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양극화를 조장하는 세력은
부자의 돈을 빼앗아, 대기업의 부를 강탈하여
모두 똑같이 잘 살아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빙빙 돌려
반값등록금이라고 애둘러 이야기 한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살아진지 오래
옆집 한우 먹는데 우리집은 호주산 소고기 먹으면 가난한 것인가?
친구는 명품백 10개 있는데 나는 세 개 밖에 없느면 가난한 것인가?
따뜻한 잠 못자고, 배불리 밥 못먹는 사람이 가난한 것 아닌가?
지지리도 가난해서 보릿고개라는 눈물겨운 시절을 허리띠 졸라매고 풀죽쒀서 먹던 때가
이 땅에 있었다는 것을 왜 벌써 잊었는가?
온 동네를 통틀어 차 있는집이 달랑 하나, 텔레비전 있는 집 하나.
이게 바로 극단적인 양극화 아닌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양극화인가?
진짜 가난한 사람은 나보다 더 가진 사람 둘러보며 '나쁜 놈'이라 손가락질 할 겨를이 없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일곱집이 한 화장실을 쓰는 그런 독특한 집에 살았었다.
방한 칸에 주방 하나. 그리고 화장실은 공용!
그때 부모님의 입에서 가난을 불평하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도리어 부모님은 늘 이런 이야기로 식구들을 독려했다.
"우리보다 더 없는 사람들도 있단다.
나중에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지금 우리식구들은 연습하고 있는거야."
진짜 가난하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정신 딴데 팔면 가난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가난하다고 느끼는 그 패배의식에 함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가난하면 남볼 겨를이 없다.
더 있는 사람, 더 부자인 사람 보는 사람은
가진 것 많은 사람이다.
더 있는 사람 보며 분노하는 사람은
내가 가진 것에 조금만 보태면 나도 그와 같을 수 있는데 그게 안 되서 화가 난 사람이다.
마치 내가 누려야 할 것을 빼앗겼다는 몹쓸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G20 정상회의에서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
"한국은 많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상당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한 유일한 예로, 내가 자주 소개한다.
신흥국 중에서 중국은 원조를 받는 입장에선 졸업했지만, 아직 원조를 주는 국가는 되지 못했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도 영국과 한국이 대표적으로 개발 원조를 늘리는 국가다. "
가난 했던 우리집도 이제는 조금이나마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도우며 살아가는 마음 부자가 되었다.
가난했던 한국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양극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한국은 양극화를 상당히 극복한 나라에 속한다.
동네에 하나 있던 텔레비전이 지금 우리 모두의 집에 하나씩 있질 않은가?
근데 왜 누군가는 항상
소쩍새 처럼 '솥적다 솥적다' 구슬피 울며 사회를 전복시키지 못해 안달인 것인가?
양극화는 자족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면서
양극화라고 선포해 버린 바로 '그'의 상상속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