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샤워를 마치고 나니
상쾌하기는 하지만
밀린 업무를 집에까지 가져온 내 마음은
엘리베이터 없는
구린 6층 아파트에 살면서
20리터 생수통을 사들고 가는 거처럼
무겁기만 하다.
여름방학 내내 밀린
탐구생활 마냥
뒷장으로 넘길수록 어려운 과제들이 쏟아진다
맥주 캔을 뜯으니
이현우의 거품 소리가 들린다
‘촤하하하하하~~’
거실에 널어놓은 맑은 커튼에
바람이 실렁실렁
시험치기 전 날은
뭐든 쳐다 보는 것마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
창밖 붉은 가로등이 뚫고 들어와
‘어섭쇼~’내 방은 이제 포장마차
새벽 한 시
마요네즈와 고추장을 키스시킨
오징어 다리를 꿇어앉혀놓고
잘근잘근 씹어주고 있었다
사장님 문자도
잘근잘근 씹어주고 있었다
새벽 두 시
컴퓨터를 켠다
윈도우를 설치했기 때문에
커튼을 사러 왔다는
어느 아가씨의 농담이 진담처럼 들린다.
사장님, 제 마음이 퇴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