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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열 손가락 모두 안 깨물고 싶다

| 조회수 : 1,958 | 추천수 : 150
작성일 : 2009-09-08 05:46:03
외동딸로 자란 나에게 가장 아쉽고 부러운 것은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었다. 군밤 한대씩 먹이는 오빠이든지 옷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는 언니이든지 하나라도 형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세상에 덩그라니 나 혼자이구나 하는 생각에 쓸쓸해지곤 했다. 새아버지와 그쪽 형제들이 있긴 하지만 나이들이 들어 만난 관계라서 그런지 세월이 지나도 가족으로 단단히 묶어지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더 외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막상 형제가 있는 친구들은 오히려 내 처지를 부러워하며 각가정에서 벌어지는 편애와 그로 인한 질투의 세월들을 털어놓았다. 오빠보다 못한 동생이 가지는 열등감, 동생보다 못한 언니가 가지는 열등감...이런저런 열등감과 질투로 얼룩진 그들의 세월의 끝은 공교롭게도 자신들도 어김없이 아이들을 편애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곤 했다. 옛 말에 호된 시집살이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시집살이 시킨다고 했던가. 자신이 편애로 인해 힘들었다면 아이들에게는 안 물려주려고 애를 쓸 법도 한데 사람의 일이 그리 쉽지 않은가 보다.

나의 외가에는 이모님 한 분과 외삼촌이 세 분 계셨다. 그 중 큰 외삼촌이 젊어서 미혼일 때 돌아가시고 돌째 외삼촌도 몸져 누워 고생하시다가 몇 해 전 돌아가셨다. 5남매였지만 살아 남은 형제는 큰 딸과 둘째 딸, 그리고 막내 아들 뿐이다. 친정어머니와 이모님의 평생의 불만은 외할머니가 아들들만 귀하게 여기시고 기르셨다는 것이었다.

친정 어머니는 큰 딸이라는 죄로 세 남동생을 모두 자신이 업어서 키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밭일을 가시면서 동생들 돌보라고만 시킬 줄 아셨지 한번도 무릎 위에 앉혀놓고 자신의 궁둥이 한 번 두드려주신 적이 없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지금도 서러워 눈물을 지으신다. 하지만 당시에 우정국에 다니셨다는 외할아버지가 출장을 다녀오실 때 사다주셨다는 유기로 된 소꼽장 그릇들을 얘기를 하실 때면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을 지으신다. 당시에는 너무나 귀한 장난감이었기에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얼마나 어깨를 으쓱하면서 자랑을 했는지를 얘기해주실 때면 5살 박이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6.25 전쟁이 나서 피난을 내려오면서 급하게 집을 나서느라고 소꼽장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아직도 한스러워하시는 어머니는 내일 모레면 일흔이시다. 어머니의 인생은 남동생들이 태어나기 전, 딸이었어도 자손이 귀한 집안이었던지라 할머니와 할아버지로부터 온갖 귀여움을 다 받았다는 어머니는 그 세월을 기억하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견뎌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재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는 바다 건너 살고 있고 일에 묶여 가 보지도 못했다. 장사까지 다 치루고 돌아오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문득 그러셨다.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면서도 딸은 소용이 없었나 봐."
길게 한숨을 쉬시며 하시는 말씀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며느리에게는 그동안 시집살이하느라고 고생 많았다고 용돈을 모으신 저금통장을 손에 쥐어주시고, 딸인 엄마에게는 아무 말씀이 없이 가셨단다. 무슨 말씀을 듣고 싶으셨냐고 여쭤보니까 눈물이 핑 도시더니 나는 돈도 필요없고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고 하셔서 나도 함께 울음바다가 되었다.

열 손가락을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하나도 없다는데 왜 미운 자식 고운 자식이 생겨날까. 얼마 전 참석했던 자녀교육 세미나에서 강사가 열 손가락 깨물면 더 아픈 손가락,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말을 해서 흥미롭게 들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살갑게 대해주는 자식이 이쁘게 마련이고 퉁명스러운 자식에게 정이 덜 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아이들의 기질의 차이이지만 우리 집 아이들의 경우에도 세째가 유독 살갑게 굴고 애교가 많다. 일하고 돌아오는 엄마 아빠에게 뛰어나와 찬 물 한 잔이라도 따라주고, 방까지 따라와서 옷도 받아 걸어주고, 오늘 하루 피곤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아주는 이쁜 딸이다. 때로는 아내인 나보다도 제 아빠를 더 살갑고 다정하게 챙겨주니 남편도 이 아이에게는 지갑과 마음이 다 열린다.

반면에 큰 아이와 둘째는 무뚝뚝한 면도 있고 그다지 애정 표현을 드러내서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면서도 동생이 온갖 애교를 부리며 엄마 아빠에게 점수를 따는 것을 보면 속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무시하는 반응을 하더니 요새는 드러내놓고 째려보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입을 삐쭉거리며 불만을 표시한다.
"너희들도 그렇게 하면 되잖니? 동생이 잘 하는 걸 왜 그렇게 미워하니?"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잘 안된단 말이에요! 아무리 해도 어색하고 잘 안되는데 쟤는 하나도 안 어렵게 하니까 정말 보기 싫어요!"
눈물까지 흘리며 큰 아이가 얘기하니까 둘째도 같이 따라서 눈이 빨개진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우는 것이 많고 제 살 길을 잘 찾아낸다는 것이다. 외동 아이들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사회성과 삶의 지혜를 가정 내에서 자연스럽게 배워나갈 기회가 적게 마련이다. 자기 경험 때문에 형제끼리 싸우고 질투하는 것이 무서워 아이를 적게 낳겠다는 부모들도 측은하기도 하고 이해도 되지만 아이에게 형제는 어려서부터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의 교실이다. 질투와 열등감, 소외감으로 상처가 얼룩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살아가면서 그 상처로 인해 배운 것들 때문에더 큰 상처를 지나쳐갈 수가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외할머니 보내신 지 벌써 두 해가 지나가는데 친정 엄마가 또 말씀하신다.
"할머니 가실 때, 엄마 사랑해요 하고 말해드리고 보낼 걸 그랬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지 않는가. 그 중에서도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평생에 걸친 승전고이고 상패인가 보다.
"엄마, 할머니 그거 다 아시고 가셨을거에요. 나도 니 맘 알고 너도 내 맘 알지 하고 가셨을 거에요. 며느리는 그거 말 안해주면 모르잖아요."

오늘도 애교많은 세째가 엄마 아빠 모처럼 휴일인데 커피랑 같이 드시라며 아침부터 일어나서 쿠키를 구워가지고 가져왔다. 제 아빠가 탄성을 지르며 칭찬을 하는데 내 눈은 가재미처럼 큰 아이와 둘째의 눈치를 살핀다. 동생이 구워 온 쿠키를 얻어먹으면서도 입은 삐죽이 나오는 것이 역력하다. 눈치 없는 남편을 쿡 찌르며 눈짓을 하니 남편이 얼른 하는 소리가 엉뚱하다.
"우리 영은이가 언니들을 닮아서 이렇게 잘하나 보다. 엄마는 안 가르쳐준 것같은데. 역시 언니 있는 애들이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큰 아이와 둘째가 아빠의 궁색한 말에 어이 없어하면서도 킥킥 웃음을 터뜨린다.

열 손가락을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도 하고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도 하는데, 내 마음 같아서는 한 손가락도 안 깨물고 싶고 모두 다 안 아프면 좋겠다는 억지가 생긴다. 사랑만 주고 키워도 보낼 때에는 힘든데 일일히 깨물어보면서 어느 손가락이 제일 아픈 지 안 아픈 지는 아예 안 알고 싶어진다. 내가 깨물지 않아도 살면서 이리저리 물리는 일 많을 우리의 아이들, 나만이라도 깨물지 말고 키우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다.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신이사랑
    '09.9.8 6:10 AM

    밤에는 서늘한 기운이 돌건만 모기때문에 일찍 일어나 있다가 좋은 글 읽었네요.
    저도 마지막 가는길에 자식에게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부모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랑...
    그렇지만 저는 아이 하나에 만족할래요.^^

  • 2. 굿럭
    '09.9.8 10:41 AM

    답글 달려고 로그인했어요.
    4살3살 아들만 둘 엄마에요. 늘 좋은 말씀에 고개 끄덕이고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감사해요.^^

  • 3. 말물질몸
    '09.9.8 11:06 AM

    동경미님.....

    자주 당신의 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서울 이쁜 하늘을 감사한 마음으로 드립니다,..

  • 4. 동경미
    '09.9.8 12:58 PM

    신이사랑님, 잠을 설치셨군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아무리 해도 넘치지 않아요. 눈 마주칠 때마다 해주세요.

    굿럭님, 연년생 키우시느라고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아이들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 이상의 축복 없답니다. 연년생 아드님들 조금만 있으면 든든한 기둥 될 거에요.

    말물질몸님, 감사합니다. 서울의 가을 하늘 너무 그리워하고 있어요. 추석이 가까워오네요.

  • 5. 개골
    '09.9.9 5:47 PM

    동경미님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어서 주위에서 항상 그런 소리를 듣긴 하지요
    하지만 정말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것은 정말 워킹맘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ㅎㅎ
    그래도 힘내서 오늘도 읏쌰

  • 6. 수늬
    '09.9.11 9:23 PM

    저히는 좀 반대의 경우인데요...2년전 울아이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요...
    울시엄니 형제가 4형제인데 막내삼춘이 거의 평생모셨거든요....첫째삼촌이 모시다가 집이
    갑자기 몹시 기울어서 모실형편이 안되었고 둘째삼촌도 못모시고(이유는 모름) 울어머님 보고
    막내삼촌이 어머니 모시는 조건으로 집을 사줬나 전세금줬나 해서 모시라고 했는데
    것도 못모시고 돈만받고...결국 제일 잘사는 막내삼촌이 모시고 가서 돌아가실때까지 막내숙모가
    모셨거든요...제가 시집와서 그댁 가봤는데 대궐같은집에서 제일 빛좋고 큰방계셨어요..
    막내삼촌과 숙모 지극정성모셨다고 해요...
    시집와서 몇년동안 보면요..울엄니 막내딸인데..할머님 한번씩 보고싶어
    약속해도 어기고...'엄마 낼 가께...'해놓고 어기고 하는거 많이 봤어요..
    돌아가시기전 여름 울집에 어머니가 할머니 모셔와놓고 놀러가버리고..제가 온몸 닦아드리고
    했져...그랬는데도...결국 돌아가시기 전주? 귀한 반지하고 옷등등...그 며느리 안주시고..울엄니
    와서 가져가라고 했는데 엄니 또 어기고 못갔져......
    돌아가시고 나서 엄니 그러시더라구요..나보고 가져가라고 했는데 못가서 언니가 다 챙겼겠네?
    라구요...그거보면서...며느리인 제 입장에서 참 씁쓸했거든요....
    아...암만 잘 잘모셔도 며느리보다 결국 딸이다...
    라구요...아마...원글님글속의 그 며느님이 딸같이 너무 잘 하셨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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