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전화가 따르릉 울립니다.
우리집 전화기는 발신자 번호가 뜨지않는 구형전화기 인지라...
전화를 받아봐야 누가 누군지 그제서야 알지요.
한창 바쁘게 부엌에서 저녁 식재료를 손질 하고 있던 중이였던지라,
제 방안에서 시험공부 중이던 예인이가 거실로 나와서
전화를 받았어요.
'누구세요? 앗~ 할아버지~~'
반가워하는 손녀딸의 목소리가 집안에 크게 울립니다.
아주 잠깐,통화를 하고는 바로 끊고서는
제 방으로 돌아 가지 않고 현관쪽으로 나가길래,
무슨일이냐고 물어보니...
우리 아파트 앞에 할아버지가 와 계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잠시만 내려오라 하신다고...
급하게 예인이와 같이 아래 1층으로 내려가보니
아버님이 반갑게 인사 하시며
손에 들고 계신 검은 봉다리 하나를 건네 주시네요.
우리 시아버님은 이것저것 몇가지 채소들을
조그마한 텃밭에서 직접 길러 드시는데...
오늘 시금치가 아주 싱싱하니 좋았나 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좀 갖다 주시려고
일부러 이렇게 검은 봉지 가득 담아서는
이 봉지를 들고서 우리 아파트가 있는 쪽으로 등산을 하시고는...
지금 하산하시면서 잠시 우리집에 들러서
이 봉지를 건네주시고 돌아가시려고 오신거지요...^^
봉지만 건네주시고 바로 그냥 돌아가신다는데
억지로 올라오시게 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저녁밥이 지어지니 찬은 별로 없어도 드시고 가시라 하니,
끝까지 그냥 가신다고 하시네요.
오래 계시지도 않고, 아주 잠시 동안...
시원한 포도쥬스 한 잔에 호두과자만 조금 드시고는
다시 집 쪽으로 걸어서 돌아가셨답니다.
일부러 운동하시느라 산을 넘어 등산코스로 오셨지만...
사실 평지로 걸어가자면
시댁과 우리집의 거리는 아주 가깝지요.
택시를 타면 아마 기본요금 정도일껍니다.
사실 엊저녁은 해야 할 일들이 하도 많았던지라,
저녁을 얼른 간단하게 지어 먹고 난 다음
다른 것 새로 정리할 엄두도 못내어서
이 봉지채로 얌전하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바로 오늘 새벽.
일찌감치 다시 봉지를 꺼내어서
아침밥을 차리기 전에
시아버님이 주신 귀한 식재료를 손질 해 봅니다.
신문지 한 장을 넓게 펼치고...
그 위에 아버님이 주신 시금치 담긴 봉지를 올려 봅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봉지 하나 참 쉽게 쓰고 버리고 하지만...
우리 아버님처럼 나이드신 부모님 세대의 어른신들 께서는
이렇게 봉지가 꼬질꼬질하게 구겨지도록
한번 두번 세번...몇번 씩이라도
아래에 구멍이 나서 못 쓰게 될 때까지 돌려서 사용하시고는
깨끗하게 털어 두었다가 이 다음에 또 사용하고 하시지요.
봉지에서 시금치를 꺼내보니
이렇게 한 가득이예요.
그것도....미리 다 손질까지 해 오셨네요.
시아버님께 고마운 마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요.
그리고 시금치만 주신 줄 알았더니,
봉지 아래에는 또 직접 길러 드시는 상추까지 제법 묵직하게 모아서는
이렇게 pp밴드로 묶어서
한 묶음을 또 넣어 주셨네요.
이렇게 말이지요.
이런식으로 시금치를 거진 모두 다 흙묻은 뿌리 말끔히 도려내시고,
또 먹기 좋게 어지간한것은 다 갈라 놓으셔서...
추가로 손질 할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예요.
시금치가 몇 줄기 빼고는 거진 다 손질이 되어 있으니...
상추랑 시금치 손질하는데 5분이나 걸렸을까요.
정말 수월하게 일을 마쳤어요.
상추 크기가 작아서 밖에서 사 먹는 상추들보다 씻기는 좀 번거로와도
억센부분 없이 줄기쪽은 그냥 아삭거리고 이파리도 얼마나 보드랍던지...
즐거운 맘으로 한장한장 정성스럽게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이 상추는 물기 쪽 뺀 다음에,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저녁에 고등어 지져서 쌈 싸 먹으려 하고요.
시금치도 깨끗하게 씻어 놓았어요.
이제는 모든 준비 완료.
냄비에 물 넉넉하게 받아 올려서 팔팔 끓을 적에
이제 곧바로 슬쩍 데쳐내기만 하면 되지요.
큼직한 냄비 꺼내어 물도 넉넉히 채워서
물이 팔팔 끓을 적에,
깨끗하게 초벌로 씻어 놓은 시금치를 넣고는
뻣뻣하게 설 익거나, 너무 무르지 않게
알맞게 파랗게 데쳐냅니다.
이렇게 몇번을 다시 깨끗하게 찬물에 헹궈 씻어서
흙 찌꺼기나 다른 더러운 것이 남아있지 않고 말끔하게 씻겨 나가도록 해서는
양 손으로 꼭 물기를 짜 주었답니다.
시금치 양이 워낙 많으니...
이렇게 데쳐낸 시금치 양을 반으로 똑 나누어서
반은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잡채 만드는 데 넣으면 좋을 것 같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
나머지 반은 오늘 아침에 방금 손질하고 데쳐낸 이 신선한 시금치 듬뿍 넣고
맛있게 김밥을 말아보려고요.
오늘 김밥 속재료는 모두 6가지.
김치냉장고안에 늘 넉넉하게 대용량을 갈무리해서 넣어두고는
매번 김밥 말 때마다 필요한만큼 꺼내쓰는
김밥용 단무지도 10줄 꺼내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우엉볶음도 꺼냈지요.
이 우엉볶음은 반찬으로 먹으려고 엊저녁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김밥에 우엉채 볶은 것까지 넣으면 그 식감도 맛도 배로 좋아지게 되니...
반찬으로 만들어 놓은것을
이렇게 김밥 속재료로 또 쓰게 됩니다.
우엉 볶을적에 호두도 넉넉하게 넣어서 만들어 두었기에
양념도 건더기도 아주 고소해서
이 호두우엉볶음도 평소에 가족들이 다 잘 먹고 좋아하는 밑반찬 중 한가지지요.
당근은 적당하게 얇은 두께로 썰어서 약하게 간 해서 볶아 놓고,
당근 볶아내고 넉넉하게 남은 기름을 그대로 이용해서 계란말이도 부쳐 놓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핫도그용 소시지도 꺼내어서
팔팔 끓는 물에 충분히 삶아내듯이 익혀서는
이렇게 적당하게 칼로 썰어서 준비를 해 두고요.
좀전에 데쳐서 물기 꼭 짠 다음,
참기름,소금 약간에 심심하게 무친 시금치도 그릇에 넉넉하게 담아서
이제 바로 김밥 속으로 쓸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지요.
이렇게 해서 김밥 만들 준비가 다 된 거지요.
이제 돌돌 말아내기만 하면 되니,
한 줄, 또 한 줄 말다보면
김밥 만들기는 금방입니다.
편하게 새 신문지 깨끗한 것으로 하나 다시 깔아 놓고
마찬가지로 부엌 바닥에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김밥을 말아 봅니다.
김발 위에 김밥김 거친면으로 펼쳐놓고
김 윗 부분은 적당하게 비워두고
이렇게 밥알을 골고루 납작납작 펴서 붙인 다음,
6가지 김밥 속 재료는 밥 펼쳐놓은 부분 가운데 즈음에
골고루 푸짐하게 얹어 냅니다.
김밥 얇게 싸려면 밥도 얇게 펼치고
김밥 재료도 조금만 넣으면
김밥집에서 파는 것처럼 제법 날씬한 김밥이 나오지만,
집에서 마는 엄마표 김밥은
우리 아이들 이야기처럼 보통은 좀 뚱뚱한 김밥이 됩니다.
엄마들 마음이야 늘 똑같지요.
좋은 것을 조금이라도 좀 더 푸짐하게 담아서
가족들 입에 넣어주고 싶으니까요.
야무지게 힘을 줘가며 또르르 말아내는 김밥 한 줄.
어릴적에는 아예 이 김밥을 썰지도 않고서
손에 김밥 한 줄을 통째로 쥐고서 먹기도 했었어요.
지금은 중학생이니 공부하고 친구도 만나고 하면서...
늘 제가 좋아하는 관심분야를 즐기면서
인생의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절을 살고 있는 우리 예인이.
지금이야 뭣도 모르고,
학교 공부로 한창 힘들어 하면서도 철없이 그저 좋을 때지만
훗 날, 부엌에서 스스로 김밥을 말아내야 하는 때가 왔을 때.
예전에 엄마가 남겨 놓은 이런 일상의 기록을 들춰 보고
참고로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도
일부러 이렇게 또 남기게 됩니다.
처음부터 도르륵 김밥을 온전히 예쁘게 잘 싸기란
누구에게나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일테니까요.
딸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바로 곁에 있어줄수만 있다면 가장 좋을테지만...
살아보니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1분 후의 일을 예측할 수 없음을
늘 느끼고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내 마음으로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를 늘 생각하며 그리워 하는 그 마음의 깊이만큼,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도 자꾸만 한번 더 남기게 되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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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줄 말았으니...
이제 거진 다 말았네요.
오늘 아침에는 김밥 열 줄을 만들어서
다섯줄은 아침상에 올려서 뜨끈한 찌개와 같이 먹고,
나머지 다섯줄은 시댁에 싸 드리려고 합니다.
아버님이 가져다 주신 이 시금치 듬뿍 넣어서 싼 김밥...
신선한 시금치 나물향이 느껴져서 얼마나 맛있는지
아버님께도 맛을 보여 드려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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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집의 오늘 아침은,
이렇게 김밥을 상에 올려서
정말 간단하게 차려서 먹었답니다.
목이 메이니 김치찌개 뚝배기 하나 보글보글 같이 끓여서
김밥과 같이 곁들여서 먹고요.
맨밥이야 이런저런 반찬이 골고루 곁들여져야
영양면에서나 먹는 맛도 더 하지만..
김밥은 그 자체로도 속재료에 따라서
맛과 영양면까지도 어느 정도 다 충족이 되니...
정말 따끈한 국물 한가지에 김치 딱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것 같아요.
국물과 김치를 하나로 해서 이렇게 김치찌개로 만들어 내면 더 편하고요.
김밥을 아침상에 낼 적에 괜시리 다른 반찬은 곁들여 내 보았자,
젓가락이 가지도 않지요.
그러니 아침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몇가지 찬거리 만들어 내는 시간이나,
아니면 이렇게 몇가지 속재료들 준비해서 김밥 넉넉하게 말아 내는 시간이나,
거의 비슷비슷합니다.
그러니, 우리집에서는 도시락 쌀 일이 있는 날이 아니라도
이렇게 일상의 아침식사로
그때그때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간단한 속재료만 가지고
김밥을 자주 쌉니다.
적어도 열 줄 정도 해서 좀 넉넉하게 싸 두었다가,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한줄 두줄 썰어주면
또 얼마나 맛있게 잘 먹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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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통을 2개 꺼내어서
두 분이서 드시기 편하도록 따로따로 이렇게 김밥을 담았답니다.
5줄을 나누어 한 통에 2줄 이상은 들어갔으니...
이 정도 양이면 아마 점심으로 가볍게 한 끼 드시기에
부족하지는 않을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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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이렇게 타파통 뚜껑 꼭 덮어서,
학교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가는길에 잠시 시댁에 들러서 김밥 좀 가져다 드리라고 부탁을 했지요.
점심 때 꺼내어서,
두 분이서 한 통씩 맛있게 드시라고요.
시아버님께서 직접 길러내신 시금치를 듬뿍 넣어서 만든 김밥인지라...
그저 별거 아닌 김밥이라도
두 분 모두 맛있게 드셨으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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