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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형 시민운동가의 성공인가 - 박원순현상의 명암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조회수 : 1,904
작성일 : 2011-11-29 18:49:31
'정치가형 시민운동가'의 성공인가 - '박원순 현상'의 명암 칼럼 / 강준만

2011/11/22 20:31

http://blog.naver.com/hanamander/110124718429

인물과 사상 VOL. 164   2011. 12 

강준만의 세상이야기

박원순의 '사회적 기회비용'  

시민운동은 망해도 시민운동 지도자들은 흥하는 나라, 그게 바로 대한민국인가? 2007년 5월『경향신문』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이라는 기획 기사에서 '시민운동과 지식인'을 다루면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창립 임원으로 참여한 교수의 43~51%가 정·관계에 진출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식인들은 시민운동 '간판'을 얻어 자기 이름을 알리고, 정부와 정치권은 이들을 영입하면서 '시민사회의 참신한 인재를 충원했다'는 명분을 얻는 등 지식인과 정부·정치권은 시민단체를 매개로 거래를 하고 있다. …… 지식인들의 시민운동에 대한 근본적 의문은 '시민운동을 하긴 하느냐'는 것이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 본부장의 설명은 이렇다. '지금 시민단체에 무슨 위원으로 명단 올린 사람들은 시민을 위해 일을 안 합니다. 그냥 카메라 있는 세미나 같은 곳에만 얼굴을 내보일 뿐이죠. 경실련과 참여연대를 대표했던 박원순, 이석연, 서경석 같은 지식인들조차 돈벌이에 급급합니다. 시민사회에서는 돈 나올 구멍이 없어요. 모든 돈이 재벌이나 정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죠. 지식과 열정을 지닌 사람들은 이미 시민운동을 떠났습니다.'" - 기사 보기

2008년 9월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이 정부 기관들에서 입수·취합한 '시민·환경단체 및 참여정부 인사 취업현황' 자료에 따르면, 시민단체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낸 정찬용 1 은 현대·기아차 그룹의 사장급 임원인 인재개발원장을 맡고 있으며, 참여연대 등에서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을 해온 박원순은 POSCO(포스코)와 웅진, 풀무원홀딩스 등 기업체의 사외이사를 겸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용태는 "대표적인 시민단체 지도자라고 하는 분들이 대기업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 것이 과연 시민단체의 올바른 활동 정신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그렇게 해서 번 돈을 모두 자신이 하는 시민운동에 썼다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거물급 시민운동가들의 주요 수입원인 사외이사와 각종 위원회의 위원 참여가 시민운동의 경비를 대는 용도로 쓰여도 좋은가 하는 점이다 . 그들의 참여는 돈이 목적일 뿐이기 때문에 사외이사나 위원으로서의 활동은 시늉에 그치고 만다. 박원순의 경우 실제로 그랬으며( 국민일보 2011년 10월 9일 ), 그는 수많은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면서도 출석률이 매우 낮아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제대로 일해보겠다는 의욕이 있고 좀 덜 바쁜 사람에게 그런 위원 자리를 양보했더라면 훨씬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게 사회적으로더 더 유익한 게 아닐까?

어디 그뿐인가. 중요한 사회적 제도이면서도 문제가 매우 많다고 지적받아온 사외이사제와 위원회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건 어떻게 할 것인가? 시민운동이라는 좋은 목적을 위해 돈을 대주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사외이사제와 위원회 제도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하며 가급적 사외이사의 연봉을 억대로 올리고 위원들의 수당도 대폭 인상하는 게 좋을까? 바꿔 말해, "나는 그렇게 해서 번 돈을 좋은 목적에 썼다"는 말로는 정당화할 수 없는 근본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종류의 의문은 박원순의 활동 전반에 걸쳐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의 우너형이다. 일종의 '사회적 기회비용' 문제라 할 수 있겠다.

4개월 만에 이루어진 박원순의 변신

2009년 2월 3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2009년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상상력' 특별 강연에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은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자금 지원이 끊길 때를 대비해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하며 지속 가능성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시민운동이 바닥을 친 때이며, 기득권이 사라져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개미시민운동' 시대라는 말도 했다. 이에 감동받은 임철순『한국일보』주필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시민운동이란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이며 바꿀 아이템은 도처에 깔려 있다. 시민운동의 영역과 계기를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이명박 정부는 '참 좋은 정부'라는 것이다. 이런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민단체들의 변신과 분발을 강조한 그는 초(超)정파, 탈(脫)정파를 통한 보편적 시민운동을 촉구하고, 용산 참사 때 민주당과 손잡은 건 잘못이라는 지적도 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시민운동 경험이 풍부하고 창의력도 놀라운 박원순 씨만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때 묻지 않고, 신뢰를 받는 인물은 없다. 그의 말을 새겨들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임철순을 감동시킨 주요 이유였을 박원순의 초정파·탈정파와 더불어 이명박 정부가 '참 좋은 정부'라고 했던 박원순의 '여유'는 4개월 만에 사라지고 만다. 막상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여유는 분노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그의 분노는 2009년 6월『위클리경향』 이종탁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강하게 표출되었다. 도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인터뷰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질문 청와대에 충고해줘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남다른 개인적 인연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월급을 안 받겠다고 발표했을 때 다음날 시장실을 찾아가 2억6000만 원의 월급 전액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도록 설득한 사람이 바로 그다. 그후 월 1회 이 시장과 만나 서울숲 같은 생태 문제에 대해 자문해주면서 시정을 지켜볼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답 개인적으로야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관 대부분을 압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 있나요. 이 정권이 출범했을 때 저는 실용정부로서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정권을 넘겨준 진보쪽도 이런 기회에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정치적으로 선순환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배제의 정치를 하면서 모든 것이 막히고 끊겨 버렸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의 목소리 톤이 조금씩 높아져갔다.) 사회가 잘 되려면 공무원만으로는 안 되고 중간 전달 기관이 있어야해요. 풀뿌리 시민단체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선 시민단체를 깡그리 무시합니다. 총체적 단절이에요. 저는 이 정부, 아마도 청와대나 국정원이겠지요, 배제의 정치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민간사찰이 복원되고 정치와 민간에 개입이 노골화되면 이 정권의 국정원장은 다음 정권 때 구속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요. 이런 상황은 방지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정부가 변해야 합니다.

질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근거가 있습니까. 그 말씀이 기사화되면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답 이 말로 주목받으면 저로서는 바라는 바입니다. 지금 시민단체는 단체와 관계맺는 기업의 임원들까지 전부 조사해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통에 많은 단체들이 재정적으로 힘겨운 상태입나다.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곳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에요. 우리 희망제작소만 해도 지역홍보센터 만드는 사업을 3년에 걸쳐 하기로 행정안전부와 계약했어요. 그런데 1년 만에 해약통보를 받았습니다. 하나은행과는 마이크로 크레딧 같은 소기업 후원사업을 같이 하기로 합의하고 기자회견까지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무산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정원에서 개입했다고 합니다. 정권에서 인사하는 것 보세요. 참여정부 때 임명된 사람이라면 모조리 내몰고 있잖아요. 한예종 황지우 총장을 쫓아낸 것도 그렇고, 야만적이고 잔인한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략)

질문 서울시장에 나갈 생각은 없습니까.
답 나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는데 왜 자꾸 내 이름을 들먹이는지 모르겠어요.

질문 희망제작소에서 하고 있는 사업을 서울시장이 되어 하면 더 좋은 것 아닌가요. 시민운동가로서 시민들이 원하면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답 그렇지 않아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희망을 제작해야지요. 시국이 절망적이라고 하지만 그럴 수록 희망을 키워야지요.

박원순의 '순수'인가, '오만'인가

사실 박원순은 오래전부터 정관계 진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그게 그가 누리는 신뢰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예컨대, 2007년 11월엔 "한때는 지방의 군수를 맡아 살기좋은 군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나는 제도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면서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생활 정치'가 훨씬 가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 NGO, 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각각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아름다운가게야말로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이끄는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원순은 자신이 운영하는 희망제작소에 기업 후원이 끊기면서 점점 당파적인 투사로 변신하기 시작한다.『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 직후인 2009년 6월 18일 경향신문 소통기획 자문위원회의에서도 "이명박 정부에는 촛불시위와 관련된 단체는 물론이고 정부와 협력하는 시민단체까지 박멸하려는 총체적 지휘사령부가 있다"며 "시민단체와 관계맺는 기업의 임원까지 개별적으로 연락해 재정적 어려움을 주고 있는데 이는 국정원의 명백한 민간사찰이자 국정원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이에『경향신문』은「국정원의 야비한 시민단체 탄압」이라는 사설을 통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다. 그가 그동안 보여준 성실하고도 양심적인 행보는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의 사람됨이나 시민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이번 발언은 그냥 허술하게 나온 게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그가 국정원 개입의 구체적 사례로 제시한 희망제작소의 사업 중단 건만 해도 그렇다. 하나은행 등 함께 사업을 하기로 약속했던 기관들이 갑자기 발을 뺀 것은 누가 봐도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때문임이 분명하다. 국정원 쪽은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펄쩍 뛰지만, 국정원의 그동안 행태에 비춰봐도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정원에 엄중히 경고하고자 한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찾아보기 힘든 야비한 시민단체 탄압 행위를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증거가 있으면 대보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일이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청와대도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로 일관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이번 사태의 궁극적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반면 강병태『한국일보』논설위원실장은「박원순 변호사의 '진실'」이라는 칼럼에서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그는 "박원순 변호사가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였다.늘 좋은 모습으로 사회와 만나던 이가 몹시 힘든 모양이다. 국정원이 후원 기업 등을 불법 사찰한다고 비난했다가 명예훼손 소송에 걸려 난감한 것 같아 딱하다. 그는 회견에서 배포한 '진실은 이렇습니다'에서 '정권 단되' 등 결연한 소신을 밝혔다. 논평하기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마냥 지켜보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국가를 원고로 2억 원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진보 언론과 법률가들도 '국가는 명예훼손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편든다. 그러나 국정원이 과장된 '사찰' 비난에 소송으로 맞선 것이 논란의 진짜 핵심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정원이 은밀하게 작용한 자취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박 변호사 말처럼 권력 향배에 민감한 세태에서 기업 스스로 후원을 중단했을 수도 있다. 소송 자격 시비는 사실과 무관하게 초점을 흐린다. 실제 법원은 '안기부 X파일' 보도와 관련해 국정원이 MBC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정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한 것은 그를 하부기관으로 둔 원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박 변호사도 사리를 아는지 '지역홍보센터' 이야기를 길게 했다. 일본에서 여러 지자체 정보를 모아놓고 특산물도 파는 것을 보고 2007년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제안했다며 '전적으로 내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추진됐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박 변호사의 희망제작소가 3년 간 운영을 맡기로 했는데, 바뀐 정부가 일방적으로 위탁 계약을 해지했다는 것이다. 그게 독창적 아이디어일까. 또 불과 몇 달 만에 프레스센터 1층에 문을 연 것이 남다른 열정 덕분일까. 그보자 지자체 출연기금으로 만든 지역홍보센터를 행자부가 희망제작소에 맡긴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게다가 행자부가 '지역진흥재단'을 설립해 이사장 등 20여 명을 파견한 것을 애초 잘못으로 여겼다니, 고유한 역할과 거리 있는 일을 맡기 위해 공무원들의 자리 늘리기에 놀아난 꼴이 아닐까."

이어 강병태는 "박 변호사는 계약 해지를 '좋은 거버넌스 모델을 만들자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작 지역에서는 적잖이 반대한 듯하다. 2007년 9월 대전 서구의회 행정자치위 회의에서는 행자부가 인구 30만 이상 자치구는 지역진흥재단에 1000만 원씩 출연하도록 한 것을 놓고 이런 질의 답변이 오갔다.(-한진걸 위원: 반강제적으로 설립한 법인은 정권이 바뀐다든지 하면 유야무야 사라진 경험이 있고요. 자료를 보면 지역과 특산물 홍보는 우리 실력으로 충분하고요. 재정이 어려워 의회에서 부결됐다고 하면 좋겠습니다. -자치행정국장: 저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각 시·도 별로 서울 사무소가 있고 ……, 사실 지적하신 대로 썩 저기한 것은 아니지요.)"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은행이 300억 원을 출연해 추진하기로 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의 중단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박 변호사는 하나희망재단이 2000만 원 이상의 소기업 지원사업에 동의했다가 무산시킨 것은 압력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잡다한 논란에 앞서 시민단체에 적절한 사업인지 의문이다. 박 변호사는 정부의 시민단체 핍박 사례를 열거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 단언했다. 또 압제와 싸울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격정보다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당선 뒤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직후 찾아가 환경미화원 유자녀 돕기에 쓸 것을 설득, 4년간 전액을 기부 받았다는 회고다. 또 '지난 봄 희망제작소 후원회에서 그동안 드나들던 기업인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며 세태가 절망스럽다고 토로한 대목이다. 평판대로 아직 순수하거나, 반대로 쉬운 성공에 오만해진 듯한 느낌이다. 그 자신의 진실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박 변호사가 진실로 다시 원점에 서기 바란다."

박원순의 자승자박

하승우 문학평론가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도「박원순 변호사의 자승자박」이라는 제목의『경향신문』칼럼에서 박원순의 자승자박을 지적했다. 그는 "기자회견문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참여연대를 떠난 뒤 정부를 비판하는 운동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며 새로운 운동 영역을 개척하려 했다고 밝혔다. 기부문화와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 등을 한국 시민사회의 화두로 만든 것은 공이라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박원순 변호사가 그 영역을 언급하기 전에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밥할머니로 대표되는 기부문화가 있었고, 아름다운 가게 전에 녹색가게가 있었으며, 많은 풀뿌리 단체들이 자기 마을을 지켜왔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운동의 아이콘이 만들어지면서 '자원의 집중화'가 이루어졌고, 몇몇 단체들이 시민사회의 인적·재정적 자원을 싹쓸이한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운동의 성장이 기존의 운동과 보폭을 맞춰야 하는데, 박원순 변호사는 정부와의 파트너십이나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양적인 성장'을 추구했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건드린 부분은 박원순 변호사의 '약한 고리'였다. 기자회견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박원순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와 전멱적인 싸움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만일 국정원의 활동을 문제삼으려 했다면 이 기자회견은 올해가 아니라 지난해 마련되었을 것이고 고발 전에 사례가 공개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기자회견은 부조리한 정권에 대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나 저항운동'보다 고발에 대한 '수동적인 대응'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번 소송에 많은 기대를 걸고 마치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책임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결국 박원순은 평소 그토록 반대했던 당파적 대결구도 속으로 몸을 점점 밀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엄청난 규모의 응원군이 보내는 열화와 같은 지지를 누릴 수 있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었을까.

2009년 10월 5일 박원순은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진보개혁입법연대' 초청 강연에서 "국정원이 사찰하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단순한 시민운동이 아니라 좋은 정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많은 시민단체가 큰 틀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 지방선거에서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치와 초연한 채 활동하는 동안 좋은 정부라는 것이 물이나 공기와 같아 느끼지 못했다"면서 "이 정부 들어서는 그간의 활동방식과 제가 갖고 있던 원칙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원순은 『한겨레』(2009년 10월 17일) 인터뷰 에서 "나름의 젊음을 희생하면서 (시민운동을) 해왔는데, 이런 압박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나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수난과 고난 속에서 훨씬 더 억압받고 힘없는 많은 사람들과 갈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정부에선 등용되기보다 핍박받는 게 더 좋은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 이종찬 선임기자가 그를 '시민운동의 대부'라고 표현하자 곧바로 이런 지적이 돌아왔다고 한다. "시민운동은 많은 사람이 같이 하는 것입니다. 나는 대부가 아니고, 많은 운동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말씀이긴 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진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름의 젊음을 희생하면서 (시민운동을) 해왔는데"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이는 박원순이 수시로 하는 말이다. 그의 시민운동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 나오는 답도 한결같다. 자신이 얼마나 희생하면서 헌신하는데, 그렇게 지적하는 당신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느냐는 식으로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곤 하는게 답변 방식이었다. 그런 박원순이 자신을 '많은 운동가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말이다.

박원순의 권력지향성

"정치보다 중요한 게 더 많다"고 했던 박원순이 이제 "정치가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변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직접 정치판에 띄어들진 않겠다고 했다. 그는 앞서 거론한『한겨레』인터뷰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변호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에 적지 않습니다. 후보 추천 얘기가 하나로 모아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럼 저는 도망가겠습니다.(웃음) 사실 그런 얘기들이 곳곳에 있습니다만, 저는 확실히 출마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좋은 지방정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작은 노릇이라도 할 겁니다. 다만 제가 후보자로 나가는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아직'이라니, 박원순은 엉겁결에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걸 놓칠 기자(박찬수 부국장 - 하나만더)가 아니다. "'아직은' 생각이 없다는 겁니까?"라고 되묻자, 그는 "지금으로선 단언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비밀을 일찍 누설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박원순은 좀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박원순은『중앙일보』(2009년 10월 19일)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전혀, 절대 나가지 않는다. 곧 주한 영국대사를 만나는데, '영국에 1년 정도 초청해줄 수 있냐'고 물어볼 생각이다. 나에 대한 말이 워낙 많아서 ……."라고 했다. "차기 대선에 생각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는 질문에 대해선 "꼭 청와대를 가야 하나. 내가 지금까지 이룬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좋은 정부가 되게끔 하는 것과 직접 공직 후보로 뛰는 건 다르다. 나만 해도 지난해 총선에선 민주당, 5년 전 총선에선 한나라당이 두 번씩이나 공천위원장을 맡아 달라 했지만 다 거절했다. 그 자리 맡으면 전국구 1번 주던 때다. 맘만 먹었으면 수석·장관도 여러 번 했을 거다"는 말도 했다.

이 또한 다 아름다운 말이긴 한데, "곧 주한 영국대사를 만나는데"라거나 "맘만 먹었으면 수석·장관도 여러 번 했을 거다"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자신이 누리는 권력의 실체를 잘 인식하면서 그걸 만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실제론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대통령 자리까지 넘본 야심가였지만 다만 때를 저울질해왔을 뿐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박원순은 왜 자신의 이름이 끊임없이 대통령·서울시장 후보로 오르내리게 만든 걸까? 그건 정녕 그의 뜻과는 무관하게 벌어진 일일까? 그렇다면 왜 입으로는 '풀뿌리'를 강조하면서도 낮은 곳으론 가지않고 실제로는 늘 정관재계 거물들과 깊은 친분을 쌓는 방식의 정치가형 시민운동을 해온 걸까? 자신이 전화 한 통만 하면 장관이든 누구든 마음대로 만날 수 있고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해서 성사시킬 수 있는 권력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모든 열과 성을 쏟았느냐는 것이다. 속된 말로 시민을 '인질'이나 '빽'으로 삼아 지산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고도의 정치공학은 아니었을까?

사람의 선의를 그렇게까지 해석해서야 쓰겠는가. 어쩌면 진실은 박원순이 자신의 그런 정치공학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에 관한 한 '메시아적 인간관'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의 독특한 수사학은 연구 대상이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토론에서 많은 지지자들조차 실망시킬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강점은 평소 어법에 있다.

그의 어법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예수의 환생'인가 싶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예컨대, 이런 수사 말이다. "저는 상을 준다고 할 때 제일 괴로웠습니다. 내가 현실에서 제대로 못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정말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당대가 아니라 후세에 평가받지 않습니까. 당대에 상 받는 사람이 되면 세상을 위해 충분히 일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지 않을까 싶어 오히려 핍박을 받는 게 더 좋습니다. 마음을 굉장히 가다듬었고, 과거에 그랬듯이 억압받는 사람,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다행스럽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원순은 예수인가

박원순이 자주 선지자나 순교자의 자세를 취하는 건 어떤가. 그는 2011년 8월 15일 백두대간 종주 28일차 광복절에 올린 '대속(代贖)을 생각하다'라는 글을 통해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인간이 저지른 그 죄악을 십자가형으로 대신 속죄했다고 믿는다"며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 가장 모독적인 방법으로 극형에 처해진 예수의 삶과 실천, 그 최후는 모든 인간을 스스로 죄스럽게 만든다"고 운을 뗐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이 엄청난 비극과 범죄와 과오를 대속할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 시대에 다시 예수가 필요한데 이것을 자임할 사람은 없다, 자임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 시대의 고민, 동시대 사람들의 고난, 유린되는 국토, 악화되는 삶의 질, 무너지는 경제와 더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좌우갈등과 사회적 대결, 소모적 정쟁, 공직자들과 사회적 리더들의 거짓말과 무책임, 시대의 향방에 대한 무지와 편견? 이 모든 것들을 곱씹어보았다"며 "그것을 한 지게에 질어지고 그 어딘가 갖다버릴 곳이 있다면 감히 그 지게를 한번 져볼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해보았다"고 썼다. (『 오마이뉴스 』( 2011년 9월 1일)

박원순이 늘 예수의 자세를 취한 덕분이었을까? 독설로 유명한 좌파들도 박원순의 진정성만큼은 의심하지 않았으니, 그게 참 묘한 일이었다.『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은『한겨레』(2009년 10월 29일) 칼럼에서 "그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공언하며 부자들과 손잡고 일해왔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얼마 전 국정원의 명예훼손 소송에 대응하여 발표한 그의 글은 그의 사회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드러낸다. '(이명박 정권 이후) 아름다운가게와 희망제작소를 드나들었던 기업인들이나 대기업의 임원들은 철새처럼 모두 날아갔습니다. 다시 원점에 섰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게 대통령 후보 시절까지도 돈돈한 사이였다는 이명박 씨의 변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의 사회 디자인에 있다. 양식을 가진 사람 가운데 박원순 씨의 인간적 진정성과 사회적 헌신을 의심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실패, 지난 10년 이상 우리 사회의 의인이자 대표적 사회 디자이너로 추앙받아온 그가 부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과연 그런 걸까? 박원순은 너무도 순진했기 때문에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부자들에게 당한 걸까? 자신의 명함에까지 박았다는 '사회 디자이너'라는 말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용어요 발상이지만, 사실 그는 사회를 디자인하기보다는 이미 디자인된 사회에 순응하고 그걸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은 디자인'에 몰두해온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작은 디자인' 사업은 박원순 개인만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진행돼온 건 아니었을까?

박원순의 '사회 디자인'이 선진국에 대한 맹목적 추수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예컨대, 안재학 완주 석천교회 목사는 2010년 12월 "며칠 전 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에서 완주커뮤니티 비즈니스 센터 서포터즈 발대식이 있었다. 강연자로 희망제작소 대표인 박원순 변호사가 두 달여간 영국을 다녀온 경험을 함께 나눴다. 영국 사회가 작동하고 있는 기본적인 시민사회의식을 중심으로 영국 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 등을 소재로 문익점의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에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호의적인 생각과 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좋은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인내를 가지고 강연의 내용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강연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무렵부터 드는 이상한 거부감은 이내 작은 분노로까지 번져나갔다. 박원순 변호사의 주장은 영국 사회에 대한 부러움에 지나지 않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 하는, 아니 너희는 왜 하지 못하니, 정도의 작은 비아냥으로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사례들의 나열 가운데 농촌의 이야기와 농업에 관계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주군의 농촌 지역으로서의 특징과 정체성의 고려 없이 무작정 선진국의 좋은 사례를 비판 없이 권장하고 우리의 문화적 잠재성과 역량을 과소평가하며 무시하는 옳지 못한 자세라고 생각된다."( 『새전북신문』, 2010년 12월 9일 )

천재일우를 향한 박원순의 벼랑끝 전술

박원순이 그간의 숱한 공언을 뒤엎고 서울시장에 출마했을 때 그 자신은 물론 사람들은 국정원의 명예훼손 소송이 그가 변신한 결정적 계기였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그 사건이 있은 지 수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진 않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예컨대, 그는『미디어오늘』(2010년 1월 6일)과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으로 이동한 시민사회 인사들이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시민사회까지 오염시키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내가 한 자리 하는 게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되고 한국 사회 전체를 보더라도 더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권력을 잡지 않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풀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정부·기업 등과의 협치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그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기까지의 기간에 그의 변심을 촐발할 만한 특별한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변할 것까? 늘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온 그의 정치동물적 감각이 발동한 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오세훈의 사퇴는 그야말로 천재일우였다. 여야를 막론한 기성 정당들에 대한 혐오가 극에 이른 가운데 범야권이 웬만해선 질래야 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이걸 놓치면 다른 기회가 온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안철수가 나온다지 않는가. 박원순은 안철수가 나와도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배수의 진을 치고, 백두다간 종주 중에도 안철수에게 두 차례 이메일을 보내 그런 강력한 뜻을 전달하는 동시에, 사실상 자신의 청사진과 비전을 안철수에게 '보고'하는 '읍소'에 가까운 회동을 통해 안철수를 주저앉히는 데에 성공한다.

박원순은 안철수와의 회동에 수염을 잔뜩 기른 야성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면도할 시간조차 없었던 걸까? 아니다. 안철수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박원순은 이미지 정치의 프로다운 면모마저 보인 셈이다. 인터넷엔 "안철수와 박원순은 한나라당을 미소짓게 해온 제2의 유시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경고와 호소가 열화와 같이 쏟아지는데, 다소 소심하다는 안철수가 무슨 수로 박원순의 그런 막무가내식 전법을 당해낼 수 있었겟는가. 안철수의 오른팔이라는 시골의사 박경철이 안철수가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한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릴 만하지 않은가.

'절대' 서울시장 출마 안 한다고 수없이 공언해온 박원순이 막상 절호의 기회가 오자 이렇게까지 '무대뽀'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지지율 50%(안철수)가 5%(박원순)에게 양보했다며 안철수에 대한 찬사가 폭포처럼 쏟아졌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5%로 50%를 먹은 박원순의 벼랑끝 전술이 아니었을까? "성공 또는 실패의 원인은 행동을 시대의 흐름에 얼마나 잘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박원순 이상으로 잘 실천한 사람도 드물다고 할 수 있겠다.

박원순의 '협찬 인생'

서울시장 선거는 이전투구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박원순의 '마이너스 재산'과 '강남좌파적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그의 재산이 마이너스 3억 7200만원이라는 사실은 많은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들이 납득할 수 없는 규모의 큰 재산을 모으는 게 당연시되는 풍토에서 신선하게 여겨진 점도 없진 않지만, 그게 과연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삶인가 하는 점에서 의문을 던져주었다. 3억이 넘는 큰 빚에 허덕이는 무능력자가 그러면서도 '강남좌파적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해온 건 어찌 봐야 할까?

이 모든 게 그의 '대통령 꿈'을 실현하기 위한 삶과 관련돼 있는 건 아니었을까? 옛날 돈벌이에 열심일 땐 기사 달린 자가용을 굴리면서 떵떵거리며 살았지만, '나눔'을 위한 삶을 살면서 재산을 모으기는커녕 큰 빚까지 진 자신이야말로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우리 시대의 의인이 아니겠느냐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자신의 학벌과 자녀교육 그리고 라이프스타일만큼은 현실 세계에서의 유리한 입지 구축을 위해 강남좌파적으로 살아가는 '슬기'는 고수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원순의 '협찬 인생 스캔들'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박원순이 출마 직전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코오롱스포츠에서 400만 원 상당(일반 판매가 기준으론 1000만 원가량)의 물품을 협찬받은 사건이다. 한나라당이 "박 후보의 인생은 한마디로 '협찬 인생'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고 공격하자, 박원순 측은 "백두대간 종주에 앞서 시민들의 사연 신청을 받아서 5명 정도가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블로그 등을 통해 미리 코오롱에서 후원을 한다는 점을 기재했다"고 해명했다.

5명 정도가 벌인 개인 행사에 대기업 협찬을 받고, 그 사실을 밝혔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이 경이롭다. '협찬 중독'이라 할 만하다. 이건 매우 사소한 사건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박원순이라는 인물의 정체를 이해하는 데에 핵심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 그는 협찬 인생이라는 딱지가 마음에 걸렸던지, 서울시장 당선 후 "나는 시민들로부터 협찬(지지)을 받았다. 그래서 협찬 인생을 좀 더살려고 한다"고 밝혔는데,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누구에게서 어떤 명목으로 협찬을 받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협찬 인생은 '박원순 브랜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독특한 박원순의 권력 향유·쟁취 방식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글이 박원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시민운동가 박원순'이냐 '정치인 박원순'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박원순은 강력한 권력의지를 갖고 있으며 권력의 속성과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와 이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감각과 실천력을 지닌 인물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정치인에게도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지만, 정치의 속성상 그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위선적이어야 하며 뻔뻔해야 한다. 그건 필수 자질이다.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더욱 좋다. 정치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박원순은 일단 정치인으로서 탁월한 자질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기사화만 되지 않았다뿐이지, 시민운동 일각에선 박원순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밖에서는 '살인 미소'를 짓지만 안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소'는 빠지고 '살인'만 남는다는 말부터 '시민단체의 파쇼'라는 말에 이르기까지 그의 독선과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성했다. 물론 다 좋은 일을 위해서 그랬으려니 하고 선의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건 '민주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서울시장 당선 후 서울시의원들과의 오찬 모임을 겨우 3시간 전에 통보하는 배포 또는 오만도 그런 점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이 또한 한국 정치의 현 수준에선 박원순의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말로는 '민주적 리더십'이 바람직하다곤 하지만, 동시에 지도자에게 불도저처럼 화끈한 추진력과 박력을 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박원순·안철수는 '강남좌파 현상의 절정'

피터 드러커가 이런 말을 했다.

"There is no success without a successor(후계자 없이 성공 없다)."

리더는 자신의 일을 계속해줄 후계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시민운동가 박원순에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서울시장으로선 훌륭하고 유능할 수 있겠지만, 시민운동가로선 후계자, 즉 자신이 하는 일의 지속성에 관한 문제에서 심각한 의문을 던져주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원순은 '시민운동의 대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민운동 진영에 큰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에 그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시민운동가들은 한결같이 '시민운동가 박원순'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낼 것이다. 또 앞으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시민운동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하기에 그에 대한 찬사는 더욱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런 사적 인연도 없는 제3자의 냉정한 평가도 꼭 필요하지 않겠는가.

박원순은 늘 국가경영을 생각할 정도로 야심과 포부가 원대해 사실상 '대통령급 시민운동가'였다. 그 어떤 정치인 이상으로 바빳고 한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마당발로 인맥 만들기의 귀재였다. 여야, 정관재계를 막론하고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이명박 청와대 비서관의 대부분을 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한국 시민운동가의 유형 분류를 한다면 그는 '정치가형 시민운동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활동과 성과의 대부분은 주로 정부와 대기업에서 돈(그것도 거액)을 끌어오는 능력에 있었으니까. 그의 이름이면 누구든 만날 수 있었다.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었으니까.

인맥으론 여야를 넘나들긴 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개혁진보 쪽이었기에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그의 정치적 영향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2009년 박원순이 "지난 봄 희망제작소 후원회에서 그동안 드나들던 기업인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며 세태가 절망스럽다고 토로한 게 바로 그 영향력의 실체와 한계를 잘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글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박원순 모델'이 과연 한국의 시민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바람직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후계자를 만들 수 없는, 사실상 재생산 불가능한 모델이다. 풀뿌리에서 출발하지 않은 톱다운 모델이다. 일반적인 시민운동가가 박원순처럼 정치적으로 탁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민운동을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에겐 좋은 모델일 수 있어도, 전국적이고 일반적이고 항구적인 모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박원순 현상'과 '안철수 현상'은 강남좌파 현상의 절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남좌파'에서 '좌파'는 이념이라기보다는 기존 정치와의 관계 설정으로 봐야 한다. 기존 정치를 전면 부정하고 새 판을 짜자는 게 '좌파'라는 것이다. 정치를 혐오하는 대중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존 진보정당들도 '우파'에 속하는 셈이다. 안철수, 박원순, 박경철 등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그걸 발판으로 대중과 소통해오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정치의 문법 자체를 바꾸자는 개혁 열망을 표현한 사람들이다. 정치 혐오가 강한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이 열광할 만하다.

이들은 정치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람들이다. 이미 남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자기 직업이 있으니까. 그러니 정치 혐오가 강한 대중이 보기에 직업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과 같은 '찌질한' 면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정치인에 대해서만 기득권 포기를 요구하는 걸까? 기업가, 변호사, 의사, 교수, 방송인 등에 대해선 기득권 포기를 요구하는 법이 없잖은가.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로 개별적 사안에 대한 평가 없이 싸잡아 기득권 포기를 요구하는 게 과연 옳거나 실천 가능하거나 현명한 일일까?

기성 정치인을 변호하자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자기 직업에 대한 기득권은 누리면서 정치 기득권은 없는 외부 명망가들은 대중이 보기에 쿨과 의연을 갖춘 '매력남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도 막상 정치판에 뛰어들면 한국 정치가 '정치인의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이고 해묵은 역사적 습속과 관행의 문제이고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정치인 못지 않게 일반 대중에게도 나눠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테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대중의 열광도 식으리라는 건 필연 이다. 한국은 늘 드라마를 사랑하는 드라마 공화국이다. '대중의 기성 정치에 대한 반란'을 드라마틱한 역동성으로 이해하면서 교훈을 찾아내고 그걸 실천에 옮기려는 낙관주의가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게 아닐까? 다만 '정치가형 시민운동가'가 바람직한 시민운동가 모델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정치인 박원순'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되 '시민운동가 박원순'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보는 게좋을 것 같다. 정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한국 시민운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다.


정찬용 1998년 광주YMCA 사무총장, 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 하나만더 네이버 인물검색

[출처] '정치가형 시민운동가'의 성공인가 - '박원순 현상'의 명암 | 작성자 hanamander

IP : 118.33.xxx.103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rmfotj??
    '11.11.29 6:52 PM (124.50.xxx.136)

    한때 강준만의저서 김영삼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책을 보기도 했었지만, 나경원을,오세훈을 ,이명박을 이게 씹었다면 십몇년전의 읽었던 책들을 버리지 않았을텐데...
    야비한 강...

  • 2. 곰곰이 생각해보며..
    '11.11.29 6:53 PM (118.33.xxx.103)

    옳든 그르든, 한번쯤은 읽고 생각해볼만한 내용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 3. 그러게..
    '11.11.29 6:58 PM (118.33.xxx.10)

    박원순 시장 만큼만 하라고 ~

  • 4. 지나
    '11.11.29 7:09 PM (211.196.xxx.94)

    그의 행적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싶을 만큼 재미있는 글이네요.
    그런데 이 분, 한나라당쪽 인물들도 이처럼 다각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았나요?

  • 5. ...
    '11.11.29 7:54 PM (125.187.xxx.205)

    읽다가 그냥 허허...웃음만 나오는데 저만 그런가요?
    강준만...이라는 분이 정말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밖에 글을 못쓰시는 분인가요? 그 명성에 비하면 너무 찌질하네요. 뭐 어쩌라는건지?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지?
    전 그냥 질투심에 눈이 먼 것처럼만 보이는데....
    정말 별걸 다 가지고 걸고 넘어지네요. 박원순시장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건 아닌가 싶고.
    신이라도 되길 원하는 듯.
    진짜 웃음만...ㅎㅎㅎㅎㅎ

  • 6. 나거티브
    '11.11.29 9:33 PM (118.46.xxx.91)

    강준만씨는 안티조선운동을 계속 열심히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언제부턴가 공감가는 글을 써주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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