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선도 안본다는 세째 딸
이제 막 벌려놓은 공부계획과 너무나도 어긋나는 임신이었던지라 왜 나는 뭐만 하려고 하면 임신이 되는가를 외치면서 처음에는 쉽게 공부를 접지 못하고 입덧에 시달리면서도 학교를 계속 다녔다. 너무 힘드니까 그만 두는 게 좋겠다는 남편의 만류에 항의라도 하듯이 등교 길에 고속도로 중간에서 차를 세워놓고 토해가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데 결국에는 내 몸이 견디질 못하니 학교를 쉴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내 자신이 모자라보이기도 해서 한동안 마음을 못 잡았던 시간들이었다.
임신 초기에는 두 번이나 하혈이 심해서 유산의 고비를 넘겼고 중기에는 다운증후군 태아 검사결과가 잘못 나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한동안 나는 마치지 못한 공부에 대한 미련으로 늘 마음이 무거웠고 호시탐탐 학교로 돌아갈 생각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이렇게 철없는 엄마에게 찾아온 세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어디를 가든 귀염받고 주목받는 애교덩어리로 자라왔다.
언니들 틈에서 자기의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고 수줍음 많은 두 언니들과는 달리 남 앞에 나서는 일이 그다지 두렵지 않은 재주꾼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세째를 가리켜 몸은 일곱 살 마음은 설흔 살이라고 하는데 아이치고는 언변이 좋고 나름대로 꽤 논리적이고 유머에 대한 센스도 제법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가정예배 때에 예수님이 어디에서 돌아가셨는지를 물었더니 'Cross(십자가)'라고 대답하는 대신에 'Cross the street(길 건너편에서)' 라고 대답을 하는 바람에 지금도 두고 두고 웃으며 얘기하는 일화가 되었다.
그 작은 머리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기발한 말과 생각이 나오는지 신기해서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보면 장난기 가득한 눈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두 언니나 동생보다 더 엄마 아빠의 사랑을 얻으려는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져서 안쓰러울 때도 있다. 어쩌다 한번씩은 자기가 외동딸이었으면 좋을 뻔 했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33개월 터울의 동생이 시비를 걸고 머리를 잡아다녀도 제대로 보복전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마음 여린 언니이기도 하다. 언니들과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니 사교성도 좋고 남의 마음을 알고 배려해주는 것도 발달이 되었구나, 생각하면 형제를 많이 낳아 준 엄마는 한없이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인생 전반에 걸쳐 얼마나 값진 자질이 될까를 따져보면 언제나 형제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결론으로 돌아가곤 한다.
형제가 없이 자란 나는 아이들 간의 갈등이나 경쟁에 익숙치가 않다. 심지어 저희들끼리는 쉽게 주고 받는 폭언(?)에 내가 더 상처를 받는 일도 흔한 일이다. 저토록 심하게 싸우고도 다시 시시덕거리고 싶을까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의 선생이라고 했듯이 아이들끼리 수많은 갈등을 만나고 해결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인간관계의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워간다.
세째가 태어남으로 인해 여러가지 웃을 일들이 생겨났음에도 불고하고 중단했던 공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참으로 무의미하게 시작했다가 끝도 제대로 내지 못한 시간낭비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생각다 못해 네째를 낳고 나서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마음에 같은 학교에 원서를 냈다.
이번에는 기대치를 낮추어(?) 상담심리학으로 전공을 정했는데 웬일인지 담당자가 석사를 지원하지 왜 학부에 가냐고 했다. 다행히 내가 지원한 학교는 심리학을 문과로 간주하는 곳이었기에 학부에 편입을 하지 않고도 무난히 석사 과정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학부에 입학했던 기록이 남아 있어서 TOEFL도 면제를 받고 입학시험도 비교적 호의적인 조건으로 보게 해주었다. 결국 우리 세째 덕분에 힘겹게 학부부터 공부를 시작하지 않아도 되어 시간이 절약되었고 예전에 입학했던 기록으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다 받게 된 셈이었다.
석사 과정 합격이 발표된 날, 나는 세째에게 깊이 감사를 했다. 엄마가 공부해서 학교에 간 건데 왜 자기한테 고맙다고 하느냐고 하기에 네가 아니었으면 엄마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것이 자식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엄마 노릇을 할 뻔 했다고 했다. 아이가 내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지 엄마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방그레 웃었다.
아이들에 묶여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포기해야 했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그 시간이 모든 것을 지연시키는 기간이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귀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배웠다.그 시간이 있었기에 육신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세째 덕분에 내 인생은 새로운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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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염소자리
'09.9.14 2:14 PM갑자기 감정이입이 되네요....
저도 만년 박사과정중이랍니다..
실험 하려고 계획을 짜서 pretest 하고 본실험에 들어가려고 할때마다 덜컥 덜컥 임신이 되어..벌써 둘째의 분만이 코앞이네요..
그래서 둘 다 임신초기에 환호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늘 마음이 안좋거든요.
늦은 나이에 임신이 덜컥 잘 되는것도 복인데...^^;;
사실 걱정없이 임신되어 아이 낳고 잘 사는거... 아이에게 고마워해야하는데도 늦어지는 학위에 마음 한켠이 항상 개운치 못하네요.
우리 아이가 지금 이순간에 우리 부부에게 와주는건 다 이유가 있어서겠죠?
동경미님처럼 말이예요.. ^^2. 동경미
'09.9.14 2:36 PM염소자리님, 축하드려요. 제 삶의 경험에 의하면 학위는 늦어지더라도 생명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이 예비되어 있기에 늦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도 세째 때문에 의대에서 상담심리학으로 전공 바꾸었고, 그리고 나서 네째 까지 낳아 키우며 세월이 가면서 제가 갈 길을 확실히 깨닫고 다시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어요. 내년에 로스쿨에 입학합니다. 그 때 세째를 포기하고 둘만 낳았다면 지금은 의사되어 개업했을 거에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남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일에는 관심없는 아주 냉정한 의사 밖에는 못 되었을 거에요. 상담심리학을 하고 세월을 보내고 조금이나마 성숙해질 시간을 가짐으로써 로스쿨도 결정하게 되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을 찾게 되었어요. 지금 이순간에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앞날에 어떤 것들이 다가올 것인지를 우리가 정말 모른답니다. 염소자리님도 둘째 건강하게 낳으시고 많이 예뻐해주시고 그 시간을 즐기세요. 그러지 못하면 나중에 생각할 때 마음이 많이 아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