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만 세살이 되면서 한국의 유아원 정도에 속하는 프리스쿨에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실질적인 교육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커리큘럼이지만 이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미국과 미국기 그리고 대통령을 가르치는 것을 매우 강조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말도 어설프게 하는 만 네살 정도가 되면 프리스쿨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날마다 읊게 해서 외우게 만드는데 아이들이라 그런지 일 이주일 정도만 지나면 줄줄 외우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만 네살짜리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니던 학교였는데 아침마다 학년에 관계없이 학과 공부를 시작하기 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미국이나 미국기에 관한 노래를 한 곡씩 부르는 것이 일과였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각 학년의 반마다 순서를 정해서 아이들이 직접 국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매년 2월 세째 주에는 '대통령의 날'이 제정되어 있어서 2월 한달 내내 아이들은 미국의 대통령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한다. 2월 중에 한 날을 정해 애국조회(Patriotic Assembly)라는 행사를 하는데 각 학년마다 애국심을 주제로 노래도 하고 춤도 하는 등의 작은 공연을 기획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평상시 낙천적이고 쾌활하던 각 학년 선생님들이 이날 미국을 주제로 하는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우리에 비하면 짧은 기간 동안의 식민정치시대를 보낸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서러운 일을 많이 겪지 않은 사람들인데도 매년 꼭같이 이들은 감정에 복받쳐 국기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애국가를 들으며 손수건을 적신다.
2월은 한달 내내 미국의 역사와 특별히 대통령에 관해 배우는데 재미있는 것은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들은 대통령이 되면 실질적으로 좋은 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일지에 관해 토론을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이다음에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은 참 드물었던 것같다. 대통령이라고 무조건 모든 권력을 다 가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 자리가 가지는 권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며 존경을 표시해야된다는 것을 세뇌에 가깝도록 주지시킨다.
2월의 대통령의 날이나 7월의 독립기념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빨간색, 흰색 그리고 파란색의 국기 색깔로 그림이 그려진 옷을 즐겨 입으며 미국인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미국 국기가 그려진 옷이나 액세사리는 한 두개 정도씩 가지고 있어서 나라에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마다 유니폼처럼 입고 나타난다.
내가 어려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아침마다 국기 게양식을 하고 그때마다 애국가가 흘러 나오면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낭독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국민교육헌장을 줄줄 외우지 않으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났던 시절도 있었고 길게만 느껴지던 애국가를 4절까지 외워쓰는 시험을 보던 때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마지못해 하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 아이들이 거의 세뇌에 가까운 국가교육을 받는 것을 보며 그 시절이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외우고 시험보고 고무적으로나마 한국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나이에까지도 애국가의 가사를 다 외울 수 있었을까.
미국에는 국기에 얽힌 노래도 많고 미국에 관한 노래가 감탄할 만큼 많았다. 아주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그들은 미국을 노래하는 노래가 나오면 '자랑스러운 미국인(Proud to be American)'이라 외치며 한마음이 된다. 그것이 과연 미국이라는 나라가 부유하고 무력의 힘이 강하기 때문일까. 그것만이 이들의 애국심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한국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의외로 예전에 비해서 아이들에 대한 국가교육이 많이 줄어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침조회도 TV 를 보며 하는 시대가 되어 아이들은 더이상은 펄럭이는 국기를 실제로 보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아도 되고 한국을 사랑하기 보다는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더 많아진 세상이다. 한국의 문화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외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러 세계각국으로 사람들이 떠난다. 개개인이 가지는 자존감이 모여야 한 집단의 자존감도 회복이 된다고 한다. 여러가지 마음의 상처로 인해
개인의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듯 나라의 자존감도 꼭같이 사라져가는 것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새학기를 맞아 4학년, 2학년, 1학년이 된 아이들이 때때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온다.
"엄마, 한국에는 왜 애국가 말고는 한국에 관한 노래가 많지 않아? "
"엄마, 애국가는 너무 슬픈 음조라서 슬프게 들려"
아직 서툴기만 한 한국말로도 내 부족한 영어로도 이 아이들에게 내 마음 속의 한국을 이야기 해 줄 마땅한 어휘가 모자라기만 하다. 엄마 아빠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 얼마나 슬프고 힘겨운 역사를 지나보낸 뒤에야 이렇게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그나마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는지를 미국사 못지 않게 알려 줘야 할텐데 때로는 학교도 나도 남편도 올바른 세뇌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무리 슬프게 들려도 재미없는 가사라도 단조로운 노래들이라도 그래도 할 수 없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랑해줘야 하잖아."
나의 논리 없는 대답에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도 우리집 아이들은 애국가를 4절까지 쓰고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다 외우고 음도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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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심은 세뇌에서 나온다
동경미 |
조회수 : 1,897 |
추천수 : 181
작성일 : 2009-08-21 0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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