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거나, 성가시게 굴거나, 반항할 때 강하게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충동은 아이의 행동과는 상관없고, 부모가 느끼는 피곤과 스트레스 정도, 불안이나 불행과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를 때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낸다. 반면 불행하게도 자제를 못 하는 부모들도 많다.
아이의 신체를 학대하는 부모를 보면 학대를 일삼은 집에서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릴 때 경험하고 학습한 것들을 어른이 되어서 자식들에게 직접 되풀이하는 것이다. 결국 학대하는 사람이 역할 모델이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러 문제, 특히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배워둔 유일한 방법이 학대다.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무력감과 상당한 감정 결핍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성인기로 접어든다. 감정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어린아이인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대리 부모로 착각하고, 실제 부모가 결코 채워주지 못했던 감정적 욕구를 충족하려 든다. 그러다 자식이 자신들의 욕구에 미치치 못하면 욕을 퍼붓고, 화를 낸다. 그 순간, 어린 자식은 더 이상 자녀가 아니다. 왜냐하면 가해자인 부모가 진정으로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은 가해자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언제 불같이 화를 낼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며 유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아버지로부터 상처 받고 배신당했다는, 평생토록 지속되는 강력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사람을 믿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두 번의 결혼도 실패로 끝났다. 집을 떠나거나 결혼을 한다고 해서 사라질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짓밟히고 나면 신뢰와 안도감을 회복하기가 너무나도 힘들다. 우리는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자신과 부모의 관계를 기초로 해서 예측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권리와 감정을 존중해주는 그런 관계였다면, 남들도 우리에게 그런 방법으로 잘해줄 거라고 기대하면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긍정적인 기대가 지나치면 나중에 인간관계가 너무 개방적이 되어 쉽게 상처 받기도 한다. 하지만 조와 같이 끝없는 불안과 긴장, 그리고 고통이 연속되는 유년기를 보낸다면 남들과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기대와 경직된 방어 의식만 발달한다. 가해자들은 자식이 자기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때리고 나서 이해해달라고 빌며 용서를 구한다.
케이트의 아버지는 너무 어려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부적절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린 딸이 감정적으로 자신을 돌봐주기 바랐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 반전은 케이트를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는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다시 말해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때리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들은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다른 식구들이나 친구와의 갈등 혹은 불만족한 삶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분출하는 수단으로 어린 아이에게 신체적 폭력을 휘두를 수가 있다. 이때 어린 아이는 너무도 쉽게 피해 대상이 된다. 반항할 수도 없고,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가해자가 위안을 얻는 것도 그때뿐, 분노를 일으키는 원천은 여전히 남아 있고, 변하지도 않기 때문에 다시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슬프게도 희생당한 아이는 그 분노를 흡수해 성인기까지 갖고 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자녀에게 이득이 되게 하려고 그랬다는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가해자들도 있다. 이런 부모들은 사람은 악한 마음을 타고난다고 믿고, 가혹하게 매를 들어야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어린 아이를 더 끈질기게, 혹은 강하게 만들려면 매를 들어야 한다고 변명하는 부모도 있다. 조의 아버지도 그랬다. 하지만 매질은 조를 더 담대하고 덜 나약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세상을 두려워하고 불신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심하게 체벌하는 게 옳다고 믿는 것은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매질은 단지 일시적으로 아이들을 저지할 뿐, 아이들에게 심한 분노와 복수심, 그리고 자기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신체적인 학대로 인한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손상은 일시적인 이점은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까지는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에만 초점을 맞추었지만 책임져야할 사람이 더 있다. 배우자가 자식을 학대하게 놔두는 부모다. 가만 있는 이유는 자신의 공포 때문에 생긴 의존심 또는 가정을 유지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이런 부모는 소극적인 가해자다. 나는 조에게 매를 맞는 동안 어머니는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조의 어머니는 직접 자식을 때리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잔인한 남편으로부터 자식을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대에 동조한 셈이다. 자녀를 보호하는 대신 그녀 자신이 놀란 어린아이가 되었고, 남편의 폭력 앞에서 절망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했다. 아들을 내팽개친 것이다. 조는 소외되고 보호 받지 못한다고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먼저 절망감에 압도당해 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부모는 자신이 학대에 공모했다는 사실을 쉽게 부정하려 든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 때문에 학대를 받은 어린아이로 하여금 양쪽 부모 모두가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사실을 부정하도록 만든다.
케이트와 조의 사례에서 아버지는 적극적인 가해자였고, 어머니는 가해자를 묵인한 공모자였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적극적인 가해자이고, 아버지가 소극적인 가해자인 경우도 있다. 성은 바뀔 수 있지만, 소극적인 가해자가 하는 역할은 똑같다. 양쪽 부모 모두가 가해자인 경우도 있지만, 한 사람은 적극적인 가해자이고 다른 사람은 소극적인 가해자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매 맞는 아이들도 폭언을 당하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가해지고 있는 폭력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에게는 일찍부터 자기 비난의 씨앗이 뿌려졌다.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너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어린아이가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학대 받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조 역시 두 가지 거짓말을 믿었다. 잘못한 것은 조 자신이고, 조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맞았다는 것이다. 강력하고 전지전능한 아버지가 한 거짓말이기 때문에 아이로서는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거짓말은 어린 시절에 매를 맞으며 자란 성인들의 가슴속에 변하지 않고 영원히 남는다.
" 저는 제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아무하고도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저를 진실로 돌봐준다는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
케이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낮은 자존감은 곧 자기 혐오감으로 발전되며, 온전하지 못한 대인관계, 자긍심 상실, 무력한 느낌,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는 공포심과 이유가 불분명한 분노 등의 문제를 발생시켜 삶을 망가뜨린다. 케이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사는 동안 저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을 안 한 것도, 좋은 대인관계를 맺지 못한 것도, 성공하지 않은 것도 다 그래서에요. "
케이트가 장성했을 때 신체적 학대는 끝났다. 하지만 자기비하를 통한 감정적 학대는 계속되었다. 그녀 스스로 가해자가 된 것이다. 학대 받는 어린이들은 고통과 쾌감이 뒤섞이는 경험을 한다. 조는 온화한 순간과 공포가 공존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대와 사랑이 뒤섞여 있는 그런 말은 조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진실과 직면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조에게 부모가 자식을 나쁘게 대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심각한 융합현상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어린아이의 세계는 매우 좁은데다 아무리 부모가 학대를 한다고 해도 아이에게 부모란 존재는 여전히 사랑과 편안함을 주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 맞는 아이는 부모로부터 사랑 받을 자격을 주는 성배를 찾아 헤매는 데 자신의 유년기를 다 보낸다. 이는 성인기까지 계속된다.
가족의 비밀'은 학대 받는 아이에게는 큰 짐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맞고 산다는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감정적으로 도움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 케이트는 어른으로서 진심으로 부모와 대면하려고 울부짖었지만 내면에 살고 있는, 매 맞고 놀란 어린아이는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면 모두 그녀를 증오할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녀와 부모의 관계는 몸짓으로 알아맞히는 놀이처럼 되어갔다. 그리고 식구들 모두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가만있었다. 나는 고교 동창생들이 케이트의 집안이 훌륭한 집안인 줄 알았다고 하는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많은 학대 가정이 겉으로 봐서는 아주 정상적인 가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바로 이것이 '가족 신화'의 기초가 된다.
매 맞고 학대 당하는 어린 아이들의 가슴 속에는 분노의 냄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 누구도 이 분노를 비난해선 안 된다. 매를 맞는데 누군들 화나지 않을 것이며, 굴욕스럽지 않을 것이며, 자존심 상하지 않을 것이며, 고통에 울부짖지 않겠는가?
문제는 매 맞는 어린 아이들이 그 엄청난 분노를 정상적으로 표출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는 성인이 된 후에도 해결하기 어렵다. 억압된 분노는 대개 구타나 강간, 살인 같은 폭력적인 범죄 행위로 나타난다. 감옥은 어린 시절 신체적으로 학대 받은 분노를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어른들로 가득하다.
케이트는 어릴 때부터 맞고 자라면서 그 상황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거나 피해를 당하지 않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몸에 이상을 일으켜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고통을 지속시켰다. 엄청나게 쌓인 분노를 풀 배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자 신체가 그녀를 대신해 두통과 위통, 그리고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와 매 맞는 자신을 동일시하는 아이들도 있다. 가해자와 똑같은 특성을 갖게 되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갖는 것이다. 가해자인 부모는 강력하고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적 자기 방어로서, 정신적으로 병든 부모가 갖고 있는 특성, 즉 자신이 가장 증오해온 바로 그 성향들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부모를 닮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는데도 가해자와 아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독이 되는 부모] p.141~158
[출처]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와 매 맞는 아이들|작성자 면어때
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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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아이와 부모의 심리
찬이맘 |
조회수 : 3,577 |
추천수 : 90
작성일 : 2009-06-10 00: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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