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 모든 개표가 종료되었습니다.
최종 득표율 박원순 후보 53.4% 대 나경원 후보 46.2%.
약 30여 만 표의 차이로, 박원순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었던 ‘물질’이라는 개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수치화할 수 없고 계량화 할 수 없는 ‘가치’라는 개념의,
그 두 가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된 프레임간의 대결.
패러다임 시프트로써의 선거였습니다.
지금까지의 프레임. 당장 움켜쥐지 않으면 의미를 잃어버리는 물질. 그리고 그것을 위한 경쟁.
스펙을 갖추지 않으면(갖추려 노력하지도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되었고,
학벌과 연이라는 공정하지 않은 경쟁 룰마저도 ‘빽도 능력’이라는 무한경쟁의 논리 속에 합리화되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던, 어떤 철학을 가지던, 많이 가지는 것이 제 1의 목표가 되어왔습니다.
이러한 프레임은, 당장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경제적 불안함 속에서 매우 큰 매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희망이니, 정의니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허황된 꿈을 말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 걸’ 얘기할 시간에, ‘남들 다 하고 있는’ 스펙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야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이 프레임 안에서, ‘사람’은 없었습니다. 도태되는 개인은,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게으른 것이 되었고 시대에 뒤처지는 것이 되었습니다. 주체로 출발했던 개인은, 수치화할 수 있는 스펙 앞에서 재단되고, 값이 매겨지는 객체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프레임의 논리 속에서는, 변화는 불가능했습니다.
이러한 프레임을 내면화 한 상태로는, 변화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민주주의, 정의...
이것들을 한 음절 한 음절 발음할 때,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떨림을 느낍니다. 먹먹함을 느낍니다. 울컥하는 무엇과 함께,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낍니다.
제가 잘났다는 말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건 오히려,
비정상입니다.
1+1은 2라는 명제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의문이나 감동을 느끼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게 된 사회. 비상식적인 사회 속에서, 상식이 오히려 비상식이 되었습니다. 상식은, 상식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상식을, 상식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번 선거는 시작되었습니다.
상식을 상식으로써 있게 하기 위해. 정의를 외칠 때,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느끼지 않고 너무나 당연해서 별다른 감정마저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를, 당연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한 걸음이, 지금 내딛어졌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변화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기득 프레임을 선점하고 있는 자본권력 앞에서, 조중동을 필두로 한 언론권력 앞에서, 상식은 무력했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마저도 그 프레임을 내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끌어내려지고 죽임을 당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서울 시장 한명 바뀐 것만 가지고서는 큰 변화가 없으리라는 예측이 오히려 현실과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난 4년여 기간을 거치며 이젠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패러다임은 시민의 의식을 바탕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시민 하나하나의 의식이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민들, 객체가 아닌 주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시민들이, 상식을, 가치를 얘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게 상식이 될 때, 저같은 놈이 ‘당연한 것을 새삼스럽게 떠드는 비정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은, 우리도 알아차리지 못 한 사이에 우리 곁으로 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 날이 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2년 대선 정국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 일부분을 수록하는 것으로, 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조선 건국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숙이고 외면했어야 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