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엄마가 되고나서

동글이내복 조회수 : 1,290
작성일 : 2011-11-16 16:57:07

 

 이번 겨울나기만 지나면 저도 38세에요.

요즘, 저는 직장을 잃은대신 낙엽진 뒷산길을 다녀오거든요.

그 정자 한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제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고도 와요.

그 고요한 숲길, 아무도 없는 그 산꼭데기 정장에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더욱더 우리 엄마가 생각이 더 나는 만큼 이해도 많이 되네요.

어릴때 우리 엄마는 화를 못참으셨어요.

특히 집이 어지럽혀져 있고 정리가 되지 않은걸 보면 눈에서 불꽃이 튀고 그 눈자위 전체가 붏게 물들곤했어요.

그때 우리아빠는, 이미 동네에서도 소문난 알콜중독자였고,

대신 엄마가 이런저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었는데, 챙겨가야 하는 학교준비물들앞에서 수수방관만.

비 오는날, 빈손으로 우산도 없이 학교에 가서 준비물들어있는 시간이 시시각각 닥쳐오는걸 얼마나 가슴뛰며 불안해하다가, 결국엔 선생님앞에서  목메인 울음만 꺽꺽...

 

이런저런일들이 참 많은데, 엄마아빤 우리들이 받아오는 상장들앞에서도 기뻐하거나 설레여하지 않았어요.

그래...하는 그 말에서는 일상을 벗어난 잠깐의 기쁨도 없었고, 나중엔  그 상장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도 되었어요. 따라서 우리들도 상장에 대한 의미가 없었고요.

오히려 상장앞에 무겁게 드리워진 가난의 굴레가 더 오히려 크게 부각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상장을 받아들고서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시던 엄마, 아빠.

그런데 제가 엄마가 되니 그 느낌을 알것 같은거에요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그 가야 할길이 가시밭길같은 푸른안개 뒤덮인 절망이었다면, 그 상앞에서도 마음놓고 크게 한번 웃어보지 못했나.하고

 

그런 엄마다보니, 우리들을 변호해준적도 없었던 사람.

언젠가 키큰 덩치큰 아이랑 싸우고 아무일 없듯이 넘어가려 했는데 그 덩치큰 아이 엄마한테서 제 이야길 들었답니다.

무슨 아이가 그리 성질머리가 나쁘냐고

그 덩치큰 아이에게 늘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은 못참고 같이 싸운걸 가지고 일이 그렇게 되었더라구요.

"너 그럼 시집 못간다. 성질이 아주 못되었다고."

그때가 11살때였거든요. 그때에도 참 황당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었을테죠..

엄마부터가, 푸른 안개가 다 걷히지도 않은 새벽나절마다 동네어귀를 돌아나오는 첫차에 그 발을 올려놓을까 말까 망설였던 가슴아픈 시절이었을테니말이에요.

 

낙엽이 지고 바람마저 고요한 그 산길 오솔길을 내려오다보니, 이해못할건 아무것도 이세상에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IP : 110.35.xxx.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순이엄마
    '11.11.16 7:00 PM (112.164.xxx.46)

    짧은 글이지만 단편소설 하나 읽은듯,

    가슴이 저려오네요. 엉뚱하게 글 한편 써 보시면 어떨까요.

    글 맵시도 나시구요.

  • 2. 순이엄마
    '11.11.16 7:00 PM (112.164.xxx.46)

    그리고 힘내세요. 산꼭대기 정상에 앉아 과거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심 축하드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8703 숫자 0 읽을때 영이라고 읽으세요? 공이라고 읽으세요? 11 .. 2011/11/17 3,501
38702 아이오페 슈퍼바이탈 크림 써보신 분~~ 13 16만원 2011/11/17 4,859
38701 전신팩... 뭘로 하면 좋을까요? 2 @@ 2011/11/17 2,262
38700 신랑이 목에 단추두개인 와이셔츠를 사오래요 4 어느 매장을.. 2011/11/17 2,448
38699 이거 정말 수상하지 않아요? 4 소름 2011/11/17 2,827
38698 레니본 코트 사버렸네요. 딱 40인데~ 9 쑥쓰~ 2011/11/17 5,230
38697 1급 장애인 블로거,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해 세상과 단절되어야 합.. 3 puuum 2011/11/17 2,847
38696 세돌 여아에게 주방놀이 낭비일까요? 10 검색만 몇달.. 2011/11/17 3,830
38695 의왕시에 사시는 분 계세요? 6 의왕시 정보.. 2011/11/17 2,346
38694 강원대 8 모나리자 2011/11/17 2,705
38693 이국철, 구속에 반발하며 비망록 배포 시작, '5권의 비망록' .. 4 참맛 2011/11/17 1,933
38692 원정경기 온 축구팀 완전 통제하는 평양? runrun.. 2011/11/17 1,398
38691 천공기 사고보니...... 5 .. 2011/11/17 2,928
38690 민주당의 절충파 국회의원 5인의 전화번호 퍼왔습니다. 3 FTA반대 2011/11/17 1,803
38689 초등6년 남아 종합비타민 뭐먹이셔요? 깜씨 2011/11/17 1,529
38688 미용실에서 펌머리 드라이하면 매끈한데요. 2 차이 2011/11/17 2,576
38687 뿌리깊은 나무...한석규씨 36 ㅎㅎㄹ 2011/11/17 9,332
38686 코트 카라가 구겨져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급질... 2011/11/17 1,688
38685 대전에서 나꼼수 공연 한다는데.. 일산공연 보신분들께 물어요.... 3 .. 2011/11/17 1,770
38684 커헉..밑에 신당동 쓴 엄만데 그럼 길음뉴타운이나 삼선교쪽은 애.. 8 바람은 불어.. 2011/11/17 3,573
38683 컴퓨터에 있는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내려면? 1 비오는날 2011/11/17 4,460
38682 전기렌지로 사골 끓이면 어마어마하게 나오겠죠? 3 ..... 2011/11/17 2,723
38681 인천에서 육포용 소고기 살수있는곳 아시나요? 육포 2011/11/17 1,814
38680 유자 씨.. 유자술? 2011/11/17 1,393
38679 한나라 "민주당 한미FTA 관련 요구는 대통령 모욕" 14 세우실 2011/11/17 1,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