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엄마가 되고나서

동글이내복 조회수 : 1,286
작성일 : 2011-11-16 16:57:07

 

 이번 겨울나기만 지나면 저도 38세에요.

요즘, 저는 직장을 잃은대신 낙엽진 뒷산길을 다녀오거든요.

그 정자 한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제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고도 와요.

그 고요한 숲길, 아무도 없는 그 산꼭데기 정장에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더욱더 우리 엄마가 생각이 더 나는 만큼 이해도 많이 되네요.

어릴때 우리 엄마는 화를 못참으셨어요.

특히 집이 어지럽혀져 있고 정리가 되지 않은걸 보면 눈에서 불꽃이 튀고 그 눈자위 전체가 붏게 물들곤했어요.

그때 우리아빠는, 이미 동네에서도 소문난 알콜중독자였고,

대신 엄마가 이런저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었는데, 챙겨가야 하는 학교준비물들앞에서 수수방관만.

비 오는날, 빈손으로 우산도 없이 학교에 가서 준비물들어있는 시간이 시시각각 닥쳐오는걸 얼마나 가슴뛰며 불안해하다가, 결국엔 선생님앞에서  목메인 울음만 꺽꺽...

 

이런저런일들이 참 많은데, 엄마아빤 우리들이 받아오는 상장들앞에서도 기뻐하거나 설레여하지 않았어요.

그래...하는 그 말에서는 일상을 벗어난 잠깐의 기쁨도 없었고, 나중엔  그 상장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도 되었어요. 따라서 우리들도 상장에 대한 의미가 없었고요.

오히려 상장앞에 무겁게 드리워진 가난의 굴레가 더 오히려 크게 부각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상장을 받아들고서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시던 엄마, 아빠.

그런데 제가 엄마가 되니 그 느낌을 알것 같은거에요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그 가야 할길이 가시밭길같은 푸른안개 뒤덮인 절망이었다면, 그 상앞에서도 마음놓고 크게 한번 웃어보지 못했나.하고

 

그런 엄마다보니, 우리들을 변호해준적도 없었던 사람.

언젠가 키큰 덩치큰 아이랑 싸우고 아무일 없듯이 넘어가려 했는데 그 덩치큰 아이 엄마한테서 제 이야길 들었답니다.

무슨 아이가 그리 성질머리가 나쁘냐고

그 덩치큰 아이에게 늘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은 못참고 같이 싸운걸 가지고 일이 그렇게 되었더라구요.

"너 그럼 시집 못간다. 성질이 아주 못되었다고."

그때가 11살때였거든요. 그때에도 참 황당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었을테죠..

엄마부터가, 푸른 안개가 다 걷히지도 않은 새벽나절마다 동네어귀를 돌아나오는 첫차에 그 발을 올려놓을까 말까 망설였던 가슴아픈 시절이었을테니말이에요.

 

낙엽이 지고 바람마저 고요한 그 산길 오솔길을 내려오다보니, 이해못할건 아무것도 이세상에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IP : 110.35.xxx.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순이엄마
    '11.11.16 7:00 PM (112.164.xxx.46)

    짧은 글이지만 단편소설 하나 읽은듯,

    가슴이 저려오네요. 엉뚱하게 글 한편 써 보시면 어떨까요.

    글 맵시도 나시구요.

  • 2. 순이엄마
    '11.11.16 7:00 PM (112.164.xxx.46)

    그리고 힘내세요. 산꼭대기 정상에 앉아 과거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심 축하드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9330 박경철 쌤 트윗도 요즘 안 하시던데 그것도 세무조사와 1 .... 2011/11/18 1,813
39329 택배비 10 택배비 2011/11/18 2,726
39328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Toccata and Fugue i.. 2 바람처럼 2011/11/18 3,044
39327 남편분들이 칭찬을 해주시나요. 9 울보 2011/11/18 2,010
39326 선물에 관한 문의 3 ... 2011/11/18 1,213
39325 원더걸스..좀 촌스러워지지 않았나요.. 38 원더걸스 2011/11/18 9,746
39324 마크제이콥스의 비둘기 두마리 가방에 꽂혔어요 4 jjj 2011/11/18 2,665
39323 위대한 탄생보는데요. 14 위탄 2011/11/18 4,241
39322 경찰대 1 .. 2011/11/18 1,701
39321 여의도 출퇴근 하기 쉬운곳 13 작은이모 2011/11/18 2,444
39320 요즘 초등학생들 가베 안배우나요? 3 초등 2011/11/18 2,509
39319 언냐들아 이 글 좀 봐 줘봐요~ 1 82쿡 언니.. 2011/11/18 1,322
39318 정녕 영어는 답이 없나요 7 영어 2011/11/18 2,473
39317 너무 인사를 너무 과하게 해서... 2 ... 2011/11/18 1,785
39316 엄마표 영어 성공하신분..지혜 좀 주세요 11 형편이 2011/11/18 3,982
39315 아무 이유없이 그냥... 노무현 싫다는 동료에게 보여 줬다네요 2 참맛 2011/11/18 2,619
39314 워커 부츠 블랙하고 브라운 중에 어떤게 2 2011/11/18 2,268
39313 요즘 느끼는 재미 하나 39 있어요 2011/11/18 10,115
39312 예술계통에 있는 분들 보면 대체로 예민한가요 9 주변에 2011/11/18 4,188
39311 FTA 반대 민주당 의원 리스트 11 추억만이 2011/11/18 2,085
39310 tvn 실시간 방송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요? 1 아기엄마 2011/11/18 3,673
39309 초등학교 입학가방 추천해주세요~ 5 어떤가방 2011/11/18 3,137
39308 부담없는 저녁식사 메뉴 살짝 좀 봐주세요~~ 2 메뉴 2011/11/18 2,180
39307 나꼼수29회가 궁금합니다~ 2 힌지 2011/11/18 2,235
39306 일요일에 홍제에서 수원대학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7 적성고사 2011/11/18 1,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