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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 상처 많은 부모가 상처 많은 아이를 만든다

| 조회수 : 2,699 | 추천수 : 142
작성일 : 2009-08-18 02:10:56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할 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많은 것들을 가지고 온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살림 살이들이야 쓰다가 맞지 않으면 처분할 수가 있지만 마음 속에 잇는 수많은 것들은 여간해서는 처분이 되지 않고 잘못하면 대대로 물려주기까지 하니 사실은 겁나는 것들이다. 결혼한 부부가 가져오는 목록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각자의 가정에서 배운 삶의 방식이다. 그것이 옳은 것이든 버려야 할 것이든 관계없이 우리는 우리 부모의 것들을 고스란히 나의 삶으로 가져오곤 한다. 내가 가져온 우리 가정의 삶의 방식 한 자루와 남편이 보고 들은 삶의 방식 한 자루를 우리 가정 한복판에 쏟아놓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들이 서로 얽혀 얼마나 많은 악취와 새로운 상처를 생성하는가에 달려 있다. 참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부모의 긍정적이 모습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을 더 빨리 쉽게 흡수한다고 한다. 나와 남편이 쏟아놓는 대대로 내려오는 수많은 부정적 유산들을 아이들은 발견하기가 부섭게 속속들이 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까.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나는 나에게 그다지 큰 상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어려서 부모님이 헤어지시고 엄마의 재혼으로 울퉁불퉁한 시기가 있긴 했지만 그 정도 마음 고생이야 누군들 안했을가 하는 마음이었다. 그저 한국에 계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늘 죄송한 마음 그리운 마음에 눈물이 핑돌고 무언가 기쁜 일이 생기면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하는 아련한 죄책감에 가습이 아프곤 했다. 나의 그러한 마음을 효심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그것이 마음의 병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자라면서 늘 듣고 살아온 '엄마는 아무 걱정 말아라, 그저 너만 잘 되면 엄마 인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엄마는 그저 너만 보고 산다' 라는 얘기도 너무나 당연한 얘기로 들으며 나는 꼭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딸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심어놓고 있었다. 어쩌다 한번 한국에 나가 친정 나들이를 하고 공항에서 헤어지려면 마치 엄마를 사지에 두고 나만 잘 살아보겠다고 떠나는 못된 딸이 된 것마냥 서럽게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집에 돌아왔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나도 비로소 엄마라는 옷에 익숙해져가면서 나의 모습이 참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 나들이 후유증으로 어느 날인가 아침에 엄마 생각에 눈물을 삼키고 있는데 유치원에 다니던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또 슬퍼? 엄마 할머니 생각나서 울어? 엄마 할머니한테 가고 싶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는 아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엄마 울지마. 엄마가 우니까 나도 슬퍼지려고 해. 엄마 할머니한테 갈거야?" 어느새 아이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도는 게 보였다. 내리 사랑이라 했던가. 방금 전까지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리던 나는 정신이 번쩍 나는 것같았다. 공항에서 헤어지며 울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훌쩍거리던 나를 아이는 놓치지 않고 다 보고 있었나 보다.
"아니야. 엄마 안 울어. 엄마 괜찮아." 아이를 감싸 안으며 나는 결심을 했다. 내가 엄마구나. 우리 엄마를 그리며 눈물 지을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하는 엄마구나. 나 슬프다고 애들 눈에서도 눈물 흘리게 하면 안 되겠구나. 내 딸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내 딸들이 나처럼 엄마가 그리워 눈물 짓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목에 넘어가질 않고 제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발 한 쪽은 늘 친정에 걸치고 살아가길 바라는가, 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해보니까 앞이 깜깜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아무래도 괜찮아. 너 위해서 엄마는 찢기워도 괜찮아. 다 참을 수 있어'라는 메세지처럼 나의 발목을 옭아매고 늘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게 하는 주문도 없었다. 엄마의 진심은 전혀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고 옛날 엄마들은 다 그랬지만, 나는 늘 엄마의 인생이 나때문에 더 힘들다는 자책 속에 살았던 것같다. 내가 없었다면 아무 딸린 것 없이 훨훨 날을 수 있었을 엄마의 인생이 나라는 혹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나를 더 갑갑하게 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을 엄마에게 드러낼 수도 없는 것이어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놓고 날마다 꺼내어 아파했었다.

남편은 남편 대로 4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고만고만한 4 남매를 키우신 가정에서 자라났다. 사업 수완이 좋으신 어머니 덕택에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아버지의 빈 자리는 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한다. 출근하실 때마다 100원 짜리를 하나씩 주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 병원으로 실려가시고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생활을 위해 일을 나가시고 8살, 11살, 13살 짜리 형 누나들이 다 학교에 가고 나면 하루 종일 집에서 사람 구경도 못하고 이제나 저제나 가족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보낸 시간들이 남편의 마음에 아픈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 계신 집을 놀러가면 그게 그렇게 부럽고 안타까웠다는 남편이었기에 결혼 초 나는 남편이 정말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기르게 되는 것이 현실인지라 아버지의 존재와 역할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남편은 오랜 시간을 힘들어했다. 나의 상처가 다 치유되어야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기는 했지만 우선 좋은 아빠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한데 내 마음은 조급했고 더구나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나로서는 남편이 아이들과 좀 더 밀접하게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아버지를 건강하게 경험하지 못한 나와 남편이 생각하는 좋은 아버지란 언제나 아이들을 다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감싸주고 늘 시간을 내어 놀아주고 아이들이 어떻게 해도 짜증내지 않고 아내도 끔찍히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현실에서 아버지란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이곳 저곳에서 줏어듣고 본 것들에 각자의 바램까지 다 섞어서 만들어 낸 이미지였다. 좋은 엄마는 늘 웃어주고 언제라도 안길 수 있게 넉넉한 마음이고 칭찬만 해주고 웬만한 일에는 화도 잘 안내고 주로 집에 있고 언제라도 말만 하면 맛있는 것을 뚝딱 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대체로 슬퍼보이던 나의 엄마와 반대로 가려는 마음에서 생겨난 거의 동화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막상 아이들이 생겨나고 그것도 넷이나 되면서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를 내고 야단치는 것은 물론이었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욕구가 울컥 을컥 솟구치고 엄마 아빠가 된 것이 기쁜 것은 잠깐 잠깐이고 왜 이랬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부엌 일이 싫어지는 것은 한도 끝도 없는 나와 남편을 보면서 우리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뼛속 깊이 들었다. 잘 할 수 없어도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부모라는 역할인데 그보다는 서로를 비난하고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때가 점점 늘어났다.  

우리 부부가 날마다 순간순간 휘청거리고 주저앉고 싶은 것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매 시기마다 넘어야 할 장애물들은 감당이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제대로 가르치고 책임질 수 없다면 괜히 많이 낳았나 라는 자책감이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 밀고 올라왔다. 남편은 남편 대로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이라면 뭔가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나중에 고백한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결혼 자체가 흔들리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간이었던 것같다.

그때 그 아픔 속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 부부가 아픈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겉으로 보면 멀쩡하고 바깥에서는 일도 잘하고 유능하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인생 그 자체를 살아나가는 데에는 모르는 기술, 아직 한번도 배워보지도 못한 미개척지의 기술들이 너무나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법, 아이를 사랑하는 법, 사랑을 표현하는 법, 나 혼자 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기술, 상대가 힘들어 할 때 진심으로 걱정한다고 느껴지게 하는 기술,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는 법...정말 한도 끝도 없어 보이는 리스트를 보며 이제라도 하나 하나 걸음마를 배우듯이 배워나가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도 다 우리처럼 비틀거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더이상 기저귀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즈음에야 깨달은 생각이었다.  

치열하게 싸우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이리 저리 해보겠다고 발버둥쳐왔지만 결혼 16 년을 우리 부부는 좌충우돌하며 무엇 하나 잘 세우지 못한 것같다. 엄마 아빠가 그 긴 세월을 온갖 시행착오를 다 겪으며 키우느라 아이들은 저희들 나름대로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롤러코우스터를 타는 것처럼 높낮이를 지나며 무슨 생각들이 생겨났을까. 되레 열어보기도 겁이 나는 아이들의 마음이 예고없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때가 있곤 한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거 안 보여주려고 하는데도 보여지는 게 있어서 미안해. 속상했지?"
"속은 상했는데 괜찮아요. 그래도 엄마 아빠는 결혼을 잘 유지하고 있는 거잖아요. 정말 심각한 사람들은 아예 안 싸운대요. 그러다가 몇 년 있으면 이혼하고..." 큰 아이의 말이다. 이혼률이 높아져서 한 반에 절 반 정도 이혼가정이다 보니 제 눈에는 엄마 아빠가 조금 나아보이나 보다.

한 번은 아이들과 이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게 되었다. 워낙 이혼 가정들이 많고 이제는 학교에서도 그런 가정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풍조이다 보니 아이들이 그것을 결혼의 모습으로 보게 될 것이 겁이 나서 생각을 알아보려고 물어보았다.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어떤 걸까?"
"정 모든 걸 다 시도해봐도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아 봐야 할 것같아요."
"그래? 노력하면 잘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어느 정도의 문제는 같이 상담도 다니고 노력하고 대화도 하고 이혼 안하려는 마음 가짐으로 해결책을 찾다 보면 조금씩 해결이 되는 게 부부 문제 인 것같아요. 이혼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게 되어 있어요."
이제 열 네 살인데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사십 대처럼 얘기하는 둘째 딸이다.
"엄마 아빠도 싸우긴 하지만 화해하고 또 해결하고 그랬잖아요.옛날에는 엄마 아빠가 다투면 친구들 집처럼 이혼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아무리 싸워도 엄마 아빠는 절대 이혼하는 것이 아니고 또 금방 해결책을 찾을 거라는 걸 알아요" 세째가 덧붙인다.
어른들은 16년이 지났어도 아직 생각도 못한 결혼의 원리를 우리 아이들은 혼란 속에서도 알아가고 있나 보다.

마음의 상처는 단번에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 동안 상담을 받는다고 씻은 듯이 낫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상처가 쌓여있고 그 상처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취가 나서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또 상처를 주고 물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절만 이상은 해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나와 남편의 이런 저런 상처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만큼 남아있지만 우리가 아픈 사람들이라는 것을 뼈아프게 인정하면서 우리 가정은 새로운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 때때로 다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나 미처 알지 못하던 새로운 상처들이 새로 불거져 나와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제자리절음만도 못한 뒷걸음질을 시키기도 하지만 그래도 평생 모르고 상처쟁이로 살다 갈 수도 있었을 우리들의 인생이 그래도 제대로 눈이 떠진 상태로 갈 수 있게 됨을 감사한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소아
    '09.8.22 4:09 AM

    아직 어린 아이들이 어른보다 지혜롭다는 것을, 가끔씩 깜짝 놀라며 발견할 때가 있지요.

  • 2. 바람소리
    '09.8.23 1:27 PM

    게시판으로 퍼갈께요. 죄송~

  • 3. 82cook
    '09.10.19 7:50 PM

    82cook 관리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글이라서 글 제목에 ★표 붙여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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