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결혼 초에는 명절 스트레스가 엄청 나서 들어있는 달 내내 맘이 편치 않았는데,
이제는 은근 즐기기도 한다는.
뭐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고 지금 손목, 어깨. 허벅지 통증이 '명절 그저께 지났소'를
아주 지대 각인시켜 주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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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시댁 명절 풍광은 지난 추석 때 낱낱이 고해 받쳤죠? 늘 똑같아요. 저 체반까지.
어라? 그런데, 왜 이번엔 네광주리 밖에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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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체반 하나를 잃어 버리셨는지 보이지 않아서 동그랑땡과 깻잎전을 삼단으로
쌓았어요. 나란히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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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도 나란히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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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나란히 나란히~~ 이쯤 되면 제가 장장 8시간의 전 부치기 노동을 은근 즐기고
있다는 거 눈치 채셨죠? 결혼 초에는 후딱 하고 끝내려고 서둘렀는데, 그게 몸이 더
힘들어요. 좁은 공간에서 빨리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근육 경직도 더 심해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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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모양 맞춰 가며 차곡 차곡 쌓아가는 재미도 있거든요.
집에서 튀김할 때는 얼음물이다, 맥주다 바삭 하게 하기 위해 쌩쇼를 하지만 한꺼번에
많이 튀겨야 하는 명절에는 그런 정성, 엄두도 못내요.
그래도, 튀김이 식으면 눅눅해지는 게 영 맘에 걸리더라구요. 포장마차에서 파는 건
오래 놔둬도 단단하고 다시 튀기면 파삭 하잖아요. 그래서 자주 가는 회사 옆 떡볶이
아줌마께 비법을 여쭤 봤어요. 너무 높지 않은 기름 온도에서 오래도록 튀기라시더군요.
해봤는데, 진짜 파삭. 식은 튀김을 뎁히니까 여전히 파삭 거려요. 대만족.
시간이 두배로 오래 걸리는데다 기름기를 많이 먹는 것 같아 걱정은 좀 되지만,
그래도 식어서 전인지 튀김인지 구분이 안가는 상태 보다는 훨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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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어머님이 총각김치 한통, 김장김치 한통을 주셨어요.
우리 어머님은요 제가 82cook 고수님들께까지 칭찬 받는 만년전 초보라는 걸 모르세요.
그냥 항상 철없는 초보 주부인 줄 아시고, 맞벌이 하느라 굶고 다니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
주말 마다 밥공장 차리는 걸 모르시고. 흐흐.
제가 지금은 명절에 시댁 가는 걸 오히려 즐길 만큼 내공도 깊어졌고, 어머님과의 관계도
돈독해졌지만, 결혼 초에는... 정말 이렇게까지 회복 될거라는 거 상상도 못할 정도였어요.
고부 관계 회복 카운셀링 해도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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쨘~ 저의 전리품입니다. 울 시엄니 이렇게 바리 바리 싸주시는 거 넘 좋아하세요.
것도 딸 보다 며느리들 부터 먼저 챙기세요.
결혼하고 너무 힘들어 어디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지 몰라 기도원을 찾아 금식기도를
드린 적이 있어요. 어머님은 무섭기만 하고, 어떻게든 내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겠더라구요. 3일 째 되던 날 몸의 기력이 있는 대로 빠져, 설교 말씀도 제대로 안
들어 오는데, 아주 명료한 한 마디가 맑은 종처럼 귓가를 울리더라구요.
'세상을 바꾸는 건 힘들다. 하지만, 나를 바꾸는 건 쉽다.
그리고, 나를 바꾸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고, 어느새 세상도 바뀌어 있다.'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희망이 보이더군요. 동치미 국물 1.5리터를 한꺼번에 들이키고
방에 들어가 쓰러져 잤어요.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3일을 굶었는데도, 몸이 어찌나
개운하던지. 이제 부터 모든 걸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 보자 결심했죠.
(이건 다른 말인데, 위장 장애 있으신 분들 금식 한번 해보세요. 마지막날 동치미
국물 마셔주면 장 청소도 되고, 위도 튼튼해져요. 건강을 이유로 금식 기도원을
찾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전 그런데, 진짜 무모한가봐요. 금식 후 첫 식사하러 식당에
갔다가, 옆 사람이 먹고 있는 갈비탕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3일 굶고 보식으로 갈비를
뜯었다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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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어머님표 만두예요. 못생겼죠? ㅋ 하지만 맛은 끝내줘요. 게다가 저 만두피를
일일히 손으로 밀어서 빚으셨대요. 만두피가 너무 얇아 터져서 떡국엔 넣지도 못했어요.
저걸 또 다 찌셔서 냉동시켰다가 싸주셨답니다. 그냥 저 시키지 왜 혼자 고생하셨냐니까
'니가 만두 빚을 줄이나 아냐?' 하세요. 저 은근 만두 고수인데다가, 작년에 동서랑 만두
3백개 빚기도 했는데, 이쁘게 잘 빚는다고 칭찬하셨으면서 잊으셨나 봐요.
제가 갈수록 철딱서니 없이 구니 점점 더 어리고,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이시는 듯. ^^;
그런데요, 시어머님들은 그게 또 기쁨인가봐요. 생각해 보니 평생 남편, 자식 뒷바라지
하고, 이제 남은 여생 무슨 낙이 있겠어요. 일 잘하고 야무진 며느리 들어와서 손 놓고
편히 여생 보내는 것 보다 이것 저것 가르치고, '어머님 없으면 굶어 죽어요'하며 빈손
내밀면 먹을 것 바리 바리 싸주고... 이런 데서 당신의 존재감을 찾으시는 것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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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해먹으라고 떡국떡이랑 가래떡도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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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주신 전과 튀김, 그리고 잡채는 이렇게 1회분 먹을 분량으로 나눠서 얼려놔요.
저 냉장고 정리 제법 잘하는 편이지만, 어머님 이거 주실 때 한꺼번에 비닐팩에 넣어
질끈 동여매 주시면서 '이거 냉동실에 얼려두면 두고 두고 먹을 수 있다' 하시면 한마디
더 거들어요. '먹을 때는 어떻게 해동 시켜요?'
그때 '어머님, 저도 알아요. 전 1회분씩 지퍼락에 넣어서 차곡 차곡 보관해요.' 이럼
거기서 대화 단절이거든요. 초보 며느리들이 시댁 가면 제일 힘든 게 그거잖아요.
할말이 없다는 거. 전화 드릴 때도 그렇구요. 전화 한통 하는 거 뭐 어렵나요? 다만
이어갈 대화가 없는 그 어색함이 문제죠. 그런 어색함이 쌓이다 보면 사이가 점점
소원해지죠.
다 아는 거 길게 설명하셔도 처음인듯 듣고, 재차 여쭤 보고 하다 보면 친밀감이 생겨요.
사람과 사람 간의 정을 쌓는데 대화 만큼 중요한 게 없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주고 받다 보면 배우는 것도 많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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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먹을 건 따로 글라스락에 종류 별로 넣어 놓구요.
시어머님과 며느리의 갈등은 서로 노력해서 풀어야 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누군가가 변화하고 양보해야 한다면, 70 평생 살아온 어머님 보다 아직
말랑 말랑한 저 자신을 바꾸는 게 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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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좋아하는 꽃게, 차례상에 올렸던 조기, 산적, 나물들... 그리고, 저 코다리조림은...
설 전에 뭐 뭐 사오라고 전화하시면서 저녁은 먹었냐고 물으시길래, 아직 안 먹었다며
배고프니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밥상 생각 난다고 했죠. 그랬더니, 뭐 대단한 게 있다고
그러냐며 은근 좋아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전 어머님이 해주신 코다리조림이 그렇게
맛있더라구요.' 한마디 했어요. 스쳐가는 그 말 한마디에 명절 음식도 아닌 코다리조림을
잔뜩 해놓으셨더라구요. 이건 집에서 조려 먹으라고 양념 재워 주신 거예요.
제가 바꾸면 어느 순간부터 어머님도 바뀐다니까요. 저희 어머님 디게 무서우세요.
그리고 무서운 것도 없으시구요. 그런데, 언젠가 부터 제 눈치를 보시더라구요. 항상 제
말에 귀 기울이고 계시다가 잘못 들으면 재차 물으시고. 이젠 가끔 어머님 음식 모냥
안 이쁘다고 흉도 보고, 10년~20년 후에는 제가 대장이니 미리 미리 먹을 것 아낌없이
챙겨 달라고 농담도 해요. ^^ 말은 그렇게 해도 10~20년 후에도 어머님이 대장하실 수
있게 건강하셨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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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시댁은 형제들과 동서, 서방님들이 너무 좋으세요. 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대장 대우 확실히 해주구요. 명절 마다 이렇게 선물을 나눈답니다.
남편이 차를 좋아해서 차 선물을 이렇게나 해주셨어요. 올해는 저도 본격적으로 차를
좀 마셔 보려구요. 시동생이 밀가루 회사 다녀서 명절에 항상 밀가루를 갖다 줘요.
그래서 결혼하고 국수랑 밀가루는 단 한번도 사본 적이 없다죠. ^^ 저 국수 1인분씩
되어 있어서 정말 편해요.
사진엔 없지만 곶감도 받고, 오일세트도 받았어요.
결혼 초에는 이런 거 챙기고, 쌓인 것 처치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답니다.
마음만 살짝 바꾸면 되는 건데... 이제는 기간 내에 다 못먹겠다 싶으면 회사 후배들
갖다 줘요. 그래서 저 미혼 후배 어머님들께 인기 좋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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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요~ 명절의 즐거움 중 하나는 담날 먹는 비빔밥! 산적 썰어 살짝 볶고, 당근 채
썰어 기름에 볶아 주면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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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돌솥비빔밥을 느무 느무 좋아하거든요. 호불호가 워낙 분명한 성격 탓인지,
음식도 차가운 건 확실히 차게, 뜨거운 건 몹시 뜨겁게, 매운 건 아주 맵게...
밍숭 맹숭, 미지근한 건 용서가 안돼요. 그래서 돌솥비빔밥이 좋아요. 다 먹을 때까지
호호 불어 먹어야 할만큼 뜨겁게 유지할 수 있는.
그런데, 대부분의 식당은 그냥 대충 뎁혀 오기 때문에 처음에만 지직지직~하지 금방
식잖아요. 그래서 시아버님이 주신 세뱃돈으로 벼르고 별렀던 돌솥을 드뎌 샀어요.
엉엉... 왜 우냐구요? 저 명절 담날 마다 왜 이런대요. 지난 추석에는 겉저리 담가
보겠다고 일산 이마트, 뉴코아아울렛, 홈플러스를 카트 질질 끌고 누비고 다녔는데,
(이게 전철 두정거장 거리에요. 것두 속으로 '이렇게 까지는... 이렇게 까지는...'
하면서 홈플러스까지. 이번엔 돌솥 사려고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으려 했던' 짓을
기어이 저지르고 말았어요. 다행이 사긴 했는데, 제가 원한 건 에스더님이 쓰시는
그런 돌솥이었는데... 이건 밥하는 가마돌솥이더라구요. 그래도 뭐 돌은 돌이니.
충분히 불에 달군 다음 밥을 넣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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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싸주신 나물 돌려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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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하트 모양 계란 후라이도 살짝. 노른자가 살짝 익어야 밥알 속으로 잘 스며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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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랜만에 염장샷~! ^^v
뭐 오늘도 변함없이 제 자랑 실컷 했지만, 사실 시어머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는
82cook의 도움이 컸답니다. 여긴 다 큰 딸이나 며느리 보신 분들도 많아서 며느리
외에 다른 시각으로 고부 관계를 보는 눈을 살짝 빌릴 수 있거든요.
그리고, 엄마 같고, 시어머님 같은 분들께 칭찬을 받다 보니 나도 시어머님께 사랑
받을 능력이 충분하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기구요. 어른들이 보시기에도 내가 하고
있는 요리법, 행동이 많이 모자라지 않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어머님 잔소리에
주눅들지 않고 늘 밝게 대할 수 있었어요.
인터넷에 시댁 이야기 하는 거 조심스러운데, 제가 결혼 초에 너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명절 이틀 동안 그렇게 맘 편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오는 게 스스로도
대견하고 신기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살짝.
아, 우리 셤니 귀 간지러우시겠다. 이제 셤니 이야긴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