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새로 시작한 과외 학생 집에서, 강아지를 키웁니다.
(제가 강사이고 그 집으로 가서 수업)
이제 갓 일 년이 된 조그만 요크셔 테리어 수컷이에요.
등에 까만 털이 복실하니 귀엽습니다. 머리도 묶고 있고 얼굴도 귀염상인데 가만히 보면 좀 웃음 나게 생겼어요.
그런데 이 집에서는 강아지를 항상 케이지 안에 넣어 놓습니다.
뚜껑까지 있는 우리는 아니고 그, 쇠울타리 같은 거 있잖아요.
그걸로 현관 앞에 반 평이 안 되는 공간만큼 둘러서 막아 놓고 그 안에 강아지를 둡니다.
처음에는 수업에 방해 될까 봐 공부하는 동안만 넣어 놓는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저처럼 집에 잠깐 온 사람이 강아지를 싫어할까 봐 넣어 둔다든가...
그래서 괜찮다고 했지요. 꺼내 놓아도 괜찮다고.
동물 키우는 다른 집에 과외 가서도 그 집 동물들이랑 인사하고 저는 잘 지내거든요.
수업하다 보면 과외 집 푸들이 가만히 다가와서 제 냄새를 맡아 보다가
제 엉덩이에 자기 엉덩이를 대고 몸을 도르르 말고 제 등 뒤에서 자기도 하고.
그런 거 저는 괜찮고, 동물을 좋아해서 다 괜찮았어요. 수업 방해만 안 한다면.
그런데 아니래요. 쟤는 꺼내 놓으면 전깃줄을 물어뜯어서 안 된답니다.
그래서, 아, 가끔 저렇게 혼날 때 넣어 놓는 건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몇 번 수업하면서 나눈 대화를 잠깐 봐 주세요.
- 꺼내 놔도 나는 괜찮은데.
- 아니에요, 꺼내 주면 전깃줄 다 물어뜯고 그래요.
- 그럼 항상 넣어 놓는 거야?
- 항상은 아니지만...
- 답답하지 않을까?
- 사람이 볼 때는 답답해 보이지만 강아지들은 저런 공간 안에 있으면 아늑하다고 느낀대요.
수업 안 하고 저런 대화 하는 건 아니구요.
약속시각보다 10분~15분 먼저 도착해서 가방 풀고 숙제 검사 하면서 약간의 잡담으로 워밍업(친한 척, 부드럽게 분위기 풀기)할 때와
쉬는 시간 잠깐 가질 때,
학생과 저는 어차피 공부 말고는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에
공부 위주 잔소리를 피하면서 부드럽게 얘기를 하려면 신변잡기 얘기를 슬쩍슬쩍 넣는 게 좋습니다... 그럴 때 하는 얘기였어요.
어제도 갔는데, 강아지는 여전히 케이지 위를 향해 펄쩍펄쩍 뛰고(제가 보기에는
관심을 갈구하거나 꺼내 달라고 하는 욕구인 것으로 보여요) 안타깝게 짖고
그러다 제풀에 지쳐서 장난감을 괜히 바닥에 패대기치며 놀거나 자기 방석을 가지고 붕가붕가를 하고
케이지 안에서 그렇게 뱅뱅 돌다가 잠이 듭니다.
케이지 안에는 배변판, 밥그릇, 물그릇, 방석, 장난감 두어 개가 다 들어 있어요.
확실히 상황 파악이 안 된 제가 다시
- 강아지 산책, 매일 시켜?
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학생이
- 아뇨.
하며 웃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웃으며
- 어머 강아지들은 산책 좋아한다던데.
했더니, 강아지 양말인지 신발인지가 낡았는데 새로 사지 않았기 때문에 산책은 못 시킨대요.
그래서 맨발로 산책 시키고 닦아 주면 안 되느냐, 양말 신으면 미끄러져서 더 안 좋다는 얘기가 있던데, 했더니
(역시나... 수다 떨듯 하는 말투로 그냥 아는 언니처럼 말해요.
수업 전 학교 얘기, 친구 얘기 하는 것처럼 그냥.)
바닥에 있는 유리를 밟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안 된대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쓰레기통 근처에서 깨진 맥주병을 본 적이 있다고.
이건 솔직히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말을 하면, 거기에 대한 (이유가 될 법한) 어떤 말을 또 하기 때문에
(공부 중 문제가 틀린 것에 대해서도요. 밀리거나 지는 걸 싫어한다고 할까요?)
그런 성향의 일면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학생의 집은, 아파트로는 서울에서 두세 손가락 안에 꼽힐 유명한 고급 아파트예요.
그 안에서 유리를 밟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 끝에 그러더군요. 하루에 5분, 10분 정도 꺼내 주는 게 다인데 산책 가자고 하면 난리날 거라고.
그냥 웃으면서 한 말이었어요.
제가 참견할 일이 아닌 건 잘 압니다.
하지만......... 그 얘기는 강아지가 하루종일 케이지 안에 들어 있다는 얘기인데
좀 잔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동물학대, 그런 말이 떠오릅니다.
수업을 가면, 아이가 강아지를 케이지에서 꺼내 들고 자기와 함께 꾸벅 인사를 시킵니다. 그리고 넣어 놓아요.
수업 끝나고 나올 때도 꺼내 들고 인사를 시킨 다음 다시 넣어 놓아요.
한 번은 쉬는 시간에 꺼내 준 적이 있는데
방에서 방으로, 방 문에서 방 문으로 쉼없이 다다다다 뛰어다니더군요. 거의 환희 그 자체였어요.
지금까지 들은 말을 종합해 보면...
하루종일 케이지에 갇혀서 밥 먹고 물 먹고 잠도 자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거실에 앉아서 수업 하다 보면 눈 앞에 바로 그 강아지가 있는데
안 볼 수도 없고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제 눈에는, 나오고 싶어하는 열망이 보이는데
정말 그 케이지가 안락함을 주는 것인지.
제가 어떻게 해 줄 수도 없고, 앞으로는 학생과 강아지 얘기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 강아지가 괜찮은 것인지 마음이 쓰이고 궁금해요.
차라리 제가 데려와서 키우고 싶을 정도로.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을 할 망정
주인 옆에서 부비고 까불고, 집 안에서는 제약 없이 어디든 다닐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꺼내 주면 돌아다니면서 똥오줌 쌀지도 몰라요, 하는데
케이지 안에서도 자기 배변판 위에만 볼일 보는 그 강아지가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다 하더라도 훈련시킬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전선 물어뜯는 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정말 그 학생에게는 더 말할 수도 없는 것이
학생도 어리고,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인 데다 작년에 큰 상처 받은 일이 있었던 아이라
지금은 만사에 부정적인 말만 합니다. 이 학생 기분을 맞추어 수업하는 것이 저의 제 1 과제예요.
어머니는 하루종일 너무 바쁜 전문직이시고
아버지는 안 계십니다. 학생의 형제자매도 없어요.
살림은 격일로인가, 거의 70 다 되어 보이시는 할머니가 오셔서 밥이랑 빨래 정도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자 도우미... 그런 분이신 것 같은데 강아지 산책까지는 못 시켜 주실 거에요.
그 강아지가 케이지 안에서 계속 생활하는 것도 괜찮은 거다... 그런 얘길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런데 참......... 산책이라도 내가 시켜 줄까? 하는 말이 목까지 나오네요.
산책로에서 마주치는 저희 동네 강아지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지
얼굴에 다 티가 나거든요.
그런데 그 강아지는
케이지 안에서 밥 먹고 물 먹고 가끔 주인이 쓰다듬어 주고 꺼내서 만지고 다시 넣어 두고...
인형 취급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에너지 팔팔할 어린 강아지인데 놀자고 안달난 것도 안쓰럽고
훈련시켜 주고 사랑해 주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강아지를 그렇게 인형 취급 하면
전선 물어뜯는 등의 욕구불만 행동도 교정이 될 수가 없는 게 아닐까,
한참 성격 형성될 시기에 쟤는 어떡하나...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