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봄을 탄다는데,
전 왜 이리 가을을 탈까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때는
아침저녁으로 반팔밖으로 나온 팔에 서늘하게 닿는 바람에 엄청 행복해하다가
이제 가을바람에 조금씩 쨍!하니 겨울내음이 느껴지기 시작하니,
옛날 일들이 마구마구 떠오르고...눈물나고 그래요.
작년까지는 어린시절, 대학시절이 떠올랐지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었는데
문득 뒤돌아보니, 그 시절의 '나'는 먼 옛날의 다른 사람같은 느낌이 들면서
괜히 눈물나더라구요.
그런데 어제는 이십대후반...신혼시절이 그렇게 다가오는거예요.
'우리 그때 그랬쟎아'라고 어제 일처럼 말했었는데
이제는 너무 먼먼 옛날일처럼 느껴지면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인듯하고
잡고 싶고...
표현력이 딸려 제대로 말할 수 없지만...운전하다가 울었어요.
남편이 직장을 옮긴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입사준비를 하던 겨울...
결혼하면서 했던
'경제적 안정보다는 배우자의 꿈을 우선하자'는 약속을 지킨다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저 혼자 회사 다니던 시절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정말 아끼고 아끼던 시절..
옷 사러 갔다가 옷가게 새하얀 니트를 대보았는데, 제가 입고있던 니트가 아마 색이 많이 바랬던듯
옷을 사고 나오면서 남편 눈이 빨개졌던 거
둘이 자전거타고 깔깔거리면서 돌아다녔던거
특히, 그 해 말일이 자꾸 생각나요.
제가 다니던 회사 옆에 자그마한 옷가게들이 많았는데,
거기 복실복실 털로 짠 모자와 장갑세트가 있었어요.
제가 맘에 들어하자, 남편이 장갑을 사주고 (돈이 없어서 모자는 못샀죠)
모자는 다음에 사주마 하고
그 장갑을 끼고 정말 아주아주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영화본 날
눈이 펑펑 내려서 발이 푹푹 빠지는데
그 장갑을 끼고 남편 팔짱을 끼고 눈길을 걸어
새로 생긴 중국집에 가서 큰맘먹고 짬뽕 하나 깐풍기 하나
아~~~ 정말 맛있었어요.
그 이후로 그렇게 맛있게 먹어본 깐풍기와 짬뽕이 없었죠.
그리고 옆 영화관에 가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자정이 넘은 시간 다시 눈길을 자박자박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게
자꾸 생각이나요.
얼마전까지만해도 "우리 거기 깐풍기 짬뽕 다시 먹으러 가자"고 말할때는
다시 가서 먹으면 그때랑 똑같은 느낌일 거 같았는데
지금은....
다시 그 곳에 가면..........
마치 영화속에서 본 식당에 간 듯한 느낌일 거 같은거예요.
벌써 수년이 흘러
꼬맹이 딸도 있고
이제 깐풍기와 짬뽕쯤은 아무 고민없이 사먹을 정도이고
남편은 여전히 따뜻하고
지금도 행복한데...
가을이 사람을 그립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