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편은 미술가 입니다. 감수성 예민하고, 밤낮이 없습니다.
돈에도 자유, 세상에도 자유,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해탈한 듯한 여유로움때문인지,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결혼을 했고, 애들이 태어났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삽니다.
남편은 미혼과 기혼의 차이, 아이가 있고 없음의 차이가 없이 생활패턴이 같습니다.
반면, 저는? 신혼때까지만해도, 남편과 함께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만끽했지만,
완전한 아침형 인간이자 엄마,며느리,아내로 다시 태어났죠.
돈도 벌고, 살림도 하고, 아이도 공부시키고...주위엔 해야할 것 천지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전쟁시작이고, 밤에 눈을 감을땐 그냥 이렇게 죽고싶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실력을 인정받아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고정수입이란게 저희도 생긴거죠. 한달에 150만원.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 이상 돈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제 차지가 되는 겁니다.
꿔오든, 알바를 더 뛰든,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내가 책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남편은 당당합니다. '내가 놀아? 벌어오잖아!' 이겁니다.
제가 '내가 아무리 벌어도, 모자라도 너무 모자라잖아' 하면,
'그럼 너도 벌지마! 누가 일하래? 없음 없는대로 살아!' 랍니다.
처음에 전, 예술하는 사람, 최대한 써포트 해주고 싶었고,
결혼10년이 넘어갈때까진, 돈을 벌어오던, 벌어오지 않던,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실력에 대한 믿음은 있었으니까요.
남편의 동기들이나, 주변인들은, 미술 자체로 먹고 살기가 힘드니,
(인지도가 있는 경우) 유명 학원에 학원강사로도 일하고,
개인 레슨도 많이 하더라구요. 오히려 그런경우는 회사 다니는 사람보다 페이가 좋죠.
남편은 그런 것 하기 싫어합니다. 성격이 적극적이지도 못하고, 귀찮은거 딱 싫어합니다.
시댁에서 뭔가 도움을 좀 주셨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겁니다.
빚만 있던 시댁. 우리가 생활비 안드리면 1달도 못 버티는 집.
그래서 합가를 감행했습니다. 아이들은 커가는데, 더이상 시댁 생활비 감당이 안되서요.
저도 이제는 힘이 들어서 두 집 살림 못하겠더라구요. 지지고 볶더라도 방법이 없었어요.
근데 시부모님이 저희집에 들어오시면서, 신랑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시니까, 더 자유로워지고, 더 바깥으로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한테 원래도 관심없었지만 (딱 생색나는 자리에서는 엄청 이뻐함. 아주 짧게)
아직까지 아이들은 아빠 좋아합니다.
왜냐면 제가 공부시키면, 놀으라 하고, 제가 밤늦게 못먹게 하면, 먹게 하고,
갖고 싶은건 다음에 사준다고 하면, 그깟거 얼마나 한다고 청승이냐고 바로 사주니까요.
남편의 평균 귀가 시간은 새벽3시입니다. 전 피곤해서 자야됩니다. 다음날 아침 6시 일어나야되니까요.
시부모님이 저를 안쓰러워하고, 신랑을 아무리 혼내도, 신랑의 행동엔 변화가 없습니다.
도대체 자기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자기를 그렇게 괴롭히냐고 반문합니다. 심각하게요.
이제 저, 아이들, 시부모님...모두는 남편의 행동을 포기했습니다.
시부모님은 제가 '이혼'이란 말을 꺼낼까봐 제 눈치를 보십니다.
신랑은 저와의 대화를 기피합니다. 왜냐면 전 돈만 밝히는 속물이고,
입만 열었다 하면 산뜻한 얘기가 아닌 칙칙한 얘기만 하는 여자니까요.
그래서 우리 부부의 대화는 네이트온이나 카톡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부부란 이런 현실적인 얘기도 하는게 부부다..모든 부부가 이런얘기 하는거다..(돈이나 육아관련)
좋은 얘기만 하고 사는 부부는 절대 없다고..아무리 얘기해도 아니랍니다. 저만 이상하대요.
그리고 얼굴볼 시간도 서로 없지만, 얼굴봐도 서로 유령 취급합니다.
6개월간 서로 한 대화는 단 10마디도 안될겁니다. 당연히 섹스리스고요.
그나마 오갔던 대화도, 이거 독촉장 뭐야? 어, 의료보험료 밀린거. 이런 내용들.
돈얘기는 결혼10년이 지나면서 저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벌어온 150만원은 이래이래 해서 다 나갔다,
그 이상 아이들 학원비, 시부모님 용돈, 재산세, 자동차세 등등
이런건 내 월급에서 얼마얼마 나갔다. 고로 지금 통장잔고 얼마얼마다.
이런 얘기 하면 바로 침묵입니다. 답장도 안하고, 반응도 없습니다.
그러냐, 그렇구나, 알았다, 고맙다, 수고했다, 이런말 절대 없습니다.
그냥 무반응.
반면 자기가 가끔 부수입을 얻어오면 그거 생색내느라고,
제가 받을때까지 전화합니다. 안받으면 성질냅니다.
제가 말투가 상냥하지 않고, 항상 부정적인 얘기만 한다고,
남편은 제가 다른 와이프랑 달라도 너무 다르답니다.
제가 설마 처음부터 그랬겠습니까? 절대 아니죠.
원인이 있으니 내 말투나, 대화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건데 왜 그걸 모르냐..
제가 그렇게 얘기하면 남편은 제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여자래요...우선순위를 모르는 여자래요.
고개 설레설레 흔들면서, 부부간에 서로 다정히 대화하다보면, 모든 문제는 풀린대요.
다툼 후엔 마지막에 항상 저한테 물어봅니다.
"근데 우리가 그렇게 심각하게 나쁜 부부야? 당신 얘기하는거 보면 내가 무지 나쁜놈같애"
제가 황당해 하면,
"10년 넘게 산 부부..다들 이렇게 사는거야. 무슨 특별한 걸 바래. 왜 그렇게 현실성이 없어?"
"돈? 그게 중요해?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되는거잖아? 당신도 사고싶은거 다 사. 누가 뭐래?"
"내가 애들한테 소홀하다고? 그건 무슨 황당한 소리야? 나 엄청사랑해."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