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나기만 지나면 저도 38세에요.
요즘, 저는 직장을 잃은대신 낙엽진 뒷산길을 다녀오거든요.
그 정자 한켠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제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고도 와요.
그 고요한 숲길, 아무도 없는 그 산꼭데기 정장에 앉아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도 들고, 더욱더 우리 엄마가 생각이 더 나는 만큼 이해도 많이 되네요.
어릴때 우리 엄마는 화를 못참으셨어요.
특히 집이 어지럽혀져 있고 정리가 되지 않은걸 보면 눈에서 불꽃이 튀고 그 눈자위 전체가 붏게 물들곤했어요.
그때 우리아빠는, 이미 동네에서도 소문난 알콜중독자였고,
대신 엄마가 이런저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었는데, 챙겨가야 하는 학교준비물들앞에서 수수방관만.
비 오는날, 빈손으로 우산도 없이 학교에 가서 준비물들어있는 시간이 시시각각 닥쳐오는걸 얼마나 가슴뛰며 불안해하다가, 결국엔 선생님앞에서 목메인 울음만 꺽꺽...
이런저런일들이 참 많은데, 엄마아빤 우리들이 받아오는 상장들앞에서도 기뻐하거나 설레여하지 않았어요.
그래...하는 그 말에서는 일상을 벗어난 잠깐의 기쁨도 없었고, 나중엔 그 상장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도 되었어요. 따라서 우리들도 상장에 대한 의미가 없었고요.
오히려 상장앞에 무겁게 드리워진 가난의 굴레가 더 오히려 크게 부각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상장을 받아들고서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시던 엄마, 아빠.
그런데 제가 엄마가 되니 그 느낌을 알것 같은거에요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그 가야 할길이 가시밭길같은 푸른안개 뒤덮인 절망이었다면, 그 상앞에서도 마음놓고 크게 한번 웃어보지 못했나.하고
그런 엄마다보니, 우리들을 변호해준적도 없었던 사람.
언젠가 키큰 덩치큰 아이랑 싸우고 아무일 없듯이 넘어가려 했는데 그 덩치큰 아이 엄마한테서 제 이야길 들었답니다.
무슨 아이가 그리 성질머리가 나쁘냐고
그 덩치큰 아이에게 늘 당하기만 하다가, 결국은 못참고 같이 싸운걸 가지고 일이 그렇게 되었더라구요.
"너 그럼 시집 못간다. 성질이 아주 못되었다고."
그때가 11살때였거든요. 그때에도 참 황당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럴수밖에 없었을테죠..
엄마부터가, 푸른 안개가 다 걷히지도 않은 새벽나절마다 동네어귀를 돌아나오는 첫차에 그 발을 올려놓을까 말까 망설였던 가슴아픈 시절이었을테니말이에요.
낙엽이 지고 바람마저 고요한 그 산길 오솔길을 내려오다보니, 이해못할건 아무것도 이세상에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