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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첫 딸은 나의 스승

| 조회수 : 2,087 | 추천수 : 151
작성일 : 2009-09-11 02:13:13
푸른 초원을 가득 뒤덮고 있는 뽀얀 아기 돼지들 틈에서 한발자욱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다가 그 중 한마리를 들어 안는 꿈을 태몽으로 꾸고 낳은 큰 아이는 나이만 먹었지 철부지였던 엄마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내 인생의 선생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물 아홉이 되도록 기내 통역관으로 일하며 세계 곳곳을 다니느라 결혼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던 나는 결혼과 함께 생겨 난 아이를 제대로 감사하며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도 힘겨웠던 그 당시에 조금만 더 있다가 아이를 가질 것을 그랬다는 후회도 꽤 했다. 노산(?)이라고 서둘러 아이를 가지고 임신 초기에는 심한 입덧에 시달리느라고 물 한모금도 제대로 못 넘기면서 나는 날마다 결심을 했었다. 하나만 낳고 다시는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그렇게 열달이 지나고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철부지 엄마 아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아내가 아이를 낳는 동안 남편이 밖에서 대기하며 마음을 졸이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남편이 함께 출산을 지켜보고 도와주게 한다.

임신기간 동안 여러 교육을 통해 출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고 태어나는 아이의 탯줄도 직접 자르며 아이와 첫 대면을 한 남편은 예상보다도 더 감동이 컸다고 했다. 특히 태어나자 마자 담요로 감싼 아기를 처음으로 안아들고 내게 건네 줄 때의 그 감동은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감동의 시간도 잠깐, 퇴원 후 집에 돌아오자 평생을 가야 하는 길고 긴 부모의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나이에도 무슨 일만 있으면 쪼르르 친정 엄마에게 전화해 하소연하던 나와 형제 많은 집의 막내로 자라서 천진난만하던(?) 남편은 아기의 탄생과 함께 별 수 없이 어른이 되어야 했다.

새카만 두 눈을 반짝이며 우리 두 사람만 믿고 삶을 시작한 우리의 아기와 함께 우린 뒤죽박죽의 부모노릇을 시작했다. 친정이 서울이고 신접살림을 미국에서 시작했기에 친정엄마의 도움은 기대도 못했고 시어머니께서도 직장에 다니고 계셨기에 육아는 꼼짝없이 내 몫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 키우는 일에 속성으로 적응하게 된 귀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우리와의 인연이 시작된 아이가 이제 15 살이 되었다. 제 의지와 관계없이 두 살 터울씩 생겨난 세 명의 동생들의 큰언니로 얻는 특권과 이따금씩 생기는 손해 속에서 엄마와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라 주었다. 어느 부모나 그렇겠지만 큰 아이에게 나는 유난히도 미안한 게 많다.

첫 아이라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한 부분도 너무 많고 남편이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 태어난 아이라서 이런 저런 마음 고생에 여유가 없어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점도 많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도 있었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아 주지 못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왜 그렇게 좁게만 생각했을까, 어쩌면 그렇게 발등의 불만 끄며 살았을까, 후회가 되지만 그땐 생활에 치이다 보니 아이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일하는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많다 보니 아이가 조금만 잘못된 게 보여도 저 아이가 엄마 사랑이 부족해서 그러나 싶고 내가 일을 하는 것이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또 잘하는 면이 보이면 그래,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자위를 하기도 했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아마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쏟아 부어도 늘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아이가 갈증나지 않을 때에도 내 목은 한없이 마르기만 하는 걸 보면...

아침마다 출근할 때 "엄마, 가지 말고 나랑 놀자"라며 매달리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여러 번 일을 그만 두고 싶었는지, 이제 15살이 되어 내 신발도 같이 신을 수 있는 아이는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

맏이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요소인지 아이는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럽다. 그래서 기특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다른 집에서 막내라면 아직도 애기짓을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동생들에 치여서 둘째가 태어나기 전 두 해를 제외하고는 애기짓 한번 제대로 못해 보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다시 솟아 오른다. 그럴 때면 늘 같은 질문을 말만 바꿔가며 아이에게 거듭 물어본다.

"선영아, 동생이 너무 많아서 싫을 때도 있지?"
아이는 언제나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젓는다. 자기는 동생들이 없으면 심심해서 못살거라고 한다.
"그럼, 엄마가 동생 더 낳을까?"
장난기가 발동해서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는 배시시 웃으면서 그건 아니란다. 자기가 힘들다는 소리는 못하고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안된다고 하는 아이의 마음이 예쁘기만 하다.

인생의 수많은 굴곡 속에서 때로는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조건의 사랑과 믿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내 아이의 맑은 눈빛이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호리
    '09.9.11 10:13 PM

    저도 맏딸이랍니다. 글 읽고 맘이 짠하네요.. 첫째들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간은 조숙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저랑 동생을 데리고 택시를 타실 때가 있었는데, 항상 둘 다 자더래요..
    내릴 때가 되면, 제 동생은 아무리 깨워도 절대 안일어나고 (엄마가 자기를 안고 갈 것을 알고 있기에^^)
    저는 엄마가 제 귓가에 '**야...' 라고 속삭이면, 바로 벌떠덕 일어나더랍니다.
    너무 미안하셨대요.. 전 기억이 안나는 일이지만.. ^^; 동경미님 글 읽고 오래전에 들었던 저희 엄마 얘기를 떠올려봅니다.

  • 2. 동경미
    '09.9.12 3:08 AM

    호리님이 맏딸이시군요. 맏이들은 정말 타고난다고 하고 싶을만큼 저희 집 큰 딸도 책임감 자립심 너무나 강해서 기특하기도 하면서도 마음이 짠하고 안쓰러울 때가 많지요. 호리님 어머니께도 님이 첫사랑이랍니다. 남편도 사랑하지만 그것은 주고 받는 사랑이고 무조건적으로 기울어지는 사랑으로는 첫 아이만한 사랑이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귀엽고 관대해지지만 첫 정이 참 깊지요. 저희 큰 아이도 늘 자기 힘으로 일어나고 시키지도 않는데 동생들까지도 방마다 다니면서 다 깨우곤 했어요. 어머니가 호리님께 늘 고마웠을 거에요.

  • 3. 더좋은날들
    '09.9.12 11:14 PM

    저도요. 전 연년생 여동생과 5살 어린 남동생이 있어요. 한참 초등학교 다닐 때 그당시엔 일요일마다 대중탕에 가서 목욕을 했는데 엄마가 힘들다고 전 꼭 때미는 아줌마한테 맡기고 동생만 때를 밀어주셨는데 그게 지금도 목욕탕 가면 기억날 만큼 서운한 일이에요. // 제 딸은 5살인데 요즘 갑자기 질투가 많아져서 제가 다른 애기보고 예쁘단 말을 하면 삐져서 저한테 말도 안해요. 병치레한 뒤라 아기짓하려고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귀엽긴 하지만 괜찮을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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