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엄마가 항상 쑥버무리를 간식으로 해주셨거든요. 전 그냥 엄마가 개발한 건줄
알았는데, 82cook에서 발견하고 어찌나 기쁘던지. 평생 다시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여기
레서피들과 엄마 어깨 너머로 보던 기억을 떠올려서 도전해 보려고 열심히 쑥을 캤어요.
저 캐는 옆에서 어떤 외국인을 모델로 나이 드신 사진 작가 분이 촬영을 하고 있었어요.
물끄러미 보시더니 '나물 캐는 거예요?' '네, 쑥이요.' '젊은 사람한테도 그런 정서가 있네요'
하시며 웃는데, 마음이 싸...했어요. 더 세월이 지나면 이런 정서들이 사라질까요?
저 어렸을 때는 봄이면 항상 엄마와 쑥, 냉이를 캐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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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을 잔뜩 캐서 냉장고에 넣어놨더니 쑥향이 진동을 해요. 일단 반만 씻어서 쑥개떡 해먹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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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을 삶아서 핸드블렌더로 곱게 갈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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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묵은 쌀을 떡집에 가서 빻아 왔어요. 마트에서 찹쌀 가루는 파는데, 맵쌀 가루는 안 팔더라구요.
손반죽을 해볼까 하다가 땀만 찔찔 흘리고, 결국 포기할 것 같아서 애초부터 제빵기에 던져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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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기가 열심히 반죽하는 동안 찜기에 쑥버무리를 했답니다. 포실 포실 쫀득 쫀득 쑥향이 그대로
살아있는게 정말 건강한 맛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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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반죽은 둥글려서 이렇게 빚어 찜기에서 10분 정도 쪄요. 두께에 따라 시간 조절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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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을 발라주면 정말 정말 찰지고 쫀득한 쑥개떡이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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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토속적인데, 모양까지 심심하니 스타일이 안 살아요. 그래서 감자 으깨는 도구로 모양을
내줬어요. 좀 간지 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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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가 와서 남편이 등산을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 선배 분이 포천에서 약수를 길어
가져다 주신다는 거예요. 마침 약수도 떨어졌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막 쪄낸 쑥개떡을 통에
넣어 드렸어요. 대신 저녁 얻어 먹었답니다. ^^; 이 분께 콩국수 해주기로 약속했거든요.
입맛 까다로운 분인데, 저 82cook만 믿고 덜컥 약속해 버렸죠. 요리물음표 보니 든든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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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등산 도시락은 김치 김밥에 뭘 더할까 고민하다가 샤브샤브 집의 상추쌈을 응용하기로
했어요. 부추를 다져 넣으려고 했는데, 깜빡 잊고 안 사와서 열무김치 꼭 사서 양념한 밥과
잘 섞어줘요. 그리고, 소고기 차돌백이 부위를 사와서 구운 후 듬성듬성 식감 좋게 잘라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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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동글게 꼭꼭 말아서 상추에 싼 후 흐트러지지 않도록 시금치로 묶어 줘요.
산에서 먹으니 상추가 싱싱한 게 그렇게 좋더래요. 이 날은 멤버가 한명 더 늘어서 세분
도시락을 쌌거든요. 상추 쌈이 인기가 자긴 하나 밖에 안 먹었대요. 다음에는 호박잎 쌈을
쌀까 생각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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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는 남편이 부산에 가서 친구가 일산까지 놀러왔어요. 증권 회사 다니는 친구인데,
작년에 장이 안 좋았잖아요. 출산 휴가 갔다와서 내내 육아와 떨어지는 증시 때문에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었나 봐요.
땡 퇴근하고 달려 갔는데도 7시 반이 넘어 도착 했어요. 친구는 간단히 요기를 했다길래,
나쵸에 파프리카, 토마토, 햄을 다져 넣고, 칠리소스를 뿌린 후, 블랙 올리브와 피자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워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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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 따끈할 때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또띠아 위에 해도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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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주종이 데낄라 거든요. 레몬과 소금, 커피, 그리고 나쵸.
저 맥주들은 그냥 이뻐서 색깔 별로 사온 거예요. 술은 섞어 마시면 아니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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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전복죽을 쑤어줬답니다. 힘 좀 내라구요.
일 잘하고 인정 받는 커리어우먼이었는데, 아이가 이 친구의 삶을 몹시 노곤하게 하네요.
그래도 '엄마 사랑해요'라며 자기 뒤에서 살포시 안을 때 그렇게 사랑스러울 없다는 친구가
참 행복해 보였어요. 사람마다 저마다의 행복이 있는 거고 행복할 때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이었음 좋겠어요...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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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은 간단히 김치 두종류와 호박전, 새우전, 달걀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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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비가 부슬 부슬 오는 호수 공원을 우산 쓰고 돌아다녔어요.
호수 공원에 핀 연꽃이랍니다. 좋은 사람과 있으면 좋은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나봐요.
그동안 한번도 못봤는데, 마치 동화책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어요.
우리도 그렇게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아이에게 지금 우리와 같은 삶을 선물하려면 더
힘들어도 잘 견뎌내야겠지. 힘내라, XX아!