마트폰도 다 가지고 있다네요.

  • 6. ..
    '11.12.15 10:15 AM (175.113.xxx.38) - 삭제된댓글

    초등 성적이 거품이 많죠.. 본인이 알아서 욕심있게 하지않고 엄마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성적은
    모래성이에요.. 아이가 숨쉴 구멍이 없었나부네요.. 정말 안됐어요.. 저세상가서 편안히 쉬었으면
    좋겠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50478 '청장 해킹' 불러온 경찰 승진 스트레스…어느 정도기에? 세우실 2011/12/23 477
50477 정치 관련 읽을거리 추천합니다 1 행복한생각중.. 2011/12/23 398
50476 경포대 말고 숙박할 수 있는 한산한 바닷가 추천해주세요~ 7 // 2011/12/23 1,474
50475 제주도맛집 6 브리 2011/12/23 2,471
50474 산타선물은 몇살까지 줘야 할까요? 4 산타선물은 .. 2011/12/23 1,241
50473 이런 것도 일종의 입덧인가요? 10 임신3개월 2011/12/23 1,169
50472 추우니까 인터넷 쇼핑만 7 쇼핑 2011/12/23 1,807
50471 정봉주 구하기, 주진우 구하기 장담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을것입.. 26 소스통 2011/12/23 3,002
50470 남편 바람 정황(두번째) 34 성공할꺼야 2011/12/23 9,872
50469 [단독] MB. 내곡동 땅 매매 직접 지시했다. 8 truth 2011/12/23 2,594
50468 캐나다 여행지 추천 부탁드려요 2 ... 2011/12/23 859
50467 결혼21년만에 남편이랑 단둘이 해외(?)여행 가요 3 여행 2011/12/23 1,355
50466 지금 너무 난감해요ㅜ.ㅜ 폴로 쟈켓요.. 2011/12/23 546
50465 불쌍한 왕따 여고생 .. 조금만 견디지... 19 ----- 2011/12/23 3,929
50464 아~ 이렇게 들키는구나(산타선물 들켰어요) 2 하트 2011/12/23 1,351
50463 보험설계사 (fp,pf 등등) 급여가 생각보다 많네요.. 12 똥강아지 2011/12/23 16,282
50462 피곤할 때 고주파같은 소리때문에 괴로우면? 7 산산 2011/12/23 1,334
50461 판매직원의 기분 나쁜 태도 3 위로해주세요.. 2011/12/23 1,494
50460 BBK 잘 모르는데요... 10 ... 2011/12/23 1,540
50459 지금 아고라에 재밌는 글이 올라왔어요(시모님건) 15 ㅇㅇㅇ 2011/12/23 3,773
50458 정봉주가 유죄이면 박근혜도 유죄다! 서명해주세요. 벌써 3만 넘.. 4 친일매국좆선.. 2011/12/23 863
50457 서울에있는 타임상설할인매장 아시는분~ 3 코트사고파 2011/12/23 8,578
50456 끼리 크림 치즈 드셔보신분 계신가요?? 3 베이킹 2011/12/23 1,469
50455 뽁뽁이.이중창일때어디다설치해요? 3 필기 2011/12/23 3,220
50454 상대적으로 마음편히 쓸 수 있는 좋은 신용카드 있으면 소개해주세.. 3 카드 2011/12/23 1,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