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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차마 미안하다는 말도 채 못했는데...지인이 돌아가셨네요.

패랭이꽃 조회수 : 2,632
작성일 : 2011-12-05 08:10:04
기독교적 내용이 많으니 거부감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인 82님들이 계시면 나누고 싶어요.  그외에는 패스 부탁드려요.

조용히 긁적거립니다. 여기 외에는 이런 감정을 담담히 쓸 수 있는 곳이 없네요.
지인이 돌아가셨어요. 교회 홈피를 가보니 그 분의 생전 환하게 웃는 얼굴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니 미안하다는 말 조차 못했는데 그분의 삶을 한 동안 가까이 함께 했던 사람으로서
원망스럽기도 하고 착잡하고 슬프고 그저 This is life(이것이 삶이다)라는 말만 나오네요.

나이는 아직 예순 안되셨어요.
전 제 평생에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성실한 사람을 또한 본 적이 없어요.
아마 제 주위 아는 수만명 사람 중 그가 제일 일을 열심히, 많이 한 사람이었음을
감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새벽 5시면 일어나 사륜 구동차를 끌고 한 시간 넘는 농장으로 달려가
밤 12시까지 강행군을 15여년이 넘게 하셨습니다.
커다란 젖소 농장을 운영하셨는데 젖소를 줄 풀도 키우시고 하여간 굉장히 열심히 일하셨어요.
나름 청운의 꿈으로 그토록 열심히 일하셨지만 운이 따라 주지 않아 그가 일한 만큼 소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농장은 사양사업이라고 차라리 그 자본으로 수퍼를 차리라고 권면했었지만 천성이 장사보다는
몸으로 일해서 얻는 흙과 젖소와 개와 닭을 좋아하는 그 분으로서는 천성에 맞지 않았던 겁니다.
마음 아프게도 농장은  너무 거대해 자본은 매일 들어갔지만 이윤은 토해낼 줄 모르는 공룡과 같았습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자라고 엄청난 빚에 늘 허덕이고 가슴 아프게도 제가 이 시기에 그분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저도 얼마 안되는 돈을 갖고 있었는데 늘 빌리러 오는 이분들이 부담스러웠고 곁에 있기가 싫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저는 힘들 때, 옆에서 바른 말로 찌르기만 했던 '욥의 친구들'과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분들의 고난, 아픔을 외면하고자 했고 난 동참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도 너무나도 큰 인생의 짐이 있었고 제 문제가 너무 컸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이분들이 제 짐을
덜기는 커녕 더 얹어준다고 불평하고 비난하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과 상관없이 이분들은 선하신 분들이었고 주님을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또 나름대로 믿음과 이상대로 꾸려갔던 농장일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분에게 있어서 농장은 자식과 같은 거였고 그것도 미운 자식이었으나 버릴 수 없는 자식이었던 겁니다.
결국 이분을 삼켜버린 병마를 발견하게 된 우연한 어떤 사건이 있기 전까지 이분은 그날도 낡은 사륜구동차를 몰고
농장으로 나아가 일을 하셨습니다. 혹독한 노동, 엄청난 빚더미,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
실패와 함께 오는 2차 재난과 같은 저 같은 사람의 고언을 가장한 비난 등이 그를  병으로 끌고 갔을 겁니다.
아, 마음 한편으로는 이분들에게 애증과 같은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 마음은 믿고 싶었나 봅니다.
아냐, 그럴리가 없어 그는 80살, 90살까지 살아서 손주를 보시게 될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병에 걸리면서 비로소 그토록 혹독했던 노동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외쳐도 고집스럽게 한 길을 갔던 그를 주님이 안타까와 하셨던가요.
인간의 눈으로 보면 혹독한 노동으로 인해 암까지 걸렸는데 그는 지난 4년간의 암투병과 항암치료를 버티면서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 흙을 만져볼 것을 소원하였습니다. 그것도 이제 그가 흙으로 돌아감으로서 실현되는 것인가요.
나는 차마 미안하다는 소리조차 하지 못했는데, 또 고맙다는 소리조차 하지 못했는데 돌아가셨네요.
일평생 손해를 보고 물질적으로 힘들기만 했는데도 주님을 섬기고 사랑했던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태가 만연한데 주님에 대한 의리와 애정은 늘 한결같았던 그를 많은 사람은 사랑했습니다.
이제 슬픔도 고통도 병마도 스트레스도 빚도 노동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여전히 젖소를 돌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내 나이 이제 마흔을 넘었습니다.
더 젊었던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살까 고민하였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 세상에 대해서 어떤 욕심이나 야심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어제는 차라리 그분이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문제많은 세상을 떠나 육신을 벗어버리니 얼마나
홀가분할까 생각하였습니다.  십여 년 전 그분의 아내되시는 분과 함께 근처 교회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더랬습니다.
소천하신 목사님은 자녀가 없었던 분으로 교회에 오는 아이들을 그렇게 이뻐하셨고
또 개들을 좋아하여 교회 사택에 여러 마리의 주인없는 개들을 거둬 키우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청소년 수련회를 마치고 아이들을 각자 집에 픽업해 데려주다 졸음운전으로 전신주에 차를 박고
내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참석자들의 위로와 눈물 속에 그림처럼 움직이지 않고
남편이 누워 있는 관을 쓸고 있던 사모님을 보면서 동네 유지 몇몇 분이
그리도 안타까와 하셨는데 지금보니 그분들도 모두 돌아가셨네요.

당시에, 아내 되시는 분과 함께 그 목사님이 너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와 하셨는데
이젠 그분의 남편분이 돌아가셨네요. 당시 저는 죽음이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마흔 넘으니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아요. 휴,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저와 함께 했던 개들도 세상을 달리했네요.
바라는 바가 있다면 제가 남편보다 며칠 더 사는 거예요. 남편은 가난해서 재혼할 처지도 못되고
아내 먼저 죽으면 혼자 밥, 빨래 해서 먹을 걸 생각하니 그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지면을 빌어서 정말 미안했고 용서를 바란다고 쓰고 싶어요.
주위 사람을 사랑하고 격려하면서 살기에도 인생은 참으로 짧구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지, 생각하게 되네요.
넘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 마음이 너무 진정이 안되네요.

IP : 190.48.xxx.7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
    '11.12.5 8:20 AM (174.118.xxx.116)

    마음 아픈 이야기군요.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남은 가족들도 모두 기운내셨으면 하구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애닮고 미안하고 혹은 괴롭고...그런 경우엔
    저는 다른 어떤 자원봉사를 시작해서 아무생각없이,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요.
    그것밖에는 위로가 안되더라구요.

  • 2. 이제는
    '11.12.5 8:29 AM (121.135.xxx.221)

    왠지 서글프네요 하느님의 뜻은 평범한 사람이 알기가 힘들다는 생각이듭니다 왜 그리 좋은분들은 고생하고 일찍 데려가실까요? 사랑하셔서? 남은사람들의 아픔으로 이렇게나 슬픈데말입니다

  • 3. .....
    '11.12.5 8:47 AM (218.152.xxx.163)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글을 한줄한줄 읽다보니 눈물이 나네요... 좋은곳에 가셨길 빌어요.

    제가 아는 50세 노총각분이 생각나네요. 그분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신데, 비록 배운건 없는 분이시지만

    참 열심히 사신답니다. 항상 외로워하는 그분볼때마다 슬퍼요. 위로 누나가 세명이라 결혼하기가 힘드셨거든요..

  • 4. 아.
    '11.12.5 8:58 AM (114.203.xxx.62)

    정말.. 요즘들어서 귀하신분들을 다 데리고 가시는거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들 없는 이땅은 어떡하라고... 그래서 괜히 저도 무섭기까지하더라구요.

  • 5. 종교를 떠나..
    '11.12.5 9:47 AM (220.118.xxx.142)

    사람이 곁에 있을때보다 떠난 뒤에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게 서글프지요.

  • 6. ..
    '11.12.5 7:31 PM (211.109.xxx.8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7. 기도하세요
    '14.4.12 9:27 AM (118.36.xxx.171)

    하나님을 통해서 전달하세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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