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서 지난 1년간 길렀던 고양이가 지난 9월 말 가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길에서 살던 고양이를 길거리 캐스팅한 것이라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외출고양이였기 때문에 밖에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했는데
이웃 가게에서 원성이 자자했던 겁니다.
집에 가면 우리 집 개가 갈기 털을 날리고 노릴 것이 뻔할 뻔 자라
집으로 데려가는 것은 포기하고 있었고,
또 믿을만한 입양처 구하기도 어렵고 해서 힘들지만 끼고 있었습니다.
이 고양이는 정말 애교가 많고 넘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침에 가게문을 열고 뒷문 뜰로 나가면 지붕밑을 내려오며
제 다리에 머리를 부비부비하는 그녀의 모습이 제게 큰 위안이 되었고
골골대는 그 소리가 얼마나 이뻤는지요. 이 고양이는 제게 선물이랍시고
비둘기도 자주 날라다 진상품으로 갖다 바쳤습니다. 그러나 가게는 도무지
그녀에게 좋은 집이 되지 못했습니다. 주말이면 그녀를 두고 나와야 했고
또 휴가철에는 옆집에 먹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지만 불안했습니다.
마침 최근 자식같이 이뻐하던 사람이 우리 고양이를 자기가 키울 수 없겠냐고 제안했고
여러가지 테스트와 탐문 속에 잘 키워줄 확신으로 입양를 보냈습니다.
그 뒤 텅 빈 것 같은 가게 뒤뜰, 창고, 담벼락을 보며 '뽀'양의 자취를 그리워했지요.
이제 다시 그런 시절은 돌아오지 않겠네요. 물론 내 인생에 다시 고양이를 키울 수도 있겠지만
뽀삐는 내게 있어 딱 한 마리인 유일무이한 고양이니까요.
턱시도냥이었지만 얼굴부분은 정말 하얗고 예뻤던 뽀삐.
그녀를 입양해간 주인에게는 혹시 키우다 버거우면 남 주거나 버리지 말고 나한테
돌려달라고 약속을 해 둔 터입니다만. 지금 그 집에서 매우 매우 잘 지내고 있다합니다.
그녀가 떠나고 그녀의 우다다질로 쑥대밭이 되었던 뒤뜰에서는 다시
고들빼기가 자라고 잔디가 자라고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과
치유력에 놀랍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자리에 다시 도망쳐 높은 곳에서 내려 올 생각을
못했던 비둘기들이 서서히 날라오고 있네요. 최근 뒤뜰에 날개에 상처를 입어서 날지 못하는
새끼 비둘기가 왔습니다. 만약 뽀삐가 있었으면 즉시 잡혔을 텐데 이제는 한 구석에 여유롭게 있네요.
어제는 비스켓 부스러기를 좀 주었습니다. 사람이 나가가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푸드덕 푸드덕
도망치지만 여전히 공중으로 날지는 못합니다. 그곳에 밥 부스러기와 비스켓, 물 그릇에 물을 담아
두고 퇴근했는데 오늘 와보니 비스켓은 싸그리 먹어치우고 어제보다 훨씬 쌩쌩한 모습으로 남아 있네요.
내일은 제발 공중으로 날라다니기를 바랍니다. 그게 비둘기의 본능이니까요.
비둘기야 제발 내게 박씨 하나만 물어다 줄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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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떠나고 비둘기는 돌아오고
패랭이꽃 조회수 : 2,157
작성일 : 2011-10-22 23:22:09
IP : 186.137.xxx.174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_+
'11.10.22 11:24 PM (110.13.xxx.96)원글님 이쁜분이시네요
2. ㅎㅎ
'11.10.22 11:30 PM (220.117.xxx.38)저도 냥이 집사인데요....
냥이들이 새들 생태에 크게 영향 미친다는 외국 다큐를 본 적이 있었어요
다큐에 나온 집도 새와 냥이 모두 사랑하는 분이었구요...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지...결론이 뭐였나 기억이 안나네요...ㅎㅎ3. 열매
'11.10.22 11:30 PM (122.202.xxx.154)전 식물도 잘 못 키우는 마이너스의 손이라 동물은 ..... 원글님의 따뜻한 맘이 냥이나 비둘기에게
전해지나 봅니다.4. 고냥이
'11.10.22 11:31 PM (175.194.xxx.113)고양이는 아니지만, 고냥이 여기 있어요 ㅎㅎㅎ
한 편의 잔잔한 동화를 읽는 느낌이에요. 수채화로 엷게 그린 삽화가 아름다운 동화요.
근데 마지막 한 줄에서 왠지 비장함이ㅋㅋㅋㅋ..
'11.10.23 10:02 AM (180.69.xxx.60)저도 고양이 두마리나 모시는 집사라 웃음 띄고 보다가
마지막 줄에서 흠칫 했네요. ㅋㅋㅋㅋ
비둘기야 꼭 갖다 드려라. ㅋ 너무 간절하심 ㅋ5. 패랭이꽃
'11.10.22 11:33 PM (186.137.xxx.174)저는 동물은 잘 키우는 거 같은데 식물은 왜 이리 잘 죽이는지 모르겠네요.
6. 참맛
'11.10.22 11:38 PM (121.151.xxx.203)ㅎ 그래도 정은 떼셔야 제대로 보내 줄 수 있습니다.
7. 어머나
'11.10.23 12:45 AM (75.195.xxx.153)패랭이꽃님~~~^^
그동안 댓글 보면서 어떤분일까 생각했답니다.
차분히 정리있게 댓글 다시는 모습과 글들이 너무 좋아서 몇번을 읽어보곤 하던분인걸요.
글도 넘 잘쓰시고,마음도 너무 아름다우세요.
마음의 여유를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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