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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교장선생님은 ‘땜빵용’ 교사?

| 조회수 : 1,648 | 추천수 : 102
작성일 : 2009-05-07 18:31:00

“엄마, 어제 우리 반 아이들 둘이 싸우다가 교장선생님한테 불려갔는데, 두 시간 동안이나 집에도 못가고 붙잡혀서 혼나고, 반성문까지 써오라고 했데.”
“뭐! 말썽피우는 아이까지 교장선생님이 벌주는 거야?”
“몰랐어? 수업시간에 떠들고 말 안 들으면 무조건 교장실 행이야.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한마디가 바로 ‘너 교장실 가고 싶어?’라는 말이야.”
“그런데 독일 아이들도 교장선생님 무서워 하기는 하니?”
“정당한 이유 없이 대들다가는 퇴학감인데 그럼 당연히 무서워하지.”

저녁시간 큰아이와 수다를 떨다가 독일 학생들도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교장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근엄한 교장선생님이 아니라 각 반에서 사소한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들까지 모두 상대해야 하는 뭔가 좀 허접한 좀생원이라는 느낌이 들어 약간 실망했다.

교장선생님이라면 왠지 학교가 뒤집어질 정도로 큰 사건이라도 일어났다면 모를까 수업시간에 떠든 아이들이나 훈계하는 그런 역할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뒷짐 지고 느릿느릿 복도를 걸어가면서 ‘흐흠!’ 헛기침만 해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분이 바로 교장선생님인데 ‘허구한 날 아이들 벌주는 일이나 한다고?’라고 생각하니 좀 우습기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한국 교장선생님 생각이 났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한국의 교육 풍토, 그 높은 벽을 무너뜨리기란 옛날도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보수와 권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선생님들이다. 그것도 교장 선생님.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7,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의 위치란 감히 학교 내에서 누구도 똑바로 바라 볼 수 없는 높은 분이었다. 학생들과 교장 선생님과의 만남은 월요일 조회시간에 운동장에서 한 번 목소리 듣는 것이 고작이었고, 나머지는 가끔 수업시간에 감시라도 하듯 복도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독일사회에서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종종 한국과 독일 선생님을 비교하게 된다. 특히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교장선생님이었다. 처음으로 독일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지금 10학년인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학교를 방문한 첫 날, 서무실에서 원서를 접수하려고 하는 데 50대 중반의 서무과 직원이 직접 서류를 써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접수가 거의 끝났을 때, 그 분이 교장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서무과의 담당 직원이 아파서 결근을 했기 때문에 대신 입학 안내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독일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다른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담당 과목 정규수업은 물론, 교사들이 결강하면 보강수업에도 들어가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학교 행정을 책임을 져야 한다.  행사라도 있게 되면 직접 발로 뛰면서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 하고, 또 문제 학생을 선도하는 것까지 교장선생님의 몫이다 보니 몸이 열이라도 모자랄 정도다.

교장이 학교 행정을 겸하다 보니 당연히 평교사 보다 수업일수는 적다. 그러나 그 때문에 결원만 발생하면 소위 ‘땜빵용’ 교사 역할은 가장 많이 해야 하는 것 같다. 지난 학기 우리 작은 아이 담임선생님이 임신으로 잦을 결근을 일삼을 때도 그나마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동분서주 하면서도 빈 시간을 채워주었던 이 학교 교장선생님 덕이었다.

또 모든 교사들이 골치 아픈 일은 모두 교장에게 떠밀어 버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어떤 아이가 교사에게 대든 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말썽을 피우면 무조건 교장에게 보낸다.  

만일 아이들끼리 싸우다가 다쳐서 한쪽 부모 측에서 항의나 고소라도 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러면 일일이 두 학생의 부모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중재해야 한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김나지움은 한 반에 약 35명 정도의 학생들이 한 학년에 다섯 반 혹은 여섯 반으로 나뉘어져 있다. 5학년부터 13학년까지 계산하면 약2000명 정도의 학생이 다니고 있으니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좀 많겠는가.

한국과 독일 사회의 다른 점 중 하나는 직장에서의 지위에 관한 인식이다. 한국에서 승진이란 통제와 결정권이 보다 광범위 해 지고 책임이 더 무거워진다는 의미와 같다. 육체적인 일 보다는 정신적인 노동이 점점 더 늘어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독일 사회의 라이터라고 하는 책임자의 의미는 선임자로써의 권한과 함께 자기 아래 있는 모든 직원들의 일을 대신 해 낼 수 있어야 하고, 뒤치다꺼리까지 해야만 한다. 월급을 많이 주는 만큼 철저하게 부려먹는 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적인 혹사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부하직원의 몇 배는 해내야만 하는 것이 라이터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교장의 업무가 많다는 것은 보수와 권위 이전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선 서무과에 직원이 많이 필요 없다. 2000여 명의 학생을 관리하는 서무과에 교장과 직원 두 명이 전부다.

또한 작은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한 사람의 서무과 직원이 두 학교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약속을 하고 찾아가지 않으면 쉽게 만날 수도 없다. 당연히 직원이 없는 시간 일은 교장의 몫이다. 또한 담당과목을 책임지고 있어 교사 한 사람 몫은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경제 원리이기도 하다.

교장이 이렇게 바쁘기 때문에 평교사들은 자신의 본분인 가르치는 일에만 충실할 수 있는 것 같다. 월급봉투의 두께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발로 뛰는 교사가 바로 독일 교장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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